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찾아보기

2020. 5. 19.

동물의 숲과 한국 게임 업계


 닌텐도의 19년 된 게임 시리즈 [동물의 숲]이 갑작스러운 대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닌텐도에서 5월 7일 공개한 회계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치로 발매된 시리즈의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발매한 지 2달 만에 1천 3백만 카피를 판매했습니다. 닌텐도의 휴대용 콘솔인 닌텐도DS와 닌텐도 3DS로 발매되었던 전작의 총판매량이 각각 천만 카피를 조금 넘어선 것과 비교해 보면 이번 신작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성공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우선 갑작스럽게 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나 락다운이 시행된 결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의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동물과 함께 스트레스 없는 일상을 즐기는 게임인 [동물의 숲]은 팬더믹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시기에 좋은 탈출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락다운이 시행된 해외를 보면 현실 대신 게임에서 모여 기념일을 축하거나, 모임을 여는 후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닌텐도와 관계 없는 게임 회사가 자사의 게임 캐릭터 복장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코드를 공개하거나, 유명 의류 브랜드가 자사의 상품을 게임을 통해 공개하는 등 유행에 편승하는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닌텐도의 게임 콘솔인 스위치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저하 탓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스위치의 수요가 급증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콘솔 구입을 위해 대기 번호를 받거나 추첨을 하는가 하면 스위치 판매를 가장한 게임몰 피싱 사이트까지 나오고 있어 놀라울 따름입니다. (유명 게임몰 사이트에 접속하면 해당 사이트를 위장한 피싱 사이트를 주의하라는 경고문이나, 스위치 콘솔 추첨 배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위와 같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성공과 유행에 따라 한국에서도 게임의 다양성을 넓히고 사용자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 필요한 일이고 옳은 의견이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유인즉슨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히트는 한국은 물론 근래 세계의 게임 업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주로 한국 게임 업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외전을 제외한 시리즈의 5번째 작품입니다. [동물의 숲(どうぶつの森)]의 첫 작품은 2001년 닌텐도64로 발매되었고 같은 해 게임큐브로 이식되어 [Animal Crossing]이라는 이름으로 북미에 발매됩니다. 재미있게도 [동물의 숲]의 첫 기획은 기발한 장치가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지 않게도) 기획의 중요한 축이던 닌텐도64DD라는 애드온 기기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게임은 본래 의도했던 구성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신 평범한 게임 속 일상을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해서 즐기는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당시 게임의 디렉팅을 담당한 노가미 히사시 자신도 과연 사용자들이 이 게임을 원할지 확실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닌텐도는 게임 기획을 승인했고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게임 역사에 가끔 보이는 기적같이 생존한 게임의 위대한 성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요? 생각이 닿는 부분이 있어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당시 [동물의 숲] 개발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인 에구치 카츠야노가미 히사시라는 개발자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두 명 모두 유명한 개발자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의 참여 작을 알고 있을 겁니다. 요약해 보자면 에구치 카츠야는 1988년 [슈퍼마리오3]에 디자이너로 참여하여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이르기까지 무려 32년간 닌텐도에서 개발자 현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가미 히사시 또한 1995년 [슈퍼 마리오 월드2: 요시 아일랜드]에서 캐릭터 디자인으로 시작하여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25년간 현직 개발자로 닌텐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유명한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닌텐도의 2021년도 신입 사원 채용 모집 요강을 보면 평균 근속 연수가 무려 13.9년이라고 나옵니다. 현재 게임 업계에 이처럼 한 회사에서 경력을 이어가며 장기근속이 가능한 회사가 남아 있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발자의 장기근속은 닌텐도라는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이고, 일본 기업이라는 특수성에 의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시리즈가 본래의 의도를 잃지 않고 장기간 시리즈를 이어가고 또 속편이 전작의 단점을 개선하고 발전하는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게임 개발에 참여했던 인원이 계속해서 유지됨으로써 개발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서는 왜 [동물의 숲]같은 게임이 없는가를 말하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어째서 지속해서 사랑받고 유지 가능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가, 어째서 개발자의 위치가 갈수록 게임 업계에서 위태로워 지고 있는가를 지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게임 업계 노조 형성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한국 게임 업계에는 한 가지 덧붙일 지적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게임 시장에서 특정 소비집단이 과대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팬더믹 특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번 스위치 품귀 상태로 기존과 다른 게임을 요구하는 수요가 한국에 존재함이 증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기반이 매우 약한 콘솔 플랫폼이 품귀 현상을 보일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몰이를 이끈 게임 또한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게임이었습니다. 고래를 대상으로 한 모바일 MMO와 특정 서브컬쳐를 대상으로 한 캐릭터 수집 게임이 대세처럼 느껴지는 한국 게임 업계의 반대에 있는 게임이 성공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한국 게임 업계가 단기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지적은 또 한 번 말하면 지겹게 느껴질 만큼 거듭된 잔소리이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한국 게임 업계가 스스로 말라 죽는 미래를 향하는 것 같아서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소수의 고액 소비자인 고래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나 특정 서브컬쳐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 대표하는 소비집단은 한국 사회의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게임은 그 집단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그 집단만의 즐길 거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게임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을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닌 시대가 된 것입니다. 현재 과대표 되는 소수가 아닌 실제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이 절실합니다. 한국의 게임이 더 고립되기 전에 언론을 포함한 한국 게임 업계는 특정 커뮤니티 밖의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닌텐도의 [동물의 숲]은 개발사가 닌텐도였기에 가능한 게임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회사에서 개발했다면 시리즈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못했을 겁니다. 최근 [블리자드]가 기존의 명성을 빠르게 잃어버리는 것을 보며 게임 업계 종사자의 안정성과 게임의 퀼리티가 비례함을 느끼게 됩니다. [블리자드]의 게임의 품질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과 대량의 직원 해고 뉴스가 나온 시점이 겹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분명 닌텐도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특수한 위치의 회사이고 그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은 분명 존재하고 그 게임은 지금도 개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로직의 테라리아는 9년간의 업데이트를 최근 종료했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흔들리는 요즘이야말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