게임 찾아보기

2017. 12. 27.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





 세대를 마무리하는 시대. 80년대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한 세대가,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와 개발 기술 부족 때문에 이상으로 덮어두고 있던 게임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 최근 콘솔 게임에서 느끼는 감상이자, [모놀리스 소프트웨어]의 신작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 2]에서 느낀 감상입니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과 그 후속기 플레이스테이션2를 관통하는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황금기. 그 시절에 꿈꾸던 롤플레잉 게임을 지금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이야기는 장르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동료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를 구한다. 개성있는 등장인물의 사정과 감정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가 힘입고 흡입력 있게 전달됩니다. 이야기를 이루는 각 사건의 맥락이나 당위성을 따지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로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시리즈 전통의 훌륭한 음악은 물론 캐릭터의 표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연출이나, 감정을 잘 전달하는 성우의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일부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에서 보이는 고민 없는 성차별과 성희롱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캐릭터 설정이 이야기의 수준을 심각하게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게임 세계의 설정과 전혀 관계없는 단어가 나오고, 여성 비하 표현이 서슴없이 반복되며 캐릭터의 외형과 연출은 지나치게 노골적입니다. 해당 문화에 이해를 두고 있는 특정 소수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다수에게 선보일 작품이었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자제해야 했습니다. 게임의 세계에 그러한 설정을 녹여내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기껏 잘 만들어진 캐릭터와 드라마가 흔한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의 변주로 추락한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특정 취향에 집중할게 아니라 게임의 세계와 설정으로 완결될 수 있는 이야기에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시리즈 특유의 세계와 그 세계를 모험하는 느낌은 이번 작에도 충실하게 잘 살아 있습니다. 거대한 생물 위에서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그래픽과 인상적인 장소로 가득한 필드는 이번에도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의도를 찾기 어려운 불친절한 구성과 심각할 정도로 불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경험을 그 크게 해칩니다. 게임의 지도가 보기 어려운 문제는 최근 패치로 인해 해결되었지만, 특정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 스킬을 체크하는 구성은 귀찮고 불편할 뿐입니다. 그 밖에 의도가 읽히지 않는 불편함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이는 게임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 내버려 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일부 텍스쳐가 로딩이 되지 않는다거나, 게임이 강제 종료되는 문제를 보면 제대로 다듬지 못하고 발매한 것 같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집니다.

게임의 다듬어지지 못한 인상은 게임의 가챠에서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에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이자 동료에 해당하는 “블레이드”를 가챠로 소환합니다. 블레이드는 종족, 성별, 속성, 무기 종류가 랜덤하게 조합되어 소환되는 일반 블레이드와 고정된 조합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레어 블레이드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는 레어 블레이드로 진행하게 됩니다. 레어 블레이드는 이벤트도 별도로 준비되어 있어서 게임을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레어 블레이드 육성이 필수입니다. 문제는 이 레어 블레이드의 소환 확률이 게임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낮다는 것입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전투는 꽤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게임을 진행하며 차근차근 배우게 되는데 레어 블레이드가 잘 나오지 않다 보니 게임을 배워야 할 시기에 필요한 블레이드가 없어서 게임을 제대로 익히지 못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 “드라이버 콤보”라는 시스템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특정 무기를 지닌 블레이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이 폭이 지나치게 좁아, 기껏 만들어둔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제대로 배우기도 어렵고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공략을 통해 미리 알고 진행한다고 가정해도, 어떤 블레이드가 나올지는 무작위고 플레이어가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서 필요한 블레이드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는지 진행을 통해 반드시 주어지는 블레이드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게 조절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반대로 원치 않는 블레이드를 강제로 사용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 뿐입니다.

또한 블레이드의 육성에는 많은 시간이 들고 게임 후반에 즐길 수 있는 켄턴츠는 충분히 않기에 블레이드를 얻기 위해 게임 후반을 소모하고, 블레이드를 얻고 보면 정작 육성할 수단은 단순한 노가다 밖에 남지 않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플레이어의 학습 단계와 블레이드의 육성에 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게임 중반쯤에는 모든 블레이드를 소유하고, 그 블레이드를 캐릭터 간 자유롭게 사용 가능해야 게임을 부드럽게 즐길 수 있을법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레어 블레이드는 잘 나오지 않고, 캐릭터 간 이동도 제한되어 있어서 멋대로 나오는 레어 블레이드를 어떻게든 굴려서 어렵게 게임을 진행하고, 원하는 레어 블레이드의 육성은 게임의 엔딩후에 별도로 진행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레어 블레이드를 엔드 컨텐츠로 사용할 목적으로 디자인했다면 2회차로 계승이라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아예 2회차 플레이 조차 없으니 그저 게임을 못 만들었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습니다.

레어 블레이드에 관한 문제는 각 블레이드의 이벤트와 육성에도 산재해 있습니다만, 전부 서술하자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이미 엉망진창인 시스템의 설명에 더 시간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전투로 넘어가겠습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전투는 게임의 복잡한 전투 시스템을 배우고 응용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이에 익숙해지는 후반까지는 즐겁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 후반으로 가면 적들의 패턴이 매우 단순해집니다. 전투 규칙상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후반의 적은 시간이 흐르면 즉사 공격을 사용하는 패턴이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게임 후반은 적의 패턴에 따른 대응이나 전략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적을 지우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결국, 적의 체력을 절반 정도 깎고 강한 콤보로 한 번에 지워버리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전투 전략의 부재는 아마도 레어 블레이드의 등장 확률이 낮고, 제대로 조합하기 어렵다는 문제로 인해 레어 블레이드의 개성에 따른 역할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적당히 속성만 맞추면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도록 조절한 결과 아닐까 생각됩니다. 블레이드의 캐릭터 간 이동만 자유로워도 덜 할 문제였을 텐데, 게임의 설정과 가챠를 맞추기 위해 내린 결론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가챠는 더 중요한 설정과 충돌하고 있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든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가챠는 플레이어에게 불편을 주고 경험을 해치는 아주 잘못된 시도입니다. 게임의 용병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모바일 게임의 구성을 도입해보자는 욕심 아니었나 싶지만, 그렇다면 정말 과욕이 부른 참사입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왕도 스토리, 풍부한 캐릭터의 설정과 그들이 이루는 이야기는 그 시절의 좋은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이야기는 결국 과거의 추억일 뿐 지금 해야 할 이야기는 할 수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과거에 갇혀있고, 현재에서 빌려온 유산은 소수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게임이 고집스럽게 집어넣은 구성 또한 지금 즐기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번잡합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로 만난 과거의 꿈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세대를 마무리하는 시대에 과거를 만나는 이유는 과거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작별 인사를 위한 만남 -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