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찾아보기

2020. 7. 28.

고스트 오브 쓰시마, 구로사와 그리고 사무라이에 대한 정치적이고 근거 없는 믿음




선의의 존경으로 싼 짐 풀기

Unpacking the baggage of well-intentioned homage



[고스트 오브 쓰시마(Ghost of Tsushima)]는 사무라이들을 웅장하게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미려하게 구현된 갑옷을 입은 채 말에 올라 있다. 그 대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할지 고민하는 게임의 주인공 진을 보게 된다. 우리의 영웅인 진은 쓰시마를 가로지르면서 백성을 지키기 위해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무사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진이 일대일 대결을 할 때마다 넓은 시각으로 진과 대결 상대가 한 화면에 담겨 영화와 같이 연출된다. 게임을 제작한 아티스트들은 전설적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을 흠잡을 곳 없이 구현하고 있다.

인디와이어(IndieWire)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의 디렉터인 네이트 폭스(Nate Fox)는 “크게 영감을 받은 명인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엔터테이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를 통해서도 그가 속한 게임 제작팀인 서커 펀치(Sucker Punch)가 받은 영향에 관해 설명했는데, 게임의 화면이 흑백으로 전환되는 “구로사와 모드”는 물론 게임의 제목도 영향을 받았으며, 구로사와 감독의 유명작인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에서 “사무라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원작과 최대한 가까운 경험을 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게임에 쏟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구로사와”에서 사무라이 모험 물을 위한 큰 틀을 따왔을 뿐, 구로사와의 작품이 안고 있는 정체성과 문화는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구로사와의 작품만으로 사무라이를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정치세력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꾸준히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는 작품활동을 하던 1943에서 1993년 동안 사무라이 영화로 명성을 얻었다. 이에 대한 일본의 평은 다양하게 갈린다. 사무라이 가문에서 자란 그의 배경에 주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서구의 유행을 노렸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거나 구로사와는 1950년대 영화 비평계에서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구로사와 감독은 그가 제작한 사무라이 영화로 유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는 없다. 구로사와 감독은 폭력 속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이데올로기 충돌을 필름에 담았으며, 때로 답하기 어려운 그러한 주제를 사무라이의 삶을 벗어난 방식으로도 다루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정뱅이 천사(Drunken Angel)]와 [조용한 결투(The Quiet Duel)] 또는 1944년에 제작된 선전 영화 [가장 아름답게(The Most Beautiful)]와 같은 작품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질병이나 알코올 중독 또는 그와 유사한 고난을 겪는 인물의 내적 충돌을 다룬바 있다.

그의 작품은 비평을 위해 박제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서구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작품특성과 주제가 재해석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Seven)]의 서사는 [7인의 사무라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유명한 명작인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는 구로사와의 [요짐보(Yojimbo)]와 지나치게 유사했기 때문에 감독인 세르조 레오네(Sergio Leone)가 도호 프로듀션에게 저작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조지 루카스(George Lucas)는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The Hidden Fortress)]에서 [스타 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Star Wars: A New Hope)]의 제작을 위한 영감을 얻었으며, 이후 보답으로 구로사와 감독이 몽환적인 드라마 [꿈(Dreams)]을 만들 때 제작을 도와주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 또한 충만한 액션과 드라마로 구로사와의 계보를 따르고 있다. 게임을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플레이어는 쓰시마의 군주 시무라(Shimura)가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전통, 용기, 명예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시무라는 사무라이의 정신을 주장하며 수하를 규합시킨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죽을 것이며, 그들의 백성을 위해 죽을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영광을 가져올 것이다. 영광과 전통 그리고 용기가 사무라이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믿음은 근래의 것이고, 구로사와 또한 그렇게 주장한적이 없다. 위의 메시지는 오늘날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이 말하는 “정신(The code)*”과 풀 수 없게 얽혀있다.

*역주: 코드는 주로 공통된 정치 이념과 성향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한국에서 익숙한 정신으로 번역했습니다.


“현대” 무사도 정신(Bushido code), 1900년대 니토베 이나조(Inazō Nitobe)가 재해석한 무사도 정신은 일본의 군대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무사도 정신의 가장 쉬운 예로는 일본군의 가미카제, 공식 명칭으로는 순풍특공대(Tokubetsu Kōgekitai)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포로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때까지 충성과 명예를 앞세우던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무사도 정신은 국수주의 세력 안에 여전히 스며들어 있다.

일본의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 Party)은 2019년 레이와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기 위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아티스트 아마노 요시타카(Yoshitaka Amano)에게 일본 총리 아베 신조(Shinzo Abe)를 사무라이로 그려줄 것을 의뢰한 바 있다. 또한, 중도 우파를 자칭하는 자민당(LDP)의 맴버 다수는 교과서에 실린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역사 왜곡을 돕거나 주도한 경력이 있다. 아베 본인 또한 외국인 혐오 교육을 지원해 왔으며, 그의 아내는 반일과 반중을 앞세운 국수주의 학교의 설립을 위해 9천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또한 일본의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Nippon Kaigi)의 맴버이기도 하다. 미 의회 보고에 따르면 해당 단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를 서구 식민지에서 해방했기에 일본은 찬사를 받아야 하며, 1946~1948년의 극동국제군사재판(Tokyo War Crimes tribunals)은 불법이고, 1937년 일본 제국군에 의해 일어난 ‘난징 대학살(Nanjing massacre)’이 거짓이자 날조”라고 믿는 단체 중 한 곳이다. 아베와 일본회의는 일본의 상비군 복권을 허용하기 위해 일본 헌법, 특히 9조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임기의 끝이 다가오는 2021까지 일본 헌법 개정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로 그는 2013년부터 매년 꾸준히 전쟁 범죄자를 기리기 위해 아쿠스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전쟁 범죄자 중에는 현대 무사도 정신의 모범으로 포장된 그의 조부도 포함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의회와 국수주의 이념을 옹호함으로써, 일본의 반 진보적인 국수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주의적 가치관은 일본의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또 다른 국가주의 세력인 일본 제일당(Japan First Party)의 사쿠라이 마코도(Makoto Sakurai)가 178,784표를 얻기도 했다. 그는 재일 한국인을 겨냥한 혐오 시위에 여러 번 발언자로 참가한 경력이 있다.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일본 제국이 정립하고 활용했던 무사도 정신을 떠받들고 있다. 이는 마치 서구 언론이 기사도 정신을 다루는 것과 유사하다. 무사도 정신과 기사도 정신이 대표하는 집단은 백성을 깊이 배려하는 고귀하고 명예로운 이들로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라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사무라이에 대한 개념은 일본 제국주의의 신념과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하게 뒤섞여있다. 그래서 서양에서 사무라이의 전승을 다룰 때는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서양의 연극에서 일부 영향을 받은 구로사와의 후기 작품은 사무라이와 전국 시대 사무라이의 역할을 비판하고 있다. 리어왕을 일본식으로 짙게 각색한 [란(Ran)]이나 하위 계급의 범죄자가 봉건 영주를 흉내 내는 [카케무샤(Kagemusha)]같은 작품은 사무라이가 그 시대 하위 계층과 같은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명예와 기사도에 충실하지 않은 집단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통해 사무라이의 개념을 해체한다.

구로사와 감독의 대작과는 달리, 그가 경력 막바지에 보여 주었던 비판적인 메시지는 서구에 잘 전달되지 못했다. 2003년 서구에서 제작된 영화인 [마지막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는 민중과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사무라이 군주를 그리고 있다. 봉건제 일본 사회의 인물을 지나치게 낭만화한 잘못된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털트 스윔(Adult Swim)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 [사무라이 잭(Samurai Jack)]과 딤프스(Dimps)와 폴리곤 매직(Polygon Magic)이 [7인의 사무라이]를 재해석한 게임 [7인의 사무라이 20XX]도 유사한 잘못을 저질렀다. 특히 [7인의 사무라이 20XX]는 공식 판권을 얻었음에도 대실패했다. 서구에서 다루어지는 외로운 방랑 무사의 이야기는 미국 서부 물의 총잡이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그렇다면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어떨까. 클로즈업 카메라를 통해 배우 각각의 감정을 담아내는 기법이나, 정돈되지 않은 자연과 봉건제 시대의 작은 마을을 파노라마 샷으로 담아내는 감각은 분명 구로사와 감독의 느낌이 난다. 이는 폭스와 그의 팀이 이룩한 성과이다. 그러나 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알게 된다. 게임이 구로사와 감독에게 표하는 존경은 다른 아무 흑백 영화에도 대입할 수 있다.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이나 다른 사무라이 영화가 지닌 서사의 특징과 상징을 파악하는 것이 영화의 고유한 샷만큼이나 중요하다. 구로사와 모드가 게임에 들어 있다고 해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특징이 게임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국가 정체성에 대해 논할만한 맥락을 지닌 서구 백인 학자는 얼마 없을 겁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구로사와의 작품에 대한 서구의 해석에 대해 논할 때, 베트남 여성이자 아트 디렉터인 토리 힌(Tori Huynh)이 한 말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 민족주의에 대한 맥락은 일본인이나 다른 아시아인들의 그것과 매우 다릅니다. 영화의 오리엔탈리즘은 기묘할 정도로 일본의 고통과 죄책감에 집착하고 있고, 학술계 또한 그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략- 구로사와 감독의 심미성을 다룰 때는 아무 문제 없겠지만, 그의 이념에 대해 다룬다면 또 다른 문제겠지요.”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서는 진이 일대일 대결을 벌일 때마다 화등이나 색색의 꽃이 가득한 배경을 이용해 둘 사이의 긴장을 아름답게 보여 준다. 이는 분명하게 구로사와의 작품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대부분의 대결은 진의 오해로 인해 빚어진다. 신화 속의 검이나 갑옷을 얻기 위한 사이드 퀘스트 때문에 발을 뻗지 않아도 될 곳에 발을 뻗어서 일어나는 대결인 것이다. 이는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거나 긴장을 유발하는 대신, 단순한 무대로 반복되기 때문에 시각적인 만족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폭스와 서커펀치의 대본에서 사무라이는 일본의 폭력적인 지주가 아니라, 봉건제 일본을 지키는 진정한 수호자로 대우받는다. 게임은 진을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쓰시마를 되찾는 수호자로 그린다. 섬을 뒤덮은 혼란 속에서 도적들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고, 사무라이로서의 명예와 도덕을 버리더라도 외적의 침략에 맞서는 것이다.

진은 그가 구해야 하는 목숨과 그의 명예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나 이는 곧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게 되며 게임은 도덕적으로 흐릿하게 끝난다. 그와 그 주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사무라이와 무사도 정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진의 회상 장면에서 진이 암살파트 의외의 부분에서 누군가를 암살하면 진의 삼촌인 시무라가 겁쟁이나 하는 짓이라며 진을 꾸짖는다. 적대 세력의 칸이 진이 암습을 가했다고 시무라에게 귀띔하는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약 플레이어가 이를 피해 간다고 해도, 결국 게임의 이야기는 진이 백성을 구하는 동안 그의 명예와 충돌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민족주의 판타지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을 해보면 이 게임은 외부인이 만든 게임처럼 느껴진다. 복잡한 문화를 낡은 흑백 필름을 통해 단순하게 받아들인 외부인이 만든 게임인 것이다. 게임 플레이는 부드럽고 영웅의 애니메이션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게임은 참고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만든 창작자들은 게임이 멋들어진 유사 역사 드라마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패미통(Famitsu)과의 인터뷰에서 서커 펀치의 크리스 짐머만(Chris Zimmerman)은 “일본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멋지다고 느끼거나, 역사 드라마처럼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영광일 겁니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게임은 영화처럼 느껴지는 일 대 일 대결과 같이 “쿨”해 보이는 외관을 만들어 내기는 했다.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폭스는 말했다. “게임이 역사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고증을 자세히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는 게임의 이야기가 사무라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게임을 개발하는 중에는 알지 못했겠지만, 서커 펀치가 만든 사무라이에 대한 이미지와 우상화는 결국 그들의 책임이다. 게임이 쓰시마에서 일어난 사건을 역사적으로 고증할 필요는 없으나, 게임이 상징하는 사무라이는 국수주의자들이 왜곡한 역사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전파하고 있다. 만약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무대로 삼은 시대의 계급 충돌을 다루었다면 영감을 받은 원작에 실로 충실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그저 한 시대를 “쿨”하게 다루었을 뿐, 그 시대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게임이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에게 이토록 영감을 받고 싶었으면 영화나 글 같은 다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은 주제를 연구하고 연구의 결과를 드러냈어야 한다. 창작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오픈 월드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한 문화의 역사는 실제로 무엇인가? 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작품을 만들고 말았는가? 게임은 이러한 질문을 그저 겉핥기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구로사와의 작품을 게임을 통해 체험해볼 수는 있어도 정작 구로사와의 작품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게임이 배경으로 삼은 국가의 정치에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 게임의 창작자들에게 있어 구로사와의 작품이란 그저 흑백일 뿐이다.



2020. 7. 22.

게임 업계의 성차별과 괴롭힘은 유명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 업계의 성차별과 괴롭힘은 유명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 경험자가 말한다


원문: Sexism and harassment in the games industry isn't just about big names: the entire culture must change

저자: Emma Kent 



 첫 고발이 휩쓸고 지나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게임업계는 두 번째 미투 물결을 겪고 있다. 충격적인 규모의 물결이다. 이스포츠, 스트리밍 플랫폼, 게임 개발, 게임 언론 등 보이는 곳마다 오랜 고통과 침묵을 안고 있던 성차별과 괴롭힘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권력을 남용한 사람 중 일부가 이제야 행동에 따른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

고발 일부는 충격적이지만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과 논 바이너리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차별과 괴롭힘은 업계에 만연해 있고,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함은 물론 친구와 직업을 잃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유명인을 가해자를 고발한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권력을 지닌 가해자를 업계에서 쫓아내는 일은 업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반드시 지속하여야 한다. 한편 대중매체의 경향성도 유의해야 한다. 큰 이름을 가진 포식자는 노릴 줄 알지만 정작 그 포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는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의 성폭력과 괴롭힘은 고질적인 문제이며 드문 일이 아니다. 게임과 엮인 모든 젊은 여성은 각각 경험한 바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나 또한 업계에 들어온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신체적인 성희롱을 경험했다. 처음 E3에 참가한 그해 말, 누군가가 나에게 고용될 기회를 줄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자고 말을 꺼냈다. 이어 나는 불쾌하고 부적절한 메시지를 받았다. 업계 신입이자 젊은 여성이었던 나는(난생처음 당한 일이었고 심지어 인턴이었다) 도움을 받을 지인도 지원도 부족했다. 업계에서 걱정거리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경력에 해를 끼칠까 두려워했다. 당시 나는 약했고, 가해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줄곧 고통받아왔다. 내가 겪은 감정적인 고통은 어떻게 서술해도 과장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의심과 공포 그리고 사회의 시선 때문에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건 후 몇 달이 지나도록 친부모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핑계를 댔다. “과민반응(overreacting)”이라며 자신을 탓했다. 내 이기심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가 또 누구를 괴롭힐지 몰라 걱정했고, 내 침묵에 굉장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미투 운동이 공공 담론에 등장할 때마다, 나는 앞으로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몸살이 날 정도로 고민했다.

마침내 나는 말하기로 했다. 나를 성적으로 괴롭힌 남자는 행동에 대가를 치렀다. 용감한 생존자들에 힘입어 나는 내 목소리를 생존자들의 경험에 보탤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의 짐을 다소 덜 수 있었다. 이러한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게임업계에는 가해를 조장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업계의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여기 근본적이고 거대한 문제가 있다. 성차별과 직장 내 학대. 이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임업계의 성차별과 직장 내 학대는 게임업계의 구조와 얽혀 있다. 게임업계는 취직 문턱이 높고 경력자의 추천이 매우 중요하며 고용이 불안정한 저소득 업종이 많다. (인디 개발자나 프리랜서 또는 최근에 해직당한 이에게 물어보라) 종종 게임을 향한 열정이 악용되기도 한다. 가해자는 이러한 업계의 불안전성에서 권력을 얻으며 직간접적으로 피해자의 직업과 생계를 위협한다.

이렇게 굳어진 경제적인 문제는 어디서 부 터 풀어야 할까? 공개적인 토론과 노조 활동 그리고 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업계는 해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동안 우리는 업계의 권력 구조를 살펴보고, 가장 약한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지원을 위해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살펴보도록 하자.

나를 포함한 생존자의 경험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학대나 성희롱을 겪는 것은 주로 업계에 막 들어온 신입이다. 이들은 인맥을 만들지 못해 조직에서 고립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으므로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며, 경쟁이 심한 업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들의 생계를 좌우할 수 있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내 경험을 통해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가해자가 업계의 과음 문화를 이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게임업계는 괴롭힘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과음이다. 게임업계에는 관계 형성을 핑계로 한도를 넘는 음주를 권장하는 문화가 있다. 거의 대다수의 교류 행사가 술을 중심으로 짜여있으며, 그곳에서 최악의 행위가 일어난다. 취기의 즐거움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장 무력한 순간을 노릴 수 있게 만들며, 가해자가 “만취 상태” 였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게 만든다. (애초에 핑계가 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무엇보다 심각한 사실은 인맥 형성과 승진을 빌미로 업계가 신입의 행사 참여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해로운 사례가 모여 해로운 결과를 만드는 셈이다.

한시라도 빨리 행사에서 음주를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음주를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절제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환영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경험했던 가상공간 행사도 충분히 선택 가능한 대안이다. 가상공간을 이용한 행사는 더 안전하고 열려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업계의 음주 문화의 개혁을 위해 이벤트 기획자뿐만이 아니라, 문제에 일조한 업계 전체가 고민해야만 한다. 과음을 기준으로 “전설”적인 행사를 평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공적인 행사에서 과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남녀대비 낮은 여성 종사자 수와 여성의 낮은 급여 또한 개선해야 할 것이다. IGDA의 2019년 개발자 만족도 조사에 따른 업계의 성비는 남성이 71%, 여성이 24% 그리고 논 바이너리가 3%(별도 질문에 따라 트레스젠더로 식별된 4%)이다. 그리고 지난해 영국의 성별 임금 격차 보고서를 보면 19개의 대형 게임 관련 기업의 평균 임금 격차가 18.8%에 달했다. 게임 언론도 성별 격차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유로 게이머가 지적 당한 것과 같이 게임 언론에서 상위 관리직에 진출하는 여성은 극히 소수이다.

이는 직업 기회의 평등은 물론 더 다양한 직업 환경을 통해 가해에 취약한 이들을 지원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실제로 내가 재직 중인 유로 게이머에서 나는 지난 2년간 여성 직원이 늘어남에 따라 문제가 더 자주 공론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업계에서 일어났던 미투 운동에 힘입어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도울 수 있었다. 이처럼 더 많은 여성의 업계 참여는 고립으로 인한 위험의 감소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경험의 공유 기회를 제공한다. 라이엇과 같은 일부 기업의 해로운 작업 환경은 여성의 부족, 특히 여성 리더쉽의 부제가 큰 원인이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급여 격차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여성의 동일노동 저임금 현상은 물론, 고위직 여성의 결여가 기업 문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작년 보고에서 다룬 바 있듯, 상위직으로 진출하기 위한 여성의 인재 수가 부족한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업계가 여성을 교육하는 것을 게을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업계는 여성이 상위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은 신체적, 정신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는 직원을 지원할 방안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고발을 위한 보고 자료를 접하기 쉽게 만드는 간단한 일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뚜렷하고 투명한 인사 정책을 구성하여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직원이 행동에 유의하고 학대를 자각할 수 있게 하는 기업의 직원 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업이 성희롱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직원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랜 기간 문제가 되어 온 것이 또 하나 있다.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가 안고 있는 유해성 문제이다. 기업과 플랫폼이 커뮤니티 또는 플레이어의 해로운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지 않는다면, 가해자가 거듭 책임에서 벗어나는 해로운 환경이 조성된다. 예로 2018년 [팀 포트리스2]의 커뮤니티를 보자. 온라인에서 학대를 경험한 이들은 밸브가 커뮤니티를 관리하지 못해서 학대가 커뮤니티에서 통용되었다고 증언한다. (이는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괴롭힘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018년과 2019년 조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보자. 조사에 따르면 여성 게이머 3명 중 1명이 남성 게이머로부터 학대를 경험했으며, 14%가 강간 위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괴롭힘과 학대가 일상이 되고, 여성과 소수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가 넓게 퍼진 결과 게임업계와 온라인 양쪽에서 학대가 빈발하고 있다. 기업에 자사의 게임 커뮤니티에 이토록 무관심하다면, 기업 내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심해 봐야 한다.

게임 커뮤니티의 유해성은 단일 기업의 관리를 벗어난 다양한 플랫폼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해결이 굉장히 어렵다. 다행히 많은 배급사와 개발자가 유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Fair Play Alliance같은 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작은 변화가 있다. 우리는 기업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행동을 고발해야만 한다. 언젠가 업계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대중의 분노를 우려한 결과 스튜디오에서 일어난 부적절한 발언을 논쟁 없이 넘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어색하더라도 선을 넘은 행동에 대해서는 선을 넘었다고 경고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쁜 행동을 막을 수 있다. 잘못된 행동을 일삼는 이들을 막는 방법은 “사소한”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는 것이다.

학대와 괴롭힘을 둘러싼 편견을 줄여나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편견을 줄여나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생존자의 경험을 경청하고 우리의 일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동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괴롭힘당했을 때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교육해야 한다. 나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을 겪어야 했고,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생존자가 나서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왜 인사과나 경찰에 가해자를 정식으로 신고하기 어려울까? 간혹 생존자들이 법적인 절차를 통해 가해자를 고발하는 대신, 온라인에서 고발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인사과가 존재하지 않는 독립 개발자이거나, 가해자가 좁은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면? 이때 가해자를 온라인에 고발하는 것은 마지못해 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가해자를 온라인에 고발하는 일은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고, 업계에서 이룬 업적이 아닌 “그때 고발했던 사람”으로 기억될 위험을 안고 있다. 심지어 소송에 시달릴 위험은 물론 온라인을 통한 또 다른 괴롭힘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생존자를 신용하기 위해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다수의 연구가 거짓 고발은 극히 소수임을 증명함에 주목하자. 2012년 영국 법무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1149건의 강간 사건 중 거짓 고발은 3% 미만이었다. 최근 사회의 인식 변화 덕분에 생존자의 고발은 어느 때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작년 통계에 따르면 공격자가 법정에 서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확률은 10년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가디언의 보도를 참고) 미투 운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법재판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처벌받아야 할 이를 처벌하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와 필요한 법이 부재한 현실을 지적하는 운동이다. 미투 운동은 문제의 규모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당국과 기업 그리고 업계 전체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다.

글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영역이 있다. 필자의 경험에 근거해서 작성된 글이기 때문에 인종차별과 동성애, 트랜스 혐오가 뒤섞인 복잡한 성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은 미처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남성 역시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남성 우월주의적인 문화 때문에 “약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현실을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들어 알고 있다. 이스포츠와 스트리밍 커뮤니티 또한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창작자와 팬 간의 권력 문제와 책임 소재의 불투명함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유명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유명한 가해자를 처벌한 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업계와 조직 모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기적인 변화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끝으로 업계에서 성폭행이나 괴롭힘을 당했지만 나서지 못하고 남겨진 이들에게 조언을 남기고 싶다. 비공개적인 네트워크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첫걸음이었다.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말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현실을 재인식하고 마음의 짐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내 이야기를 듣고 “아니, 그건 잘못된 일이야.”라고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다. 당신의 경험이 타인의 경험에 비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당신의 경험을 그렇게 덮어버리지 말자.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쓴 뒤에 닥쳐올 일이 두렵다. 누군가에게 나설 용기를 주고, 업계 문화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할지라도 두렵다. 그게 바로 성폭행이다.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두 선택 모두 끔찍하지만, 둘 중 한 가지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필자는 말했다. 감내할만한 선택이었다. 상처를 잊을 수 없지만 그 무엇도 잊게 해주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20. 6. 12.

Black Lives Matter는 무엇인가?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orege Floyd) 사망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임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본래 6월 4일로 예정되어 있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5 발표가 미루어진 것 때문에 알고 계시거나, TV 뉴스로 소식을 접하셨을 겁니다. 

“Black Lives Matter” 

인터넷과 TV를 가득 메운 시위 현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어입니다.

필자에게는 미국에 거주한 시절, 길거리 전봇대나 신호등에 붙어있던 스티커로 익숙한 표어입니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표어 자체의 뜻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체일까요? 아니면 그저 표어일까요? 솔직히 이제까지 크게 관심을 가지던 사안은 아니었지만, 이번 시위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까지 확대되고, 수많은 게임 회사가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Black Lives Matter”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Black Lives Matter”는 무엇일까요? (이하 BLM)

 처음에는 위키피디아와 기사를 찾아보았지만 생각해보니 당사자들의 소개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BLM 홈페이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래는 BML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단체 소개를 번역한 것입니다.

#BlackLivesMatter는 2013년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의 살인범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의 글로벌 조직인 Black Lives Matter는 백인 우월주의를 근절하고, 지역 권력을 구축하여 국가와 자경단이 흑인 사회에 가하는 폭력에 개입하는 임무를 지고 있다. 우리는 폭력 행위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을 통해, 흑인의 기쁨을 중심으로 흑인의 상상력과 혁신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통해, 우리의 삶에 즉각적인 개선을 얻고 있다.

소개를 보니 BLM은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해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인권 단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더 찾아보니 현재 BLM은 특정 리더를 중심으로 모이는 대신 조직원 전체가 이끌어가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40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독특하고 거대한 단체 설립에 영향을 준 2013년의 테레이본 마틴 살인 사건은 무엇일까요? 사건에 관한 기사를 찾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2012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자경단을 자칭하던 백인 남성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이 10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을 총격으로 살해합니다. 짐머만은 마틴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를 추적한 끝에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플로리다 법원에서는 계획적이지는 않으나 살해 의도가 있는 살인, 2급 살인죄로 짐머만을 기소합니다. 이후 짐머만은 마틴과 대면했을 때 상해를 입었으며 살인은 그에 따른 정당방위라고 주장했고, 2013년 7월 13일 6명의 배심원단은 짐머만에게 무죄판결을 내립니다.

이 사건에 따른 대응으로 당시에는 인권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BLM의 공통 창립자로 알려진 알리샤 가르자(Alicia Garza)와 파트리스 컬러스(Patrisse Cullors)가 BLM 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작은 알리샤 가르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한 문장이었습니다. "흑인 여러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중요합니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합니다.“(“Black people. I love you. I love us. Our lives matter, Black Lives Matter“) 이후 파트리스 컬러스가 그 글에 #BlackLivesMattter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한 것이 소셜미디어의 해시태그 운동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해시태그 운동은 이후 2년 뒤인 2014년 경찰에 의한 흑인의 사망 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거리시위로 번져가게 됩니다.

2014년 7월 14일, 뉴욕시 자치구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흑인 남성 에릭 가너(Eric Garner)가 뉴욕 경찰서의 경찰인 대니얼 판탈레오(Daniel Pantaleo)의 강경 진압 때문에 사망합니다. 당시 에릭 가너는 세금 스탬프가 붙지 않은 담배 한 보루를 판매하려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제압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니얼 판탈레오가 에릭 가너의 목을 졸랐습니다. 당시 가너는 11번이나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호소했으나 경찰은 그가 의식을 잃기 전은 물론, 의식을 잃은 후에도 구급차를 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위의 모든 과정이 영상 기록으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니얼 판탈레오는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2019년 미국 주 법원이 아닌 뉴욕 경찰서의 사건 재심의를 거쳐 결국 해직 처리되긴 합니다)

이어 2014년 8월 9일,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흑인 남성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 절도 혐의로 인해 경찰 대런 윌슨(Darren Wilson)에게 6발의 총격을 입고 사망합니다. 이 사건은 목격자의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당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브라운이 경찰차로 연행되어 간 후 경찰로부터 총을 빼앗기 위해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목격자가 있는 한편, 브라운이 죽기 전에 손을 들고 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 또한 있습니다. 누구의 결백도 증명할 수 없는 이 사건에서 경찰 대런 윌슨은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같은 해 연달아 일어난 부당한 판결에 대한 반발로 사건이 일어난 해당 도시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폭력을 동반한 시위와 함께 BLM을 표어로 삼은 거리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대대적인 시위에서 BLM은 시위의 방아쇠가 된 사건의 희생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사한 사건의 희생자들 또한 조명하는 것을 통해 미국의 구조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알리게 되었고, 국제적인 관심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이 발생합니다.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의 강경 진압 때문에 사망합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20달러 위폐를 사용했다는 신고를 받고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였으며, 체포 과정에서 경찰인 데릭 초빈(Derek Chauvin)이 9분가량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른 결과 조지 플로이드가 질식으로 사망합니다. 조지 플로이드는 이 과정에서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숨을 쉴 수 없다”라고 거듭 언급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모두 영상으로 기록되었고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대중에 공개되었습니다. 

위의 사건으로 점화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BLM 시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종 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정치 그리고 법을 비판하는 기사가 쉽게 눈에 띄고, 대도시의 도로에 “Black Lives Matter” 표어가 새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BLM 운동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던 미국의 사회 구조와 정치에 뿌리 깊게 박힌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경찰의 폭력을 비로써 대중이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도 입장을 발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경찰의 과도한 폭력과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해 유례없이 강력한 비판 성명을 발표한 레고벤엔제리스(Ben&Jerry's)같은 회사도 있고, 그에 비교하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게임 업계는 후자에 속합니다.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던 소니뿐만이 아니라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게임 회사는 모두 이번 사건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인류는 모두 평등해야 하고,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사의 흑인 커뮤니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더 적극적인 입장 발표와 함께 행동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BLM 운동이 시작되던 당시의 무관심과 비교해 보면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필자같이 BLM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도, 게임 업계가 일제히 반응을 보이니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을 보면 분명 다소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게임 업계의 미지근한 반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블리자드 액티비전 같은 경우 이미 홍콩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발언을 했던 프로 선수를 징계한 사례가 있습니다. 꼭 블리자드 액티비전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게임 업계는 인종차별을 담은 게임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성명 발표에서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언급하는 게임 회사는 별로 없습니다. (UBI소프트가 현재 유일합니다) 성명을 발표한 기업에 실제로 무엇을 할지를 질의한 코타쿠의 기사를 살펴보면, 모두 감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후원 위주로 활동할 뿐, 정말로 신경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활동을 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라이엇 게임즈는 회사의 고위 관리직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을 그의 탓이라고 매도하여 해고 되기도 했고, 크고 작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고발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게임 업계에 더 강경하고 명확한 견해 표명을 요구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게임 업계가 성차별과 백인 우월주의에 가담했기 때문입니다. 게이머 게이트는 게임 업계가 고객으로 모시던 백인 우월주의와 성차별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통해 기업에 피해를 주면서 게임 업계는 속된말로 손절을 택하기는 했지만, 명확하게 달라지겠다는 의사 표현이 없다면 또 언제 그들의 지갑에 기대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게임 업계의 규모가 커지면서 특정 이해집단에 귀속되는 것은 이점이 적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되지만, 그 길을 선택해버린 업계도 분명 있는 만큼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BLM에 대한 기사조차 찾기 힘든 한국의 상황을 보며 복잡한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2020. 5. 19.

동물의 숲과 한국 게임 업계


 닌텐도의 19년 된 게임 시리즈 [동물의 숲]이 갑작스러운 대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닌텐도에서 5월 7일 공개한 회계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치로 발매된 시리즈의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발매한 지 2달 만에 1천 3백만 카피를 판매했습니다. 닌텐도의 휴대용 콘솔인 닌텐도DS와 닌텐도 3DS로 발매되었던 전작의 총판매량이 각각 천만 카피를 조금 넘어선 것과 비교해 보면 이번 신작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성공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우선 갑작스럽게 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나 락다운이 시행된 결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의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동물과 함께 스트레스 없는 일상을 즐기는 게임인 [동물의 숲]은 팬더믹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시기에 좋은 탈출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락다운이 시행된 해외를 보면 현실 대신 게임에서 모여 기념일을 축하거나, 모임을 여는 후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닌텐도와 관계 없는 게임 회사가 자사의 게임 캐릭터 복장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코드를 공개하거나, 유명 의류 브랜드가 자사의 상품을 게임을 통해 공개하는 등 유행에 편승하는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닌텐도의 게임 콘솔인 스위치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저하 탓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스위치의 수요가 급증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콘솔 구입을 위해 대기 번호를 받거나 추첨을 하는가 하면 스위치 판매를 가장한 게임몰 피싱 사이트까지 나오고 있어 놀라울 따름입니다. (유명 게임몰 사이트에 접속하면 해당 사이트를 위장한 피싱 사이트를 주의하라는 경고문이나, 스위치 콘솔 추첨 배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위와 같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성공과 유행에 따라 한국에서도 게임의 다양성을 넓히고 사용자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 필요한 일이고 옳은 의견이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유인즉슨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히트는 한국은 물론 근래 세계의 게임 업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주로 한국 게임 업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외전을 제외한 시리즈의 5번째 작품입니다. [동물의 숲(どうぶつの森)]의 첫 작품은 2001년 닌텐도64로 발매되었고 같은 해 게임큐브로 이식되어 [Animal Crossing]이라는 이름으로 북미에 발매됩니다. 재미있게도 [동물의 숲]의 첫 기획은 기발한 장치가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지 않게도) 기획의 중요한 축이던 닌텐도64DD라는 애드온 기기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게임은 본래 의도했던 구성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신 평범한 게임 속 일상을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해서 즐기는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당시 게임의 디렉팅을 담당한 노가미 히사시 자신도 과연 사용자들이 이 게임을 원할지 확실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닌텐도는 게임 기획을 승인했고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게임 역사에 가끔 보이는 기적같이 생존한 게임의 위대한 성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요? 생각이 닿는 부분이 있어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당시 [동물의 숲] 개발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인 에구치 카츠야노가미 히사시라는 개발자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두 명 모두 유명한 개발자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의 참여 작을 알고 있을 겁니다. 요약해 보자면 에구치 카츠야는 1988년 [슈퍼마리오3]에 디자이너로 참여하여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이르기까지 무려 32년간 닌텐도에서 개발자 현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가미 히사시 또한 1995년 [슈퍼 마리오 월드2: 요시 아일랜드]에서 캐릭터 디자인으로 시작하여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25년간 현직 개발자로 닌텐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유명한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닌텐도의 2021년도 신입 사원 채용 모집 요강을 보면 평균 근속 연수가 무려 13.9년이라고 나옵니다. 현재 게임 업계에 이처럼 한 회사에서 경력을 이어가며 장기근속이 가능한 회사가 남아 있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발자의 장기근속은 닌텐도라는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이고, 일본 기업이라는 특수성에 의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시리즈가 본래의 의도를 잃지 않고 장기간 시리즈를 이어가고 또 속편이 전작의 단점을 개선하고 발전하는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게임 개발에 참여했던 인원이 계속해서 유지됨으로써 개발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서는 왜 [동물의 숲]같은 게임이 없는가를 말하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어째서 지속해서 사랑받고 유지 가능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가, 어째서 개발자의 위치가 갈수록 게임 업계에서 위태로워 지고 있는가를 지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게임 업계 노조 형성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한국 게임 업계에는 한 가지 덧붙일 지적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게임 시장에서 특정 소비집단이 과대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팬더믹 특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번 스위치 품귀 상태로 기존과 다른 게임을 요구하는 수요가 한국에 존재함이 증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기반이 매우 약한 콘솔 플랫폼이 품귀 현상을 보일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몰이를 이끈 게임 또한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게임이었습니다. 고래를 대상으로 한 모바일 MMO와 특정 서브컬쳐를 대상으로 한 캐릭터 수집 게임이 대세처럼 느껴지는 한국 게임 업계의 반대에 있는 게임이 성공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한국 게임 업계가 단기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지적은 또 한 번 말하면 지겹게 느껴질 만큼 거듭된 잔소리이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한국 게임 업계가 스스로 말라 죽는 미래를 향하는 것 같아서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소수의 고액 소비자인 고래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나 특정 서브컬쳐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 대표하는 소비집단은 한국 사회의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게임은 그 집단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그 집단만의 즐길 거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게임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을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닌 시대가 된 것입니다. 현재 과대표 되는 소수가 아닌 실제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이 절실합니다. 한국의 게임이 더 고립되기 전에 언론을 포함한 한국 게임 업계는 특정 커뮤니티 밖의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닌텐도의 [동물의 숲]은 개발사가 닌텐도였기에 가능한 게임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회사에서 개발했다면 시리즈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못했을 겁니다. 최근 [블리자드]가 기존의 명성을 빠르게 잃어버리는 것을 보며 게임 업계 종사자의 안정성과 게임의 퀼리티가 비례함을 느끼게 됩니다. [블리자드]의 게임의 품질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과 대량의 직원 해고 뉴스가 나온 시점이 겹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분명 닌텐도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특수한 위치의 회사이고 그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은 분명 존재하고 그 게임은 지금도 개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로직의 테라리아는 9년간의 업데이트를 최근 종료했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흔들리는 요즘이야말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2020. 2. 16.

And yet it hurt




 “메모장에 게임 기능이 있다면 어떨까? What if there was a game in Notepad?” 제작자의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된 게임 [And yet it hurt]은 정말로 메모장에서 구동되는 게임입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을 시작으로 해결법을 모색하며 게임을 제작한 과정이 참 흥미로운 게임입니다. 비록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윈도우 기본 메모장 대신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오픈소스 메모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겉보기에는 기본 메모장과 똑같아 보입니다. 메모장의 편집 기능을 이용한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퍼즐과 기존 게임과는 사뭇 다른 조작 방법이 이색적인 게임입니다. 게임 실행 방법 또한 재미있는데, 게임 안에 설명되어 있으니 천천히 따라가시면 크게 어려운 부분을 없을 것 같습니다.


플랫폼: 윈도우(메모장)
가격: 무료
편의: 30분
제작: Sheepolution
좌표: itch.io

2020. 2. 3.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여성이기에 치른 대가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여성이기에 치른 대가



 2020년이 되고 나니, 2010년 당시 여성으로서 게임 속 젠더에 대해 글을 쓰는 기분이 어땠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십 년 전 비디오 게임 업계의 성비 불균형은 매우 분명하고 고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는 유명 여성 개발자가 패티시의 대상이 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2007년 게임 디자이너 캐시 시에라(Kathy Sierra)는 온라인에서의 괴롭힘과 협박 때문에 직업을 포기하고, 공개적인 활동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 사건은 이후 몇 년 동안 조금 특이한 일로 여겨졌을 뿐, 2014년 와이어드지(Wired)에 개재된 그녀의 글이 설명하듯 “온라인을 통한 괴롭힘의 강도와 빈도가 느리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신호로 여기지 않았다. 역주1)

당시 인기 게임의 대부분은 여성이 제작하지 않았고, 여성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게임은 남성의 파워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는 “현대전(Modern warfare)”이라는 게임 제목과는 달리 2013년까지 멀티플레이에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2010년 8월에 발매된 헤일로: 리치(Halo: Reach)는 남성과 여성 스파르탄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선택에 따른 유의미한 변화는 볼 수 없었다. 같은 시기 메스 이펙트(Mass Effect)같은 롤플레잉 게임 또한 남성, 여성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정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가장 앞서나간 게임으로 평가받았다. 주인공으로 여성만 선택할 수 있었던 유명한 게임은 익숙한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성별만 바꾼 것이었다. (라라 크로프트는 섹시한 인디아나 존스, 조안나 다크는 섹시한 여성 제임스 본드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난 소수의 사례에 해당하는 비욘드 굿&이블(Beyond Good & Evil)의 주인공인 제이드(Jade)는 게임을 즐기는 소수의 여성에게 이미 충분한 선택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쓰였다.

게임은 일반 남성을 위한 것이었고, 게임 웹사이트 또한 일반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아이지엔(IGN), 스파이크(Spike) 그리고 유지오(UGO)같은 사이트는 주기적으로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매력 순위를 매긴 기사를 썼다. 아니지, 아이지엔은 실존 여성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심지어 “소식통(enthusiast press)”의 수준을 벗어나 더 진지한 글을 다루고자 하는 웹사이트에서도 젠더와 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러한 게임 사이트들 역시 주로 백인, 이성애자, 경제적 배경이 비슷한 중산층 남성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이상하거나 기이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비디오 게임이 1990년대부터 꾸준히 그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리엔(Tracey Lien)이 2013년 폴리곤(Polygon)에 게임 마케팅의 역사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80~90년대 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린 남성이 어린 여성보다 게임을 더 많이 즐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알 낳는 닭”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이후 수십 년 동안 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린 남성에게 집중되었으며, 게임은 사회에서 남성적인 것으로 다루어졌다.

따라서 시장이 마케팅 대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관리해 온 이들이, 오늘날 비디오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유명인들이라는 주장은 앞뒤가 맞는 주장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이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지루한 관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0년 당시 이 주장은 비아냥과 괴롭힘은 물론 협박까지 당할 만큼 소름 끼치는 주장이었다.

물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언제나 다양했다. 인디 게임 개발과 인디 게임 비평 영역은 2000년대 들어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다. 워드프레스(Word press) 같은 블로그 플랫폼의 발전과 초기의 유튜브(Youtube) 그리고 새로운 소셜 미디어 덕분에 게이머는 서로를 찾고 주류에서 다루지 않는 논의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10년에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에서 벗어난 이들이 주도하는 비평 공간이 탄생했다. 페미니스트 게이머(Feminist Gamers), 더 보더 하우스 블로그(The Border House Blog), 섹시 비디오게임랜드(Sexy Videogameland) 그리고 세이크빌(Shakesville) (가끔 게임을 다루는 페미니스트 블로그) 같은 웹사이트는 보통 그들이 즐긴 게임에 대한 감상을 썼지만, 이따금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오랫동안 들어온 다른 이들의 말이나 마케팅과 관계없이, 이러한 사이트들은 다양한 이들이 비디오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당시 내 주위에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여성이 많지 않았고, 비디오 게임으로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러한 블로그의 존재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만약 내가 비디오 게임이 담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면 누군가 관심을 가지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블로그는 현재 모두 문을 닫았고 아카이브가 남아 있지 않은 곳도 다수 있다. 2009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운영 중인 크리티컬 디스턴스(Critical Distance)는 인터넷 곳곳에 있는 좋은 글을 매주 소개하고 있다. 그곳의 아카이브는 수년간 일어난 게임에 대한 논쟁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다행인 것도 있다.

주류 사이트가 인디 공간에서는 평범하게 거론되는 문제를 다룰 때, 특히 그것이 게임 내 성차별과 성 역할 문제라면, 분노에 가득 찬 독자의 반응을 종종 받게 된다. 예를 들면 2010년 8월 31일 G4에 실린 아비 헤페(Abbie Heppe)의 메트로이드: 아더 M(Metroid: Other M) 리뷰가 그랬다. 당시 대다수의 리뷰는 게임의 불편한 조작과 일직선 디자인을 지적하며 보통과 긍정을 오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헤페의 리뷰는 게임의 서사와 서사 구조를 지적했다. 글은 특히 젠더 정치(gender politics)를 주목했다. 그녀의 글은 줄곧 독립적이고 자신만만하게 그려지던 현상금 사냥꾼인 사무스 아란(Samus Aran)이 남성 군단장의 관리하에 활동하고, 시리즈 동안 거듭 물리쳤던 적인 리들리(Ridley)와의 대결에서 아이 같이 공포에 빠지는 것을 지적했다.

헤페는 메트로이드: 아더 M의 사무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녀는 밋밋한 남성 캐릭터가 그녀에게 지시하기 전까지,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길을 열거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유인즉슨 그녀가 그에게 (당연히 친구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조를 어떻게 설명하건 간에, 용암 구역에서 10분이 넘도록 바리아 슈트(Varia Suit)를 사용 못 해보면, 이 서사 장치가 얼마나 괴로울 정도로 멍청한지 알게 될 것이다.” 덤으로 헤페는 엉망으로 쓰인 사무스 아란의 대사도 혹평했다. “사무스는 ‘고해 시간(confession time)’이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마치 12살 소녀가 예쁘게 장식된 일기장 속으로 숨어들 듯 말이다. 마치 엘런 웨이크(Alan Wake)가 여성 채널 오리지널 영화와 만난 것 같은 나레이션은 당신이 ‘아빠의 고민(daddy issues)’을 걱정하기도 전에 늙어 버린다.” 헤페는 게임에 5점 만점에 2점을 주었다.

아더M이 표현한 사무스에 대해 2019년의 메트로이드 팬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게임이 주인공을 성차별적으로 표현해서 실망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헤페의 리뷰가 처음 나왔을 당시의 주류 의견은 그렇지 않았다. 브레이니 게이머(Brainy Gamer) 블로그에 “백래시(Backlash)”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은 리뷰에 대한 반발이 “방대하고(459개의 코멘트, 계속 늘어나고 있음) 개인적” 이었다고 말하며 헤페가 받은 코멘트를 다수 싣고 있다. 이제 보석 같은 코멘트를 한번 살펴보자.

“여성 리뷰어는 리뷰를 기회 삼아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이고 성차별 반대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게임의 스토리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실제 게임 플레이나 그래픽 같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정말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나는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게임을 비평할 때는 더 좋은 비평가를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마다 찾아오는 그 시기에는 게임 리뷰를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이야... 여성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다니... 이야... 메트로이드 같은 비디오 게임을 누가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남자지! (이 게임은 쿠킹 마마가 아니라고)”

브레이니 게이머의 글에서는 이러한 백래시를 “유입이 많은 사이트에서 게임을 비평할 때, 다시 말해 그나 그녀가 단순한 리뷰어가 아닌 비평가의 역할을 할 때 일어나는 일”의 예로서 정의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점수와 함께 실리던 게임 리뷰는 앞서 헤페의 리뷰에 적힌 코멘트가 증명하듯. 기술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구매자 가이드였다. 게임이 다루는 주제와 톤을 분석하는 방식, 특히 헤페의 리뷰를 혐오하던 이들에게 있어 페미니스트 관점의 분석은 절대 게임 점수에 영향을 줄 수 없는 틀린 것이었다. 성별에 기반한 고정관념을 통해 객관성의 본질을 “남성”에 두는 이들은 이러한 분리를 애용한다. 게임의 톤과 서사에 대한 비평은 “여성”스럽기 때문에 본질이 주관되고 편향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스트 시각의 게임 비평은 기술적인 남성 전문가의 영역에 있을 수 없는 소녀의 감성 따위로 취급한 것이다.

게임 속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소외된 비평가들은 아직도 헤페가 받은 것과 같은 코멘트를 반복해서 받고 있다. “멍청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감정으로 전문가의 영역을 방해하고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 당시 페미니스트는 게임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지겹게 구는 외부자 취급을 받았다. 마치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잭 톰슨(Jack Thompson)처럼 말이다. 역주2)

같은 시기인 2010년 8월 게임계에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났다. 페니 아네이드(Penny Arcade)가 8월 11일 내놓은 만화는 “매일 밤 우리는 딕울프(Dickwolves)들에게 강간당하고 있습니다”라는 NPC의 요청에도 불가하고 게임 속 영웅이 그를 도와주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셰이크빌(ShakeVille)의 객원 블로거인 셰이커 밀리(Shaker Milli)는 이 만화에 대한 글을 통해 페니 아케이드의 어두운 유머를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해당 만화는 “강간 피해자들이 의심받고, 비난당하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는”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지적했다. 역주3)

당시 게이머들은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패배”의 의미로 자주 사용했다. 지난 십 년간 정말 뒤처진 표현이기 때문에 지금은 당시 그 말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전 고타쿠 부편집장 패트리샤 에르난데스(Patricia Hernandez)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발견한 의문에 대해 2012년 쓴 글이 있다) 페니 아케이드의 만화를 향한 쉐이크빌의 글은 이후 일 년 동안 이어진 강간을 농담으로 사용하는 게임 문화에 대한 논쟁의 발화점이 되었다.

바로 따라온 페니 아케이드 만화에서는 페니 아케이드의 두 작가가 만화에 등장하여 논란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만화를 읽고 강간범이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금 강간 중이라면 그만두세요”라고 그들은 독자에게 말한다) 이어서 2010년 8월 6일 페니 아케이드 사이트는 딕울프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비난이 쏟아지자 그들은 2011년 1월 26일 판매를 중지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5일이 되어서야 페니아케이드는 간신히 사과로 볼 수 있는 내용을 게재했다. 작가인 마이크 크라우릭(Mike Krahulik)은 “이후 저지른 모든 일”을 후회한다고 밝히며 정작 문제가 된 만화와 농담은 옹호했다. “우리가 만약 딱 그 만화까지만 그렸다면 딕울프는 상징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비웃고 소외시키는 상징 말입니다.”

딕울프 논란의 가장 심란한 부분은 페니 아케이드의 문제가 된 만화와 “강간”이라는 단어가 게이머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에 불편을 토로한 이들이 엄청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신성화된 게임과 그것을 위협하는 적을 향한 조직적인 괴롭힘은 2010년대 내내 이어졌다. 2012년 2월 바이오웨어(Bioware)에서 수석 작가였던 제니퍼 헤플러(Jennifer Hepler)의 오래된 인터뷰가 레딧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2006년에 작성된 오래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게임의 대사처럼 전투도 “빨리 감기(Fast-Forward)”를 도입한다면 게임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인터뷰가 뒤늦게 떠돌게 되면서,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들은 레딧에서 처음 시작된 “바이오웨어를 죽인 암세포”라는 말로 헤플러를 비난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최근 엔썸(Anthem)을 제작한 바이오웨어를 비추어 볼 때, 나레이션을 위해 전투를 덜어내는 것이 바이오웨어를 “파괴”할 것이라는 말은 참 잔인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 괴롭힘에서도 성차별적인 이분법을 볼 수 있다. 여자는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에만 관심을 두는 한편, 남자(진짜 게이머)는 게임의 정말 중요한 부분, 전투를 신경 쓴다는 이분법이다. 이 논쟁은 더 나아가 전투가 없는 게임이 정말 게임인가 하는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2013년 8월 헤플러는 바이오웨어에서 사직했다. 그녀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이후였다.

“진정한 게이머(real gamers)”라는 개념은 게임 커뮤니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경쟁 게임(competitive games)을 플레이하는 여성은 실력이 뛰어나도 남성 플레이어만큼 존중받기 어렵다. 2012년 2월 캡콤은 자사의 새로운 협업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X 철권(Street Fighter X Tekken)을 홍보하기 위해 각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겨루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했다. 이 쇼는 철권 플레이어 팀의 리더인 아리스 바흐타니아스(Aris Bakhtanias)가 여성 플레이어를 성희롱한 사건으로 회자하고 있다. 그는 “성희롱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 문화의 일부이고, 그것을 제거한다면 그것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가 아니다...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e스포츠가 있듯, 격투 게임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놀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당시 자신을 변호했다.

바흐타니아스의 변호는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반발은 종종 격투 게임 커뮤니티와 e스포츠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른 e스포츠 커뮤니티와 달리, 격투 게임 커뮤니티는 역사적인 인종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e스포츠 상위권에서 백인과 아시안 선수를 보는 것처럼, 격투 게임에서는 흑인과 라틴계 선수를 상위권에서 볼 수 있으며, 토너먼트를 직접 운영함은 물론 전문적인 아나운서나 캐스터가 되기도 한다. 격투 게임 커뮤니티는 그러한 특수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편 바흐타니아스는 자신의 성희롱을 정당화하기 위해 e스포츠의 인종 분열을 이용했고, 격투 게임 커뮤니티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여성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그의 행동과 발언은 “진정한” 게이머가 되기 위해,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여성이 성희롱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2019년 개최된 EVO에서는 오랫동안 참가한 여성 참가자들이 행사에서 경험한 괴롭힘을 전달하고, 발언을 존중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발언한 바 있다.

2012년 5월 17일, 페미니스트 미디어 비평가인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eesian)은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Tropes vs Women in Video games) 영상 프로젝트를 킥스타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원활히 진행되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전의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사키시안은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한 해 동안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소외된 게이머들이 온라인을 통해 모여 목소리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게이머들 또한 온라인을 통해 모였다. 그들은 딕울프를 암구호 삼아 비디오 게임을 위협하는 집단, 심지어는 사키시안이나 제니퍼 헤플러같은 이들에 맞서기 위해 뭉쳤다.

2012년은 그들의 적으로 가득했다. 편협한 게이머들은 그들과 다른 모두를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게임 제작 도구의 보급과 낮아진 문턱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을 만드는 움직임이 점차 또렷해지는 시기였다. 2012년 7월에 공개된 인디 게임: 더 무비(Indie Game: The Movie) 다큐멘터리는 페즈(Fez), 브레이드(Braid), 슈퍼 미트 보이(Super Meat Boy)의 개발자를 조명하며 주류로 부상한 인디 게임을 다루었다. 퀴어 인디 게임도 빠르게 성장했다. 안나 엔트로피(Anna Anthropy)의 디스포이아(dys4ia), 메리트 코파스(Merritt Kopas)의 림(Lim), 포르펜틴(Porpentine)의 하울링 독스(Howling Dogs), 매티 브리스(Mattie Brice)의 마이니치(Mainichi)같은 주목할만한 퀴어, 트랜스 여성의 게임이 이 시기에 출시되었다. 이 게임들은 트랜스 여성이 독립적으로 제작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서로 다른 디자인과 접근을 택했음에도 비슷한 숨결을 공유하고 있다. 역주4)

또한, 2012년은 “트와인 혁명(Twine Revolution)”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픽션 제작 엔진인 트와인 엔진 덕분에 다양한 인터렉티브 픽션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트와인 혁명”이라는 표어는 2012년 12월에 포르펜틴이 작성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게임을 제작한다는 것 그리고 트와인 혁명(Creation Under Capitalism and the Twine Revolution)”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글은 전 코타쿠 직원인 파트리샤 에르난데스(Patricia Hernandez)가 개설한 블로그인 나이트메어 모드(Nightmare Mode)에 개재되었었다. (페트리샤는 코타쿠의 다른 친숙한 이름과 함께 2012년 당시 정직원으로 일했다) 혁명에서 탄생한 가장 유명한 게임은 아마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일 것이다. 조 퀸(Zoe Quinn) 총 제작, 패트릭 린지(Patrick Lindsey) 추가 작문, 아이작 챈클러(saac Schankler)가 음악을 작곡한 게임이다. 게임은 2013년 2월 14일에 공개되어 다양한 비평을 받았으며 훗날 게이머게이트(Gamergate)의 촉매가 되었다. 역주5)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은 이제껏 불균형하던 비디오 게임의 성비가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2012년 말에는 #1reasonwhy와 #1reasontobe라는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에 등장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1reasonwhy 해시태그를 통해 비디오 게임 업계에 여성 종사자가 적은 이유를 주고받았다. 이어서 여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1reasonwhy 태그를 통해 게임 디자이너의 길을 가로막는 우울한 현실의 사례를 공유했다. 외모에 대한 지적과 게임 컨퍼런스에서 겪은 성희롱이 언급되었다. 2013년에 발매된 툼 레이더(Tomb Raider) 리부트에 수석 작가로 참여한 리안나 프래쳇(Rhianna Pratchett) 또한 #1ReasonTobe 해시태그에 참여했다. 그녀는 동료 게임 디자이너에게 자주 “플레이어가 여성이라면?” 어떠할지 상기시켜 주어야 했다고 말하며, 태그를 이용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주고받자고 독려했다. #1reasonwhy, #1reasontobe 해시태그는 오늘날에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ame Developers Conference)는 #1ReasonTobe라는 이름의 연간 행사를 만들어서 게임 업계의 다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패널을 선정하고 있고, 최근에는 여성은 물론 더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패널을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프래쳇이 작가로 참여한 툼 레이더 리부트는 발매되기 전까지 전반적인 논쟁과 조사를 통과해야 했다. 2010년 10월 툼 레이더의 아트 디렉터인 브레인 호턴(Brain Horton)은 게임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에게 약간의 “젖살(baby fat)”이 있을 것이며 “라라 크로프트를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언락되는 비키니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리부트 버전의 라라 크로프트는 분명 극단적인 모래시계 체형에서 벗어났지만 “젖살”이 찐 체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들과 어울려 놀 법한, 틀에 박힌 쿨한 너드 소녀처럼 보였다. 뭐, 간신히 말이다. “그녀는 그녀 주변의 남자만큼 키가 크지는 않고, 아마 머리 정도 작을 겁니다” 당시 호턴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그녀가 모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느낌을 강조해 줄 겁니다.”

2012년 툼 레이더의 제작 총감독인 론 로젠버그(Ron Rosenberg)는 코타쿠를 통해, 게임 후반 라라가 강간 시도에 맞서 싸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성폭력이나 그와 유사한 항목은 저희 게임이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아닙니다”라며 그의 발언을 번복했다. 로젠버그의 망설임은 당시 트리플A 게임이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마케팅하기 위해 겪고 있던 불안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젠버그는 플레이어가 라라를 “보호”하고 싶어 할 거라고 설명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분명 그녀는 영웅이고 당신은 그녀의 조력자입니다. 그녀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당신은 남자 캐릭터에게 가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 이입하게 될 겁니다.”

게임의 혼란스러운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툼 레이더 리부트는 크게 성공했다. 툼 레이더 리부트는 2010년 메트로이드 M이 시도했으나 실패한, 강인함과 연약함 사이를 오가는 현실적인 주인공을 그려냈다. 더불어 2013년은 기존과 다른 트리플A 영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게임이 평론으로부터 넓게 고평가를 받았고 충분한 매출액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2010년대 후반, 다음과 같은 여성 캐릭터가 트리플A 게임의 전면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의 알로이(Aloy), 기어즈5(Gears 5)의 케이트(Kait), 라스트 오브 어스: 레프트 비하인드(The Last of Us: Left Behind)와 라스트 오브 오스 파트 2(The Last of Us Part 2)의 엘리(Ellie). 하지만 2013년에 발매된 대부분의 트리플A 게임은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삼지 않았다. 그 대신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나 라스트 오브 어스(Last of US)같은 게임이 “아버지 게임(Daddening of games)”의 유행을 선도했다. 코타쿠의 스티븐 토틸로(Stephen Totilo)는 2010년 2월에 “아버지 게임”의 시초를 조사한 바 있다. 그리고 매티 브리스(Mattie Brice)는 더 나아가 2013년에 이 현상을 “게임의 아버지 화(the dadification of games)”라고 칭했다. 이 유행은 갓 오브 워(God of War) 시리즈가 아버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시리즈를 리부트했던 2018년까지 이어졌다. 그러한 게임은 자신보다 어리고 연약한 인간을 돌보는 주인공의 부모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게임의 수석 디자이너들은 말 그대로 그들이 만든 게임 속 캐릭터의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켄 레빈(Ken Levine)은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엘리자베스(Elizabeth)를 자신의 “딸”처럼 여긴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그것은 그녀에 대한 포르노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갓 오브 워의 코리 바로그(Cory Barlog) 또한 그의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게임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게임의 가부장적 주제에 대해 많은 디지털 잉크가 흘렀는데, 그 일부는 크리티컬 디스턴스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관련 글 모음에 고여 있다.

2010년 발매된 메트로이드: 아더M처럼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 역시 여러 호평과 비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인상 깊게 두드러진 두 여성 캐릭터를 깊게 파고들었다. 비둘기 같은 눈과 백인 여성의 연약함을 가진 디즈니 공주 같은 캐릭터인 엘리자베스 콤스톡(Elizabeth Comstock)과 더 파운더스(The Founders)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무장 혁명단체 복스 포퓰리(Vox Populi)의 여성 지도자 데이지 피츠로이(Daisy Fitzroy)가 그 둘이다. 2010년대 초반에 일어난 트리플A 게임의 여성 묘사에 대한 많은 논쟁은, 사무스 아란이나 라라 크로프트 같은 백인 여성에 머물러 있었다.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는 게임에서 엇갈리는 인종과 젠더에 대해 비판적인 대화를 이끌었다. 게임이 백인 여성은 순진하고 동정 가는 조력자로 묘사한 한편, 흑인 여성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악당으로 프레임 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임에 비판적인 이들은 엘리자베스 보다 데이지의 곤경에 더 공감했다.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편향된 서사에 대한 반박은 주류 게임 언론 밖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리/액션(re/Action)은 유색 트랜스 여성인 매티 브리스(Mattie Brice)가 이끌던 독립된 비디오 게임 블로그로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었다. 2013년 7월 그 사이트에 내 친구인 소하 엘-사바위(Soha El-Sabaawi)의 글이 개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가 어떻게 데이지 피츠로이를 잘못 다루었는가에 대해 글을 썼다. “부커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복스 포퓰리와 싸우는 동안 나는 텅 빈 내 아파트에서 끝없이 소리쳐야 했다. ‘왜? 왜 내가 이걸 해야 해?’ 내가 복스 포퓰리 맴버를 죽일 때마다, 나는 한발씩 그들의 억압받은 역사 또한 지워 나갔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내 적이 아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사양에서 벗어난 관점으로 게임을 비평하는 이들은 여전히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고작 3년 동안, 메트로이드: 아더M을 리뷰했던 2010년의 평균과 비교해 보면 게임 속 젠더 문제에 대한 비평은 퍽 복잡해졌다. 심지어는 주류 언론까지 주기적으로 인종의 엇갈림, 퀴어니스, 그 외 다른 소수자를 포함한 게임의 젠더 정치를 다루기 시작했다. 다양해진 비평가와 게임 제작자의 목소리에 감사할 일이다.

2013년 3월 페미니스트 프리퀀시(Feminist Frequency)는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Tropes vs Woman In Video game) 시리즈의 첫 번째 영상을 공개했다. 짐작과 예상대로 그 비디오는 격분을 일으켰다. 또한, 2월에 발매된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는 다양한 매체에서 비평과 찬사를 받았으나, 트와인 혁명에서 비롯된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다른 장르의 게임과 동등하게 다루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게이머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비슷한 비난은 곤 홈(Gone Home)에도 쏟아졌다. 2013년 발매된 인디 게임 곤 홈은 텅 빈 집을 탐험하며 사라진 거주인을 조사하는 게임이다. 디프레션 퀘스트는 정신질환, 곤 홈은 퀴어의 커밍아웃을 다루고 있는데, 두 게임 모두 현실을 무대로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게임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인간미가 느껴지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많은 비평가에게 이와 같은 게임의 출시와 성공은 게임이 미래에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며 누가 그것을 가장 잘 말할 수 있을지와 같은 흥미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2013년에 이르자 주류 게임 언론에서도 다양성 있는 글과 주요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디프레션 퀘스트나 곤 홈 같은 게임이 대자본을 투자한 메이저 게임과 같은 위치에 실렸다. 한편 크라우드 펀딩과 페트론의 등장 덕분에 인디 게임 개발, 또는 인디 게임을 비평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것도 가능해졌다.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말이다. 또한, 이제까지 한쪽에 밀려있던 비디오 게임 업계의 폐쇄성에 대한 담론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편견에 가득 찬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중 일부는 음모론을 의심하기도 했는데, 이전의 게임과 다른 실험적인 인디 게임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다수에게 “강요(forced)”한 언론인 집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게임은 게임으로 볼 수 없으며 찬사와 관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게이머게이트(Gamergate)로 알려진 혐오 운동을 점화시키고 불타게 만든 것은 단 한 줄의 생각이었다. 디프레션 퀘스트의 개발자인 조 퀸(Zoe Quinn)이 긍정적인 리뷰를 위해 코타쿠의 저널리스트와 동침했다는 거짓되고 모욕적인 주장이 그것이다. 이 한 줄의 생각은 2014년 8월 16일 퀸의 전 남자친구의 블로그에 등록된 글이 출처였다. 편견에 찬 게이머들은 그것을 퀸을 몰아세울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게임 산업에서 소외되어 있던 다른 이들의 성공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주6)

다른 많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고발당했다. 내가 게임 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동침하며 돌아다녔다고 말이다. 당시 내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프리렌서(내 이전 정규직이었던 보스턴 피닉스(Boston Phoenix)는 2013년 문을 닫았다) 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 이야기다. 그러나 당시 일 년간 살해와 강간 협박을 받고 사실을 떠올려 보면 나는 도무지 웃을 수 없다. 또 다른 이들, 그러니까 매티 브리스(Mattie Brice), 젠 프랭크(Jenn Frank) 그리고 그 외 몇몇은 인터넷을 떠나 몇 년간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을 정도로 많은 위협과 협박을 받았다.

데드스핀(Deadspin)에 카일 뱅거(Kyle Wanger)가 게재한 수필 “미래의 문화 전쟁, 게이머게이트가 여기 있다(The future of the culture wars is here, and it’s Gamergate)”는 게이머게이트의 전략과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초기에는 레딧(Reddit), 포찬(4chan) 그리고 이후에는 에잇찬(8chan), 키위 팜즈(Kiwi Farms) 포럼을 중심으로 모여 공격 대상을 특정했다. 그들은 거대한 지원군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다수의 익명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사용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괴롭힘과 협박을 일삼았다. 또한, 대상의 해고를 종용하기 위해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거나, 대상이 언론인이라면 해당 언론의 광고주에게 광고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캠페인의 반대편에 있다면 게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을 쓰는 것과 같은 자신이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더 쉬운 선택처럼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이런 전략은 일찍이 페니 아케이드의 딕울프 만화에 대한 비평을 거두게 하거나,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 영상에 대한 반응을 바꾸는 성공을 거둔 바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전략은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떠나게 만들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캐시 시에라나 제니퍼 헬퍼 그리고 그 외 많은 이들이 여전히 공공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그 사실을 증언했을 것이다.

올해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는 수필을 모아 “모든 것은 게이머게이트(Everything is Gamergate)”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그러나 “5년 전 일어난 일련의 불쾌한 사건이 온라인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꾸다”라는 글의 부제와는 달리 게이머게이트는 온라인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꾸지 놓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인터넷과 그 연장선에 놓인 비디오 게임이었다. 비디오 게임은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더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논쟁에 휘말린 것으로 밝혀진 이들 중에는 내 지인도 많았다. 우리는 컨퍼런스에 마련된 게임 속 여성(Women In Gaming) 패널에서 서로를 만났다, 산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소수의 여성과 나를 하나로 묶어 착각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는 나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말을 추적하는 편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들에게 반대할 때 그랬다. 게이머 음모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우리는 모두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모두 친구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분리하고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야 했다. 거기에는 거대한 조직도 거대한 음모도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소외되어 있던 이들의 존재감이 늘어나 있었다. 마침내 서로 찾고 만나서, 그들이 항상 존재하기를 바랐던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블로그 포스트와 트와인 게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대화에 불과했다. 그렇게 각각은 개인의 소통에 불과했던 소소한 것들이 마침내 하나로 뭉쳐 힘을 같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편견에 가득 찬 이들을 놀라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그리고 편견에 가득 찬 이들 또한 우리에게 맞서기 위해 한데 모였다.

2010년 초, 나는 23살이었다. 나는 보스턴 피닉스에서 2008년부터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너드 문화를 다루었다. 지역의 게임 이벤트를 취재하면서 보스턴 근교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과도 만났다. 조 퀸이나 브리아나 우(Brianna Wu)같은 무명의 유망주들 말이다. 경쟁적인 비디오 게임도 취재했는데, 슈팅과 격투 게임을 특히 좋아했다.

2010년 3월에 나는 “기어즈 오브 워 3는 여성 캐릭터를 추가할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코믹스와 소설로 확장된 기어즈 오브 워의 설정에 따르면 그 세계의 여성은 대부분 출산 캠프로 강제 이주시킨다. 전투가 허락된 유일한 여성은 불임은 여성뿐인데, 그들 또한 어린 시절과 십 대는 그 캠프에서 지내야 한다. 기어즈 오브 워 코믹스에는 알렉산드라 브랜드(Alexandra Brand)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녀는 10대 소녀 시절 납치범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간당했고, 18세에 공식적으로 불임 선고를 받고 전선으로 내몰린다.

2010년 당시 기어즈 세계의 젠더 정치에 대한 내 비평은 그리 깊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질문은 아주 단순했다. “만약 여성이 아이를 갖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나는 기어즈 오브 워가 만화 같은 근육질 남성 영웅을 위한 파워 판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터무니없는 파워 판타지에 여성이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서툴고 얄팍한 내 글은 폭발했고, 심지어 코타쿠에 링크까지 걸렸다. 그 결과 나는 나를 상처입히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그들은 나 같은 여성이 전장(가상이거나 아니거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그 메시지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무시했지만,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내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 감정 또한 쌓여갔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당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나는 내 글에 대한 모든 이메일, 코멘트, 포럼 게시글을 읽었었다. 나는 다수의 후속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고 셈하기엔 너무나 많은 코멘트에 답글을 달았었다. 나는 게이머들이 내가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외부인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만약 내가 그들 중 하나라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킨다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평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글을 처음 링크한 코타쿠를 탓했다. 도대체 공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누군가 사무실로 찾아와 나를 죽인다니? 그저 인터넷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여성 캐릭터로 플레이하고 싶다고 썼을 뿐이었다. 심지어 거듭 강간당한 결과 불임이 된 여성 아닌가? 왜 나는 그토록 두려워해야 했을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2019년으로 돌아와 보자. 기어즈 5는 올해 초에 발매되었다. 그 게임은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는 사육장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기어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는 여전히 각박하지만, 여성 캐릭터가 끊임없이 성적 위험에 노출되는 세계는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다른 위험에 직면해 있다, 게임 속 세계의 다른 이들과 똑같이 말이다. 나는 기어즈 5를 내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코타쿠에서 리뷰했다.

지나간 10년은 승리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괴로운 경험이었는가를 제외하면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게임에서 젠더를 논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게임의 주인공이 여성인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행에 가깝다. 근육질의 백인 남성을 가녀린 백인 여성 캐릭터로 교체하는 것은 비슷한 타이틀이 넘쳐나는 게임 시장에서 돋보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백인 게이 여성으로 깜짝 논란 반응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는 충분한 변화로 볼 수 없어서 감흥이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에 일어났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놀랐을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여전히 더 대담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매체는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변화조차 대가 없이 찾아오지 않았고, 치른 대가 만큼 변화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2010년이 시작되던 당시 나는 이후 10년간 비디오 게임과 젠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 될지 몰랐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될지 몰랐다. 나는 게이머게이트가 국제적인 뉴스가 되고, 지역 게임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이 정치 평론가들의 화두가 되리란 것을 몰랐다. 난 게임이 얼마나 많이 변할지 알지 못했으며, 그것이 내가 겪고 지켜봐야 했던 고통에 비해 얼마나 의미 없고 하찮은 것일지도 몰랐다.

2010년대 초 비디오 게임 비평의 세계는 작게만 느껴졌다. 현상 유지에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쉽게 따를 수 있었으며, 쉽게 기억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쉽게 표적이 되었다. 그저 비디오 게임에 불과한 것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나와 동료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다. 실제로 우리는 직업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건강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나는 지금도 당시 논쟁에 가치는 있었는지, 핵심을 찌르는 논쟁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완전히 놓친 혁신적인 게임과 논의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2010년대 초,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많은 이들이 게임 언론과 게임 업계를 떠났다.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온라인 활동을 크게 줄여야 했다. 지난 십 년간 내가 동료들로부터 배운 가장 유용한 팁은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인명 검색 사이트에서 지우는 것이다. 나를 향한 잔인한 코멘트가 일정 이상 눈에 들어오면 인터넷 탭을 빨리 닫는 방법도 익혔다.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를 뮤트하고 차단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는 이제 2010년 당시의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에, 그때는 스스로 뭘 좀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다. 여전히 나는 한밤중에 뜬 눈으로 내가 택한 길을 되묻는다. 떠나야 했던 사람들, 혐오하는 세력에 내쫓긴 이들, 지원이 없어 쫓겨난 이들 또는 그 모두를 겪은 이들을 기억하게 된다. 특히 나보다 더 강렬하고 멋진 일을 해냈던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립적이고 다양한 언론이 변화를 이끄는데 준 도움. 그리고 그것을 잃는 두려움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과거로 퇴보하고 싶어 하는 편견에 가득 찬 이들 또한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