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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9.

동물의 숲과 한국 게임 업계


 닌텐도의 19년 된 게임 시리즈 [동물의 숲]이 갑작스러운 대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닌텐도에서 5월 7일 공개한 회계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치로 발매된 시리즈의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발매한 지 2달 만에 1천 3백만 카피를 판매했습니다. 닌텐도의 휴대용 콘솔인 닌텐도DS와 닌텐도 3DS로 발매되었던 전작의 총판매량이 각각 천만 카피를 조금 넘어선 것과 비교해 보면 이번 신작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성공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우선 갑작스럽게 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나 락다운이 시행된 결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의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동물과 함께 스트레스 없는 일상을 즐기는 게임인 [동물의 숲]은 팬더믹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시기에 좋은 탈출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락다운이 시행된 해외를 보면 현실 대신 게임에서 모여 기념일을 축하거나, 모임을 여는 후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닌텐도와 관계 없는 게임 회사가 자사의 게임 캐릭터 복장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코드를 공개하거나, 유명 의류 브랜드가 자사의 상품을 게임을 통해 공개하는 등 유행에 편승하는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닌텐도의 게임 콘솔인 스위치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저하 탓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스위치의 수요가 급증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콘솔 구입을 위해 대기 번호를 받거나 추첨을 하는가 하면 스위치 판매를 가장한 게임몰 피싱 사이트까지 나오고 있어 놀라울 따름입니다. (유명 게임몰 사이트에 접속하면 해당 사이트를 위장한 피싱 사이트를 주의하라는 경고문이나, 스위치 콘솔 추첨 배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위와 같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성공과 유행에 따라 한국에서도 게임의 다양성을 넓히고 사용자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 필요한 일이고 옳은 의견이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유인즉슨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히트는 한국은 물론 근래 세계의 게임 업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주로 한국 게임 업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외전을 제외한 시리즈의 5번째 작품입니다. [동물의 숲(どうぶつの森)]의 첫 작품은 2001년 닌텐도64로 발매되었고 같은 해 게임큐브로 이식되어 [Animal Crossing]이라는 이름으로 북미에 발매됩니다. 재미있게도 [동물의 숲]의 첫 기획은 기발한 장치가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지 않게도) 기획의 중요한 축이던 닌텐도64DD라는 애드온 기기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게임은 본래 의도했던 구성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신 평범한 게임 속 일상을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해서 즐기는 게임을 만들게 됩니다. 당시 게임의 디렉팅을 담당한 노가미 히사시 자신도 과연 사용자들이 이 게임을 원할지 확실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닌텐도는 게임 기획을 승인했고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게임 역사에 가끔 보이는 기적같이 생존한 게임의 위대한 성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떨까요? 생각이 닿는 부분이 있어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당시 [동물의 숲] 개발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인 에구치 카츠야노가미 히사시라는 개발자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두 명 모두 유명한 개발자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의 참여 작을 알고 있을 겁니다. 요약해 보자면 에구치 카츠야는 1988년 [슈퍼마리오3]에 디자이너로 참여하여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이르기까지 무려 32년간 닌텐도에서 개발자 현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가미 히사시 또한 1995년 [슈퍼 마리오 월드2: 요시 아일랜드]에서 캐릭터 디자인으로 시작하여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25년간 현직 개발자로 닌텐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유명한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닌텐도의 2021년도 신입 사원 채용 모집 요강을 보면 평균 근속 연수가 무려 13.9년이라고 나옵니다. 현재 게임 업계에 이처럼 한 회사에서 경력을 이어가며 장기근속이 가능한 회사가 남아 있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발자의 장기근속은 닌텐도라는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이고, 일본 기업이라는 특수성에 의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시리즈가 본래의 의도를 잃지 않고 장기간 시리즈를 이어가고 또 속편이 전작의 단점을 개선하고 발전하는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게임 개발에 참여했던 인원이 계속해서 유지됨으로써 개발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서는 왜 [동물의 숲]같은 게임이 없는가를 말하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어째서 지속해서 사랑받고 유지 가능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가, 어째서 개발자의 위치가 갈수록 게임 업계에서 위태로워 지고 있는가를 지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게임 업계 노조 형성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한국 게임 업계에는 한 가지 덧붙일 지적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게임 시장에서 특정 소비집단이 과대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팬더믹 특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번 스위치 품귀 상태로 기존과 다른 게임을 요구하는 수요가 한국에 존재함이 증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기반이 매우 약한 콘솔 플랫폼이 품귀 현상을 보일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몰이를 이끈 게임 또한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게임이었습니다. 고래를 대상으로 한 모바일 MMO와 특정 서브컬쳐를 대상으로 한 캐릭터 수집 게임이 대세처럼 느껴지는 한국 게임 업계의 반대에 있는 게임이 성공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한국 게임 업계가 단기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지적은 또 한 번 말하면 지겹게 느껴질 만큼 거듭된 잔소리이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한국 게임 업계가 스스로 말라 죽는 미래를 향하는 것 같아서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소수의 고액 소비자인 고래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나 특정 서브컬쳐를 대상으로 한 게임이 대표하는 소비집단은 한국 사회의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게임은 그 집단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그 집단만의 즐길 거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게임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을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닌 시대가 된 것입니다. 현재 과대표 되는 소수가 아닌 실제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이 절실합니다. 한국의 게임이 더 고립되기 전에 언론을 포함한 한국 게임 업계는 특정 커뮤니티 밖의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닌텐도의 [동물의 숲]은 개발사가 닌텐도였기에 가능한 게임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회사에서 개발했다면 시리즈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못했을 겁니다. 최근 [블리자드]가 기존의 명성을 빠르게 잃어버리는 것을 보며 게임 업계 종사자의 안정성과 게임의 퀼리티가 비례함을 느끼게 됩니다. [블리자드]의 게임의 품질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과 대량의 직원 해고 뉴스가 나온 시점이 겹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분명 닌텐도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특수한 위치의 회사이고 그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은 분명 존재하고 그 게임은 지금도 개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로직의 테라리아는 9년간의 업데이트를 최근 종료했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흔들리는 요즘이야말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2019. 12. 13.

Sayonara Wild Hearts





 [Sayonara Wild Hearts]는 한 퀴어 소녀의 성장을 음악과 비디오 게임으로 표현한 짧은 작품입니다. 게임 구성은 스테이지 형식으로 리듬 게임처럼 트랙별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는 연출에 따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듭니다. 트레일러만 보면 적당히 구색만 갖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해보면 장르의 변화에 따라 조작하는 느낌이 달라질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가볍게 즐긴다면 아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지만 파고들면 암기형 슈팅 게임에 가까워지는 게임입니다. 적탄에 근접하면 스코어링이 올라가는 시스템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이 게임은 마법 소녀 물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법한데…. 사실입니다. 비디오 게임, 발레, (백합)마법 소녀 물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를 하나로 버무려낸 연출만으로도 대단한 게임입니다. 비디오 게임 레벨 디자인으로 감정을 묘사하고, 애니메이션 장르의 공식을 이용해서 메시지의 뼈대를 만든 센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아마 게임을 끝내고 나면 이상해 보이던 제목이 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겁니다.

참 오해하기 쉬운 게임입니다. 기이한 게임 제목과 공개된 트레일러만 보면 얄팍한 관심끌기용 게임으로 보이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사실 게임이 이해를 두고 있는 주제에 대한 깊은 존중을 표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올해 이 게임이 너무 과소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쓰라립니다.


플랫폼: PS4, 스위치, PC, 에플 아케이드
가격: \13,500
편의: 어려움(반복 실패시 스킵가능)
제작: SIMOGO
좌표: STEAM

2018. 9. 27.

Octopath Traveler




 요즘은 길게 시간 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직업을 가진 사회인의 생활.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업무 이메일과 문자. 생각지 않게 터지는 업무 돌방 상황. 수시로 쳐다보고 계속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도무지 일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매일 삶에서 방해 없이 보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마 제 나이대의 많은 사람이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30대에서 40대까지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고 추억할만한 사람의 요즘 생활.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옥토패스 트레블러(Octopath Traveler)]는 자기 생활 없는 사회인에게 적절한 구닥다리 일본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옛 게임을 추억하게 만들 무려 8명의 이야기가 깔끔하면서도 깊이있게 즐길 수 있는 전투와 함께 제공되는 구미당기는 그래픽의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처음 게임의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했을 때, 8명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지 않거나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크게 실망했지만 실제 게임을 해보니 크게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8명의 캐릭터가 교차하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임의 흐름은 대충 이렇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8명의 캐릭터는 각각 4개의 챕터로 나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8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선택하여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선택한 캐릭터는 주인공이 되어 해당 캐릭터의 이야기를 전부 보기 전 까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변하거나 하는 특징은 없고 그저 해당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른 캐릭터를 조합해 보라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8명의 캐릭터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 없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서로 이어지고 엇갈리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반대로 그런 부분이 없기 때문에 캐릭터 선택이 자유로운것도 특징입니다. 챕터의 특정 부분에서 선택한 파티원간에 대화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큰 의미를 둘 정도로 깊이있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캐릭터와 이야기에 큰 비중을 두는 롤플레잉 장르로서는 드물게도 이 게임은 스토리와 캐릭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에서 캐릭터와 스토리는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즐겨도 충분하고, 전부 즐기고 싶으면 그러면 되는 정도의 가벼운 위치입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가 치중하고 있는 부분은 게임의 전투입니다. 게임의 전투는 레벨 노가다로 찍어 누르지 않고 적정 레벨에서 플레이 한다면 꽤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적절한 캐릭터의 조합과 육성을 요구합니다. 게임의 장치들도 이 전투를 보조하고 익힐 수 있도록 짜여 있습니다. 캐릭터의 챕터마다 걸려있는 레벨 제한은 그 레벨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전투를 배우고 응용하도록 요구 하고, 필드에서 캐릭터가 특정 행동을 통하여 아이템을 얻거나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필드 스킬이라는 구성 역시 캐릭터의 개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파티 조합의 길잡이를 위해 파티 구성을 강제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게임을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는 필드 스킬을 조합해 보면 자연스럽게 균형있는 파티를 갖추는 식입니다.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캐릭터의 직업 선택은 자유로워 지지만 캐릭터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게임 진행은 챕터를 열기위해 레벨을 올리며 캐릭터의 필드 스킬을 중심으로 직업 그리고 직업 스킬을 조합해 가며 사용자의 입맛에 맞는 파티를 갖추고 육성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 파티의 조합과 육성은 게임이 신경을 쓴 만큼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게임을 중반까지 진행해 보면 사용자는 어떤 익숙한 경험내지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디서 이런 구성을 접해본 것 같은데’하고 떠올려보면 이 구성은 모바일 게임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캐릭터의 육성, 조합, 수집이 주가 되고 게임의 이야기는 그것에 동기부여를 하는 구성. [옥토패스 트레블러]는 구닥다리 일본 롤플레잉 게임을 추억하는 게임이라고 광고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경험을 담고자 하는 모바일 게임의 변형에 가깝습니다. 결과는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는 올드 팬이 보면 기절할 정도로 캐릭터 사이의 관계 발전이나 이야기의 타당성을 무시한채로 전투와 육성 위주로 굴러감에도 꽤 경쾌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깔끔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전투는 간단하면서도 깊이있고 이야기는 잘 정돈되어 있어서 오랫동안 게임을 놓았더라도 다시 잡는데 어려움이 없스니다. 내키는 이야기를 선택하여 진행하면서 다양한 맵을 돌아다니면서 아이템을 수집하고, 레벨을 올리고 새로운 직업을 얻어 스킬을 얻어가며 캐릭터를 육성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모바일 게임에 가까운 가볍고 간편한 접근으로 추억하는 옛 게임을 즐기는 묵직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게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게임이 정말 구닥다리 일본 롤플레잉 게임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추억하는 게임을 돌이켜 볼 때, 그 게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붙는 수식어로서 낡은 게임이 된건지, 아니면 그 게임이 정말로 낡아서 이제는 대체가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런 게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게임의 예를 들어 보자면 [크로노 트리거]는 시간여행이라는 주제 속에서 훌륭한 캐릭터간의 관계 발전과 플레이어가 현재의 사건을 과거로 돌아가 개입하여 결과를 바꿀 수 신선함을 제공하였습니다. 낡음의 대명사로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조차 매 시리즈마다 용자와 마왕이라는 게임의 공식을 공격하고 뒤집는 이야기로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그러나 [옥토패스 틀레블러]는 아쉽게도 정말 낡은 이야기를 가진 게임입니다. 8명이나 준비해 두었지만 모두 상투적이고, 무개성하며 지루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한번 봤던 것 같은 캐릭터와 이야기, 경험해본 캐릭터와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딱히 다시 경험할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가뜩이나 이야기의 비중이 얕은 게임인데 그 수준까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잘 짜인 육성과 전투를 즐기는 것을 방해한다는 인상마저 같게 만듭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낡고 식상하지만 게임 구조는 요즘 생활에 알맞은 아쉽지만 나쁘진 않은 게임입니다. 발매된 플랫폼도 휴대할 수 있는 콘솔인 [스위치]이기 때문에 궁합도 좋습니다. 한 캐릭터당 3시간 정도면 끝을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는 이야기를 자신의 생활에 맞춰 즐길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란 참 흔치 않습니다.(거기에 DLC나 가챠도 없고요!) 음악과 그래픽은 개인적으로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추억을 돌이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여러 단점을 다 따져 보더라도 무거운 게임을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재구성한 구성이 신선하고 마음에 듭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캐릭터만 개선된다면 필자는 기꺼이 속편을 구입할 것입니다. 나름 잘 팔린 작품이니 만큼 더 개선된 모습으로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가격: 64800원
편의: 24~40시간, 어려움
제작: Square Enix, Acquire
좌표: 온라인&오프라인 판매

2017. 12. 27.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





 세대를 마무리하는 시대. 80년대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한 세대가,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와 개발 기술 부족 때문에 이상으로 덮어두고 있던 게임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 최근 콘솔 게임에서 느끼는 감상이자, [모놀리스 소프트웨어]의 신작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 2]에서 느낀 감상입니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과 그 후속기 플레이스테이션2를 관통하는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황금기. 그 시절에 꿈꾸던 롤플레잉 게임을 지금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이야기는 장르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동료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를 구한다. 개성있는 등장인물의 사정과 감정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가 힘입고 흡입력 있게 전달됩니다. 이야기를 이루는 각 사건의 맥락이나 당위성을 따지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로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시리즈 전통의 훌륭한 음악은 물론 캐릭터의 표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연출이나, 감정을 잘 전달하는 성우의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일부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에서 보이는 고민 없는 성차별과 성희롱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캐릭터 설정이 이야기의 수준을 심각하게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게임 세계의 설정과 전혀 관계없는 단어가 나오고, 여성 비하 표현이 서슴없이 반복되며 캐릭터의 외형과 연출은 지나치게 노골적입니다. 해당 문화에 이해를 두고 있는 특정 소수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다수에게 선보일 작품이었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자제해야 했습니다. 게임의 세계에 그러한 설정을 녹여내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기껏 잘 만들어진 캐릭터와 드라마가 흔한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의 변주로 추락한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특정 취향에 집중할게 아니라 게임의 세계와 설정으로 완결될 수 있는 이야기에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시리즈 특유의 세계와 그 세계를 모험하는 느낌은 이번 작에도 충실하게 잘 살아 있습니다. 거대한 생물 위에서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그래픽과 인상적인 장소로 가득한 필드는 이번에도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의도를 찾기 어려운 불친절한 구성과 심각할 정도로 불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경험을 그 크게 해칩니다. 게임의 지도가 보기 어려운 문제는 최근 패치로 인해 해결되었지만, 특정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 스킬을 체크하는 구성은 귀찮고 불편할 뿐입니다. 그 밖에 의도가 읽히지 않는 불편함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이는 게임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 내버려 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일부 텍스쳐가 로딩이 되지 않는다거나, 게임이 강제 종료되는 문제를 보면 제대로 다듬지 못하고 발매한 것 같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집니다.

게임의 다듬어지지 못한 인상은 게임의 가챠에서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에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이자 동료에 해당하는 “블레이드”를 가챠로 소환합니다. 블레이드는 종족, 성별, 속성, 무기 종류가 랜덤하게 조합되어 소환되는 일반 블레이드와 고정된 조합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레어 블레이드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는 레어 블레이드로 진행하게 됩니다. 레어 블레이드는 이벤트도 별도로 준비되어 있어서 게임을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레어 블레이드 육성이 필수입니다. 문제는 이 레어 블레이드의 소환 확률이 게임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낮다는 것입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전투는 꽤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게임을 진행하며 차근차근 배우게 되는데 레어 블레이드가 잘 나오지 않다 보니 게임을 배워야 할 시기에 필요한 블레이드가 없어서 게임을 제대로 익히지 못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 “드라이버 콤보”라는 시스템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특정 무기를 지닌 블레이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이 폭이 지나치게 좁아, 기껏 만들어둔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제대로 배우기도 어렵고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공략을 통해 미리 알고 진행한다고 가정해도, 어떤 블레이드가 나올지는 무작위고 플레이어가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서 필요한 블레이드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는지 진행을 통해 반드시 주어지는 블레이드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게 조절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반대로 원치 않는 블레이드를 강제로 사용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 뿐입니다.

또한 블레이드의 육성에는 많은 시간이 들고 게임 후반에 즐길 수 있는 켄턴츠는 충분히 않기에 블레이드를 얻기 위해 게임 후반을 소모하고, 블레이드를 얻고 보면 정작 육성할 수단은 단순한 노가다 밖에 남지 않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플레이어의 학습 단계와 블레이드의 육성에 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게임 중반쯤에는 모든 블레이드를 소유하고, 그 블레이드를 캐릭터 간 자유롭게 사용 가능해야 게임을 부드럽게 즐길 수 있을법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레어 블레이드는 잘 나오지 않고, 캐릭터 간 이동도 제한되어 있어서 멋대로 나오는 레어 블레이드를 어떻게든 굴려서 어렵게 게임을 진행하고, 원하는 레어 블레이드의 육성은 게임의 엔딩후에 별도로 진행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레어 블레이드를 엔드 컨텐츠로 사용할 목적으로 디자인했다면 2회차로 계승이라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아예 2회차 플레이 조차 없으니 그저 게임을 못 만들었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습니다.

레어 블레이드에 관한 문제는 각 블레이드의 이벤트와 육성에도 산재해 있습니다만, 전부 서술하자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이미 엉망진창인 시스템의 설명에 더 시간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전투로 넘어가겠습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전투는 게임의 복잡한 전투 시스템을 배우고 응용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이에 익숙해지는 후반까지는 즐겁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 후반으로 가면 적들의 패턴이 매우 단순해집니다. 전투 규칙상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후반의 적은 시간이 흐르면 즉사 공격을 사용하는 패턴이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게임 후반은 적의 패턴에 따른 대응이나 전략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적을 지우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결국, 적의 체력을 절반 정도 깎고 강한 콤보로 한 번에 지워버리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전투 전략의 부재는 아마도 레어 블레이드의 등장 확률이 낮고, 제대로 조합하기 어렵다는 문제로 인해 레어 블레이드의 개성에 따른 역할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적당히 속성만 맞추면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도록 조절한 결과 아닐까 생각됩니다. 블레이드의 캐릭터 간 이동만 자유로워도 덜 할 문제였을 텐데, 게임의 설정과 가챠를 맞추기 위해 내린 결론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가챠는 더 중요한 설정과 충돌하고 있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든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가챠는 플레이어에게 불편을 주고 경험을 해치는 아주 잘못된 시도입니다. 게임의 용병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모바일 게임의 구성을 도입해보자는 욕심 아니었나 싶지만, 그렇다면 정말 과욕이 부른 참사입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왕도 스토리, 풍부한 캐릭터의 설정과 그들이 이루는 이야기는 그 시절의 좋은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이야기는 결국 과거의 추억일 뿐 지금 해야 할 이야기는 할 수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과거에 갇혀있고, 현재에서 빌려온 유산은 소수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게임이 고집스럽게 집어넣은 구성 또한 지금 즐기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번잡합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로 만난 과거의 꿈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세대를 마무리하는 시대에 과거를 만나는 이유는 과거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작별 인사를 위한 만남 -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