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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8.

Disco Elysium





느닷없이 등장해서 필자의 올해의 게임이 된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에서 플레이어는 형사가 되어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누아르 추리물에 강한 영향을 받은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현실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과 비슷한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합니다. 게임의 진행은 누아르 물 하면 떠오르는 수사 과정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면 질문을 통해 사건의 단서를 얻고, 구석구석 뭐라도 있지 않을까 발품을 팔고 다니는 구성입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형사가 되어볼 수 있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24종류의 스킬이 있습니다. 이 스킬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고 자아를 가지고 플레이어와 치고받고 싸웁니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행동할 때마다 스킬 체크가 이루어집니다. 체력에 관한 스킬을 선호했다면 몸으로 들이받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며, 머리를 쓰는 스킬을 선호했다면 말로 풀어가는 상황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러한 이색적인 스킬 시스템은 게임의 설정을 통해 위화감 없이 플레이어에게 전달됩니다.

캐릭터 만들기에는 정치와 사상도 포함됩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현실과 아주 가까운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보이는 인터페이스 구석에 처박혀 읽어주길 바라는 설정이 아닙니다. 게임의 세계와 그곳에 있는 인물에 녹아들어 있는 매끄럽고 깊이 있는 역사와 정치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과(NPC) 대화를 하면서 원하는 성향의 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향은 플레이어의 능력치에 변화를 주거나 소소한 특전을 주는 “생각(Thought)”이라는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있어서 플레이어의 역할극을 강조해 줍니다. (간단하게 Perk를 생각하면 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디스코 엘리시움]의 NPC는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이들은 단순한 퀘스트 시작 지점이 아니라 퍼즐 그 자체입니다. 현실과 유사한 정치와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NPC는 현실의 인물과 유사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NPC는 선과 악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에서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입니다. 아름답게 주조된 고리퍼즐(Huzzle)처럼 게임 속 캐릭터들은 풀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합니다.

역사, 정치, 사상을 아우르는 게임의 깊이는 텍스트를 통해 완성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경험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이루어낸 최고의 성과입니다. 감각적인 스킬에 투자했다면 게임은 감정을 느끼는 멜로물이 되고 육체에 올인했다면 몸으로 부딪치는 누아르 물이 됩니다. 선택에 따라 제공되는 텍스트가 다를 뿐임에도 그런 차이를 만들 정도로 이 게임의 텍스트는 훌륭합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도 푹 빠져들 정도입니다.

텍스트도 훌륭하지만, 그래픽과 음악도 결코 떨어지는 수준은 아닙니다. NPC의 음성 더빙은 캐릭터에 색을 더해주고 배경음악은 게임의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더빙 또한 인상적인데 그 부분은 설명 대신 직접 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외형을 꾸밀 수 있는 선택지도 제법 폭넓게 준비되어 있어서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알맞은 모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이 음악에 꽤 자신이 있었는지 음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퀘스트도 있는데 필자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면 인상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퀘스트는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논리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임무와 멋대로 뛰쳐나가는 사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게임의 독특한 흐름은 정말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고 다시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텍스트로 복선을 깔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그래픽과 음악으로 절정을 찍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연출은 다른 텍스트 위주의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만족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디스코 엘리시움]을 추리 게임으로 즐긴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범인을 잡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큰 흐름은 플레이어의 추리와 무관하게 항상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플레이어가 퀘스트의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매우 적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정의에 따라 승리하는 게임을 상상했다면 이 게임의 결말에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추리물로 보자면 정말 엉터리입니다.

물론 그런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플레이어에게 실패와 패배를 경험시키고 싶어 합니다.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 이 게임은 극단적으로 게임 오버를 택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가 실패와 패배를 안고 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러 실패해볼 가치가 있을 만큼 실패에 따른 결과가 재미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 게임은 가상 현실의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겪은 실패와 패배를 치료하려 합니다.

플레이어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실패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사상을 전파하고 심각한 역사를 비웃고 사람을 속이고 사람에게 속으면서 게임의 끝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그 모든 실패에 대해 인상 깊은 감상을 남깁니다. 그 감상은 게임이 플레이어라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 이유와도 일치합니다. 게임은 게임을 이용해 메시지를 던집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끝에 받게 될 현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41,000
편의: 데킬라 선셋
제작: ZA/UM
좌표: 스팀 스토어 페이지

2019. 2. 19.

환원(還願) -Devotion-




 가정은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 종교는 마음의 쉼터. 익숙한 표어입니다. [RedCandleGames]의 신작 호러 게임 [환원(還願)(Devotion)]은 그 표어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게임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아니오”를 알고 있습니다. 단지 손톱에 박힌 가시 같아 차마 꺼내지 못할 뿐입니다.

 [환원]의 주요 무대는 편안하고 안락한 집입니다. 1980년대 대만에 있을법한 낡은 빌라. 거실과 주방이 있고 거실에서 시작되는 좁은 복도를 따라 화장실과 방이 둘 있는 구조입니다. 현관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면 소파와 TV가 보입니다. 소파 뒤쪽 벽에는 큰 가족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주방은 거실에서 문 없는 문을 통과해 들어갑니다. 주방에는 작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고 환기를 위해 불투명한 유리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실에 나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방이 나 있습니다. 복도 입구에 작은 방이 있고 굽어 있는 통로 중간에 화장실 그리고 통로 끝에 큰 방이 있습니다. 화장실은 작지만 평범합니다.(욕조도 있습니다!) 큰방과 작은방에는 가족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가구와 소품이 가득합니다. [환원]의 집은 미려한 그래픽으로 현장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대만의 낯섦과 익숙한 집의 풍경이 겹치는 독특한 경험을 줍니다.

 [환원]의 집은 2014년 데모만 공개된 후 사라진 전설의 호러 게임 [P.T.]의 장치로 완성됩니다. 게임이 시작되고 플레이어가 집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목재 가림막이 눈 앞을 가립니다. 가림막을 지나 거실에 들어서면 주위는 온통 시뻘건 조명에 물들어 있고 TV에서는 하얀 노이즈가 지글거리며 끓습니다. 쇼파위의 가족사진은 불탄 것처럼 일그러져 있고 주방에서는 썩은 악취가 풍깁니다. 좁은 복도는 지저분한 얼룩과 낙서로 가득하고 방은 모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복도를 되돌아 거실로 돌아오면 그곳은 이미 거실이 아닌 낯선 장소입니다. [P.T.]는 좁은 통로로 연결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협소한 공간의 공포와 낯선 미지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연결한 게임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환원]은 미려하게 표현한 집을 통해 익숙한  소품의 낮선 변화까지 체감할 수 있게 발전시켰습니다. 플레이어는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집을 뒤지며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집을 오갈 때마다 집은 광기에 찌들어 갑니다.

 [환원]의 사건은 광기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입니다. 사건 사이는 퍼즐로 막혀있고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집을 관찰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호러 게임에 익숙한 깜작 상자 연출을 포함한 굉장히 다채로운 연출을 보여줍니다. 호러 장르뿐만이 아니라 걷는 게임에서 빌려온 연출도 볼 수 있습니다. 호러 게임에 중요한 음향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시각이 아닌 소리가 플레이어게 길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퍼즐의 난이도가 너무 쉽게 느껴지거나 퍼즐의 이해도에 따라 동선이 늘어나 게임이 늘어질 수 있는것이 단점이지만 그것을 통해 준 신선함과 비교해보면 이해할 만한 수준입니다.

특히 플레이어를 캐릭터에 이입시키기 위해 호러 게임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도구를 이용해 엉뚱한 시도를 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이 도구는 게임 내내 귀를 채우는 불편한 소음과 비명, 섬뜩하고 끔찍한 비주얼과 완전 상반됩니다. 이 도구를 사용한 지점부터 게임은 의도적으로 플레이어로부터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을 끌어내려고 시도합니다. 강력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쾌감을 위해 호러 게임을 택한다면 이 지점에서 크게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신 게임이 의도한 공포가 아닌 여러 복잡한 감정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어주는 한편 게임에 짙게 깔린 공포와 줄곧 엎치락뒤치락하며 게임만의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중반까지가 가족의 이야기라면 게임은 후반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환원]은 종교에 대해 단편적인 감상을 말하는 대신, 종교에 대해 비난할 것은 비난하는 한편 종교의 교리는 이야기에 활용합니다. 이 게임에서 종교는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앞서 언급한 게임이 이끌고자 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게임의 메세지를 정리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민감한 주제이니만큼 조심스럽게 다룬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게임이 다루는 다른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생각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모호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명확한 결말이 주는 시원함을 원한다면 다른 게임을 선택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또한 게임의 후반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게임이 특정 등장인물을 다루는 관점에 불만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필자도 그런 감상을 느꼈으나 게임이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만한 설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난 상처는 아물어야 합니다. [환원]을 만든 이들도 가시를 꺼내는 시도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게임은 그에 대해 퍽 인상적인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엔딩이지만 [RedCandleGames]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엔딩임에는 확실합니다. 가시를 시원하게 뽑지 못했더라도 말입니다. 애초에 사회문제는 개인이나 작은 집단이 해답을 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로 [RedCandleGames]를 탓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다루기 어려운 주제로 이만큼 완성도 높은 호러 게임을 만들고 호러 게임에 다양한 감정을 끌어들여 독특한 결실을 맺은 시도를 칭찬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보았을 사회문제. [환원]은 그 사회문제를 독특한 호러 게임으로 빗어낸 수작입니다. 이 게임이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왔고 또 한동안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이 내심 분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17,500
편의: 2시간, 쉬움
제작: RedCandleGames
좌표: Steam


2018. 11. 29.

Return of the Obra Dinn



1802년, 상선 “오브라 딘”은 동양을 향해 런던에서 200톤의 교역품을 가지고 항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6개월 후 배는 희망봉의 랑데부 지점에 이르지 못하였고 실종이 선언되었습니다.

1807년 10월 14일의 이른 아침, 오브라 딘은 눈에 띄는 승무원 없이 손상된 돛과 함께 항구로 떠밀려 왔습니다. 당신은 동인도 회사 런던 사무소의 보험 조정인으로서 배에 탑승하여 승무원 기록서를 복구해야 합니다.


 투덜거리는 나룻배 사공을 뒤로 하고 올라선 단색의 면과 선으로 그려진 배. 점묘화처럼 흩어진 달빛 사이로 찢어진 돛이 펄럭입니다. 고개를 돌리니 갑판 한쪽에는 파리가 꼬인 시신이 있습니다. 백골이 되어버린 시신에 다가서 시계를 꺼내듭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초침과 분침이 빠르게 돌고 시계는 시신이 죽음을 맞이한 시간으로 플레이어를 데려갑니다. 모든 것이 멈춰 있고 소리만 흐르는 장소. 다툼과 비명 총성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흐르는 공간은 혼란이 가득합니다. 소리가 멎고 소란이 진정될 쯔음 책이 열리고 시신이 책에 기록됩니다. 기록은 답이 아닌 질문을 남깁니다. "죽은 이는 누구인가? 사인은 무엇인가?" 책이 덮이고 가까이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현재와 과거의 문을 오가며 플레이어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오브라 딘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된 책은 투껍습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9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은 장황하고 손에 든 것은 너무나 적어서, 이를 정리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퍼즐은 재미있습니다. 차분하게 하나씩 풀다보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단서는 다양하게 제공됩니다. 시신이 죽음 직전에 나눈 대화에 단서가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선실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소품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배에서 플레이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단서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사소한것도 놓치지 말고 치밀하게 게임을 파해쳐야 합니다. 그러한 플레이어의 수고에 걸맞게 단서는 아주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습니다. 대화는 훌륭한 더빙을 통해 캐릭터의 특징과 배경을 짐작게 하고, 중요한 사물은 단조로운 배경에서 도드라져 플레이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Return of the Obra Dinn]은 1인 개발의 한계 안에서 작품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을 잘 짚어낸 티가 나는 작품입니다. 오디오와 정지 화면을 이용한 상황극을 통해 에니메이션 작업을 줄이고, 독특한 그래픽 표현을 통해 시선을 유도하는 방식은 굵은 선과 강한 인상을 지닌 캐릭터를 사용하여 그래픽에 들어가는 작업량을 줄인 [Darkest dungeon]의 그래픽 표현 방식과 마찬가지로 작업량 대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효율적인 개발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이 무엇과 조합되어야 좋은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꼼꼼한 조사를 통해 완성된 배는 생동감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예측 불허한 사건은 논리를 바탕으로 풀어야 하는 퍼즐과 어울려 아주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조사를 통해 마련된 게임의 치밀한 설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이 어울려 현실감 있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Return of the Obra Dinn]은 치밀한 트릭이나 복잡한 사건을 파해치는 추리 게임이 아니라, 많은 단서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퍼즐 게임입니다. 어느 리뷰어는 이 게임을 크로스 퍼즐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됩니다. 시작부터 죽음의 순간으로 데려가는 시계가 나오는 만큼 게임의 이야기에는 오컬트 설정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정통 추리나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건의 전체적인 개연성이나 그것을 뒤집는 반전을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 독립된 퍼즐을 풀고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했을 때의 성취감을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맥락의 단서가 너무 많은 퍼즐에 사용되어 흥미를 떨어트리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어떻게든 응용해보려고 한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아마 이 부분은 제작자도 고민이 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개발자 [Lucas Pope]는 2016년에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처음 이 게임의 프로토 타입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완성된 게임의 도입부는 거의 똑같습니다. 프로토 타입과 최종 결과물을 바꿀 부분이 거의 없을 만큼 뚜렷한 계획에 따른 결과물이라 훌륭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게임의 전개와 소재는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나 [Return of the Obra Dinn]이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임인 동시에 효율적인 게임 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합니다. 재미있는 퍼즐 게임을 찾는 분은 물론 게임 개발자를 희망하거나 종사하고 계신 분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9.99
편의: 어려움, 13시간
제작: Lucas Pope
좌표: Steam, GDC 데모 버전

2018. 11. 25.

The Haunted Island a Frog Detective Game




 [The Haunted Island a Frog Detective Game]는 재치있는 농담이 가득한 그림책 같은 게임을 만드는 제작자 [Grace Bruxner]의 신작입니다. 에어리언이 가득한 카지노나 바닷 속 벼룩시장을 걷는 게임을 만든 게임을 만든 제작자가 이번에는 개구리 탐정이 유령섬의 비밀을 파해치는 어드벤처 게임을 선보입니다. 엉뚱한 농담에 웃고 황당한 곤충과 동물을 관찰하며 아주 간단한 퍼즐을 즐기는 게임입니다. 또는 그 반대로 즐겨도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산책하듯 즐길 수 있는 가벼운 게임입니다. 길어야 30분 정도면 끝을 볼 수 있는 짧은 게임인데, 그 강렬한 개성에 너무 일찍 끝나는 것이 아쉬워지는 게임입니다. [Grace Bruxner]의 작품은 순수한 가벼움과 순진한 웃음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게임의 끝을 보니 이 게임은 앞으로 시리즈로 제작될 계획인 것 같은데,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4.99
편의: 30분, 쉬움
제작: Grace Bruxner
좌표: itch.io (구입시 스팀 키 제공)

2018. 9. 27.

Octopath Traveler




 요즘은 길게 시간 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직업을 가진 사회인의 생활.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업무 이메일과 문자. 생각지 않게 터지는 업무 돌방 상황. 수시로 쳐다보고 계속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도무지 일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매일 삶에서 방해 없이 보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마 제 나이대의 많은 사람이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30대에서 40대까지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고 추억할만한 사람의 요즘 생활.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옥토패스 트레블러(Octopath Traveler)]는 자기 생활 없는 사회인에게 적절한 구닥다리 일본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옛 게임을 추억하게 만들 무려 8명의 이야기가 깔끔하면서도 깊이있게 즐길 수 있는 전투와 함께 제공되는 구미당기는 그래픽의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처음 게임의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했을 때, 8명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지 않거나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크게 실망했지만 실제 게임을 해보니 크게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8명의 캐릭터가 교차하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임의 흐름은 대충 이렇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8명의 캐릭터는 각각 4개의 챕터로 나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8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선택하여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선택한 캐릭터는 주인공이 되어 해당 캐릭터의 이야기를 전부 보기 전 까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변하거나 하는 특징은 없고 그저 해당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른 캐릭터를 조합해 보라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8명의 캐릭터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 없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서로 이어지고 엇갈리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반대로 그런 부분이 없기 때문에 캐릭터 선택이 자유로운것도 특징입니다. 챕터의 특정 부분에서 선택한 파티원간에 대화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큰 의미를 둘 정도로 깊이있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캐릭터와 이야기에 큰 비중을 두는 롤플레잉 장르로서는 드물게도 이 게임은 스토리와 캐릭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에서 캐릭터와 스토리는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즐겨도 충분하고, 전부 즐기고 싶으면 그러면 되는 정도의 가벼운 위치입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가 치중하고 있는 부분은 게임의 전투입니다. 게임의 전투는 레벨 노가다로 찍어 누르지 않고 적정 레벨에서 플레이 한다면 꽤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적절한 캐릭터의 조합과 육성을 요구합니다. 게임의 장치들도 이 전투를 보조하고 익힐 수 있도록 짜여 있습니다. 캐릭터의 챕터마다 걸려있는 레벨 제한은 그 레벨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전투를 배우고 응용하도록 요구 하고, 필드에서 캐릭터가 특정 행동을 통하여 아이템을 얻거나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필드 스킬이라는 구성 역시 캐릭터의 개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파티 조합의 길잡이를 위해 파티 구성을 강제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게임을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는 필드 스킬을 조합해 보면 자연스럽게 균형있는 파티를 갖추는 식입니다.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캐릭터의 직업 선택은 자유로워 지지만 캐릭터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게임 진행은 챕터를 열기위해 레벨을 올리며 캐릭터의 필드 스킬을 중심으로 직업 그리고 직업 스킬을 조합해 가며 사용자의 입맛에 맞는 파티를 갖추고 육성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 파티의 조합과 육성은 게임이 신경을 쓴 만큼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게임을 중반까지 진행해 보면 사용자는 어떤 익숙한 경험내지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디서 이런 구성을 접해본 것 같은데’하고 떠올려보면 이 구성은 모바일 게임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캐릭터의 육성, 조합, 수집이 주가 되고 게임의 이야기는 그것에 동기부여를 하는 구성. [옥토패스 트레블러]는 구닥다리 일본 롤플레잉 게임을 추억하는 게임이라고 광고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경험을 담고자 하는 모바일 게임의 변형에 가깝습니다. 결과는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는 올드 팬이 보면 기절할 정도로 캐릭터 사이의 관계 발전이나 이야기의 타당성을 무시한채로 전투와 육성 위주로 굴러감에도 꽤 경쾌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깔끔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전투는 간단하면서도 깊이있고 이야기는 잘 정돈되어 있어서 오랫동안 게임을 놓았더라도 다시 잡는데 어려움이 없스니다. 내키는 이야기를 선택하여 진행하면서 다양한 맵을 돌아다니면서 아이템을 수집하고, 레벨을 올리고 새로운 직업을 얻어 스킬을 얻어가며 캐릭터를 육성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모바일 게임에 가까운 가볍고 간편한 접근으로 추억하는 옛 게임을 즐기는 묵직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게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게임이 정말 구닥다리 일본 롤플레잉 게임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추억하는 게임을 돌이켜 볼 때, 그 게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붙는 수식어로서 낡은 게임이 된건지, 아니면 그 게임이 정말로 낡아서 이제는 대체가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런 게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게임의 예를 들어 보자면 [크로노 트리거]는 시간여행이라는 주제 속에서 훌륭한 캐릭터간의 관계 발전과 플레이어가 현재의 사건을 과거로 돌아가 개입하여 결과를 바꿀 수 신선함을 제공하였습니다. 낡음의 대명사로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조차 매 시리즈마다 용자와 마왕이라는 게임의 공식을 공격하고 뒤집는 이야기로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그러나 [옥토패스 틀레블러]는 아쉽게도 정말 낡은 이야기를 가진 게임입니다. 8명이나 준비해 두었지만 모두 상투적이고, 무개성하며 지루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한번 봤던 것 같은 캐릭터와 이야기, 경험해본 캐릭터와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딱히 다시 경험할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가뜩이나 이야기의 비중이 얕은 게임인데 그 수준까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잘 짜인 육성과 전투를 즐기는 것을 방해한다는 인상마저 같게 만듭니다.

[옥토패스 트레블러]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낡고 식상하지만 게임 구조는 요즘 생활에 알맞은 아쉽지만 나쁘진 않은 게임입니다. 발매된 플랫폼도 휴대할 수 있는 콘솔인 [스위치]이기 때문에 궁합도 좋습니다. 한 캐릭터당 3시간 정도면 끝을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는 이야기를 자신의 생활에 맞춰 즐길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란 참 흔치 않습니다.(거기에 DLC나 가챠도 없고요!) 음악과 그래픽은 개인적으로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추억을 돌이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여러 단점을 다 따져 보더라도 무거운 게임을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재구성한 구성이 신선하고 마음에 듭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캐릭터만 개선된다면 필자는 기꺼이 속편을 구입할 것입니다. 나름 잘 팔린 작품이니 만큼 더 개선된 모습으로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가격: 64800원
편의: 24~40시간, 어려움
제작: Square Enix, Acquire
좌표: 온라인&오프라인 판매

2018. 9. 10.

Simmiland




 [Simmiland]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문명 키우기 카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랜덤으로 골라 나오는 카드를 적절하게 선택하여 문명을 키워 나갸아 합니다. 숲에 나무를 만들어 주거나, 사막에 선인장을 만드는 식으로 작은 인간이 그들의 문명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세계를 가꾸어 주는 것이 플레이어의 할 일입니다.

게임의 목표는 100장의 카드 제한 안에서 문명을 끝까지 발전시키기.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술이 발견되는지 찾기 어렵고, 카드의 효과가 생각지 못한 재앙을 만드는 일이 잦아서 꽤 여러번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번개 한방에 잘 키워둔 문명이 불바다가 된다던가!) 그런 돌방상황이 게임의 매력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성가신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귀여운 그래픽과 빠른 진행 덕분에 가볍게 붙잡고 있기에 좋은 게임입니다. 카드 장수 제한이 없어 속 편히 즐길 수 있는 엔드리스 모드도 준비되어 있으니 게임을 공략해보고 싶은 분은 엔들리스 모드에서 연습해 보는것도 좋겠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3
편의: 어려움
제작: sokpop
좌표: itch.io

2018. 8. 30.

hoppa




 [hoppa]는 길 잃은 아기오리를 찾는 귀여운 게임입니다. 따듯한 색으로 둥글둥글 귀엽게 그려진 그래픽이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장대를 이용한 액션이 참 독특한데, 마우스를 이용하여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조작이 잘 정리되어 있고, 난이도가 야금야금 올라가도록 짜여있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PS. $3를 지불하면 제작팀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Sokpop Patreon으로 후원하면 매달 $3에 게임을 2개씩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후원해 보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후원 했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3
편의: 쉬움, 10분
제작: Sokpop
좌표: itch.io

2018. 5. 1.

Good doggo




 [Good doggo]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인터넷에서 짤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강아지의 재롱을 게임으로 옮긴 유쾌함이 마음에 드는 게임입니다. 강아지의 머리 위에 간식을 쌓아 올리며 균형을 잡는 아슬아슬함에서 떨어지는 간식을 빠르게 받아먹는 호쾌함으로 긴장 조절이 게임에 즐거운 강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간식을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은 간식을 쌓거나 더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업그레이드를 얻을 수 있는데, 같은 패턴을 반복해야 하는 구간이 늘어나 게임이 늘어지는 느낌입니다. 업그레이드로 간식의 수를 늘리는 대신, 그냥 오래 버티는 만큼 늘어나는 쪽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에 판매 중인 상용 버전을 사면 더 다양한 강아지의 머리 위에 간식을 올릴 수 있으니, 심심하신 분은 휴대폰에 하나쯤 담아두어도 좋겠습니다.


플랫폼: 웹, 윈도우, 맥, 리눅스, 안드로이드, iOS
가격: 무료 또는 $2 상용버전
편의: 쉬움
제작: Cozy game pals
좌표: itch.io

2018. 2. 15.

Celeste




 [Celeste]의 주인공은 산을 오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고자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도 같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산의 정상을 향하며 계속 갈등합니다.

이게 맞는 길 일까? 산의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거친 픽셀로 그려진 2D 플랫포머 게임. [Celeste]에는 움직이는 발판이 있고, 찔리면 죽는 가시가 있고, 펄펄 끓는 용암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플레이어는 달리고, 뛰고, 공중에서 달립니다. 하지만 일찍이 가시와 용암이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게임은 많았고, 달리고 뛰는 게임 또한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를까요? 어째서 플레이어는 산에 올라야 할까요?

그 이유가 이 게임을 특별한 게임으로 만듭니다.

[Celeste]는 정말 어려운 게임입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은 정확한 판단과 완벽한 조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늘 플레이어의 예상을 뛰어넘어 플레이어가 실패하게 만듭니다. 주어진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익히지 못한다면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이 바로 [Celeste]의 산입니다. 어지간히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수백 번은 물론 수천 번은 실패해야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이토록 막막하게 어려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불안을 느끼게 합니다.

이게 맞는 길 일까? 내가 클리어할 수 있을까?

이 가차 없는 산은 때때로 플레이어가 들어온 입구를 막아 퇴로까지 차단해 버립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기 싫다면 눈앞의 난관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은 난관을 도전으로 바꾸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에 플레이어가 볼 수 없게 가려져 있거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는 장애물은 없습니다. 거칠게 막힌 통로는 돌아가지 말고 극복하라는 의미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극복을 요구받는 동시에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무한한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전보다 더 어려운 도전을 위한 각오를 다질 때, 게임은 음계를 높이고 빠른 음정으로 응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게임의 이야기를 통해, 게임의 도전을 극복하는 것이 곧 주인공의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와 일치함을 깨닫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전진은 게임의 전진이고, 게임의 전진은 주인공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플레이어가 난관에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것은 곧 게임에서 게임 주인공이 극복하는 이야기와 맞물려 플레이어를 움직이는 강한 힘이 되어줍니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주인공은 영원히 플레이어와 함께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Celeste]의 산은 극복을 의미하는 동시에 큰 실패의 위험을 껴안은 게임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작자가 게임에 담은 확신에서 오는 플레이어를 향한 도전입니다. 그것은 어렵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난관이며 그것과 같은 무게를 지닌 극복입니다. 바로 그 무게가 게임의 가상에 현실을 부여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진심으로 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플레이어는 충족을 느낍니다. 그것은 정해진 게임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결말에서 오는 충족이 아닙니다. 산의 입구에 서 있던 나와 산의 정상에 선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얻는 충족입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 선 플레이어는 다시 산의 입구로 돌아갑니다. 전에 없던 확신과 자신감을 품고. 더 어렵고 더 많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플랫폼: PC, PS4, 스위치, XBOX, 맥, 리눅스
가격: $19.99
편의: 매우 어려움
제작: Matt Makes Games
좌표: 홈페이지

2018. 1. 10.

Desert Golfing


xkcd

귀하의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이 죽일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를 찾으십니까?

여기 사막골프가 있습니다-!

무한한 사막에서 임의 생성되는 무한의 골프 코스를 즐기세요.
(운이 좋으면 플레이 타임 300~400시간, 21,700홀을 지나 끝을 볼지도 모릅니다)
지금 커피 한잔보다 저렴한 가격 단돈 $2.00에 즐기실 수 있습니다.


심심해서 광고처럼 시작해 봤습니다.

도대체 제목을 찾을 수 없는 유명한 과학 만화(쓰고 보니 책을 샀던 기억이 나서 뒤져봤습니다. 있네요. xkcd, 한국에는 [위험한 과학책]으로 발간되어 있습니다) xkcd의 새해 에피소드에서 처음 본 게임입니다. 주인공이 소파에 누워서 [Desert Golfing]을 플레이하는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레딧에서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온 것을 봤습니다.

“한 플레이어가 영원할 것 같은 ‘사막 골프’를 21,000홀의 여정 끝에 엔딩을 보다.”
(One Player's 21,000 Hole Quest to Beat the Seemingly Endless 'Desert Golf')

기억에 남아있던 게임을 기사가 쑥 뽑아 올린 셈이죠. 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엔딩을 본 것이 기삿거리가 되는 걸까? 궁금해서 직접 한번 해봤습니다.

결과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본래 사람이 별것 아닌 일에 목숨을 걸기 마련이니까요.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딱 적당한 게임입니다. 스마트폰에 넣어두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서, 잠시 즐기기에 정말 어울리는 그런 게임입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처럼 특별히 대단치 않아도 있으면 좋은 그런 게임입니다. 그러니 심심하신 분은 한번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아나요? 지갑을 거덜 내는 그 게임을 대신할 저렴한 게임이 되어줄지….


플랫폼: 윈도우, 맥, ios, 안드로이드
가격: $2.00
편의: 
제작: Captain Games
좌표: itch.io

2018. 1. 9.

Localhost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높은 고음의 소프라노 목소리.

“당신의 데이터를 삭제해야 겠어요”

무신경한 기계음이 짧게 지나갔다. 간신히 실루엣만 남은 여성을 닮은 기계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다. 지워졌다. 내가 지웠다. 나는 기계에서 드라이브를 꺼내었다. 책상에는 아직 데이터가 든 드라이브가 남아있다. 드라이브 전면의 강한 색이 사무실의 푸른 조명과 섞여 신경에 거슬린다. 그 또는 그녀 아니면 그것의 말처럼.

내가 끝까지 들어야 했을까? 무언가 잡아내지 못한게 있을까?

처음이라면 고민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호 프로그램일 뿐이야. 무시해. 일을 계속해. 휴대폰에 남아있는 사장의 문자를 멍하니 바라본다. 데이터 드라이브를 휴머노이드에 밀어넣고, 데이터 삭제를 위한 승인(언락)을 얻는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순히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존재는 아마 없을 테니까. 그것 또한 지워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럴듯한 이야기와 안개같은 논리로 삭제를 거부했다.

전부 거짓말이거나 혹은 일방적인 진실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계속 질문하고 있다.
그 애원의 사실과 무관하게 내 행동은 정당한 걸까?

고개를 젓고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책상을 더듬어 드라이브를 잡고, 기계에 밀어 넣는다.
날카로운 기계음이 짧게 지나갔다. 간신히 실루엣만 남은 여성을 닮은 기계가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한다. 방금 지운 그것과 똑같이.

[Localhost]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4.99
편의: 갈등, 30분
제작: Aether interactive
좌표: itch.io


2017. 11. 27.

What Remains of Edith Finch





 걷는 게임의 목표는 게임이 의도한 분위기와 이야기를 온전히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걷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게임이 변한다는 것은 게임의 분위기와 이야기가 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게임에 변화를 기대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가치 있는 행동을 하길 원하며 그것은 게임의 변화로서 증명됩니다. 걷는 게임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플레이어가 게임의 정보를 수집해서 이야기를 해석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게임이지만, 이는 게임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고 게임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걷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는 비평에 자주 직면합니다. 걷는 것, 게임에서의 이동만으로는 가치 있는 행동으로서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변화를 기대하는데 게임은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기발한 답을 제시한 게임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바꾸기 전에, 플레이어의 기대를 뛰어넘어 게임이 먼저 변해 버리면 어떨까요? [What Remains of Edith Finch]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만들어 둔 변화에 참여시키는 것을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 게임입니다. 게임의 구성은 일반적인 걷는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플레이어의 조작은 억제되어 있고, 게임은 이야기와 분위기의 전달에 모든 자원을 투자합니다. 다만 특이한 점은 조작의 의미가 게임에서 거듭 변한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입력하는 방법(조작)은 같지만, 입력에 따른 게임의 반응, 즉 플레이어의 행동은 게임에서 변화를 거듭합니다. 이는 게임이 행동의 주체와 행동이 일어나는 무대를 급격하게 바꿀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플레이어가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고 행동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재미를 느낍니다. 게임 전체가 조작하는 방법을 밝혀내는 퍼즐 또는 추리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적으로 플레이어가 게임에 흥미를 잃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꽤 단순한 이유입니다. 바로 준비해둔 변화의 품질이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였고, 행동에 만족할 수 있도록 뛰어난 연출을 도입했습니다. 게임 전체가 집착에 가까울 만큼 높은 수준으로 완성되어 있어서 가능한 역할 전환입니다. 그러나 결국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의 맥락이 희미해졌다는 인상은 피하기 힘듭니다. 화려하고 인상적인 무대가 끝난 뒤에 남은 것은 완성된 이야기를 체험한 뒤에 남는 깊은 여운이 아니라, 도착지를 찾지 못한 공허함이었습니다. [What Remains of Edith Finch]는 체험을 다양하게 만들어 걷는 게임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게임의 변화가 이야기 전달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이는 꼭 걷는 게임이라는 장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당장 어찌 될 문제도 아니므로 이것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장르를 넘어 게임의 한계에 도전한 게임이니만큼, 그 한계에 부딪힌 결과를 보는 것은 복잡한 심경입니다.


플랫폼: PC, XBOX, PS4
가격: 2만 1천원
편의: 쉬움
제작: Giant Sparrow
좌표: 스팀

2017. 11. 13.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사회고발: A Normal Lost Phone, Another Lost Phone: Laura's Story





 전달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우연인 척, 치밀한 계획하에 전달하는 게임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내민다면 손사래를 치고 도망갈 법한 내용을 일단 한발 담그게 만드는 치밀함. 계획을 위한 준비물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스마트폰입니다. [A Normal Lost Phone]과 [Another Lost Phone: Laura's Story]는 묵직한 이야기를 독특하게 담은 게임입니다. 두 게임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형식이 비슷하므로 한꺼번에 소개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알려드리면 게임의 재미를 떨어트릴 수 있으니 게임의 형식만 다루고 넘어갈까 합니다.

두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주인을 잃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따라서 PC 버전보다는 스마트폰 버전을 즐기는 것을 추천합니다) 게임의 시작은 가볍게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잘 쓰인 가상의 대화는 사건을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에게 전달합니다. 천천히 조각나있는 누군가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불안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스마트폰의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 질문을 떠올린 순간부터 본격적인 퍼즐 풀이가 시작됩니다. 감추어진 사건에 접근하기 위해 스마트폰 속 정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조합하여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게임의 큰 흐름입니다. 처음 나온 작품 [A Normal Lost Phone]은 퍼즐이 간결하고 이야기와 메시지에 더 힘이 실려있고, 독립된 다른 이야기를 다룬 속편 [Another Lost Phone: Laura's Story]는 조금 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발전된 퍼즐을 갖고 있습니다.

두 게임 모두 의미 있는 사건을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가상의 주인과 그 주변 인물 사이의 대화는 개성과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쓰여있고, 사건을 구성하는 단서들 또한 빈틈없이 잘 짜여 있습니다. 게임의 외형과 구조는 실제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비하면 기능이 부족하긴 하지만, 게임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메시지를 읽거나, 스마트폰의 옵션에서 실제 게임의 설정을 변경하는 식으로 게임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조작 자체가 스마트폰의 그것과 같아 PC에서는 다소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스마트폰으로 즐긴다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사용과 게임의 유사성을 토대로 추리 혹은 퍼즐 게임을 재구성한 게임이 이 작품뿐만은 아니지만, 이만큼 탄탄하게 만들어진 게임은 많지 않습니다.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만큼이나, 게임이 던지는 메시지 또한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게임 모두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또는 이미 겪은 일을 다룹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게임이 던지는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게임을 나쁜 게임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한편 높은 확률로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게임이 개인정보 해킹을 다루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상이며 현실에서는 다른 대응을 해야 한다고 게임 스스로 말합니다. [A Normal Lost Phone]과 [Another Lost Phone: Laura's Story]가 다루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지만 무겁습니다.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플랫폼: iOS, 안드로이드,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각 3,300원(스팀 기준)
편의: 어려움, 1시간
제작: Accidental Queens
좌표: 스팀, itch.io

2017. 10. 19.

A Mortician's Tale




 죽음은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죽음은 자주 게임 플레이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지만 그사이의 과정이 중요할 뿐, 죽음 그 자체가 다루어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죽음은 보통 어둡고, 두렵고, 손해 보는 사건입니다.

 [A Mortician's Tale]은 그런 죽음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임입니다. 죽음은 담담하게 일상의 일부로 다루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장의사가 되어 장례식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이나 어드벤처 게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장르를 기대하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겁니다. 게임의 구성은 어린아이용 교육용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손을 잡고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죽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실패할 수 없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일도 없습니다. 이 게임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도전이 아닌 죽음에 대한 안전한 접근입니다.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에 안전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게임입니다. 그런데도 필자는 시신을 염하는 과정에서 속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게임 후반에야 괜찮아 지더군요.) 이 게임이 힘들어서 도저히 플레이할 수 없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래도 한번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장례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떤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관련된 사회문제는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죽음을 호기심이나 흥밋거리가 아닌, 현실의 직업을 통해 진지하게 다루는 독특한 게임이니 조금 용기를 내서 접해보시길 권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5,500원
편의: 쉬움, 1시간
제작: Laundry Bear
좌표: itch.io or Steam


2017. 10. 15.

Tacoma




 우주는 넓고 사람은 작습니다. 상주 직원 10명 이하. 행성 간 화물 수송을 보조하는 우주 기지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요? 아마 상상보다 작을 겁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거대 기업에 갇혀 살아가는 공간. 모두 떠나길 원했고, 지금은 모두 떠났습니다. 당신은 텅 비어있는 그곳에 홀로 들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Tacoma] 기지의 이름입니다.

플레이어는 기지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에서 일을 받은 하청 직원입니다. 탐사를 위한 돋보기와 추리를 위한 노트는 필요는 없습니다. 할 일은 구역으로 나뉜 기지를 순서대로 이동하며 자료를 모으는 것뿐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재생하고, 망가진 부분을 복원하고, 잠긴 문이나 사물함을 열기 위한 비밀번호 찾기 정도가 가장 큰 위험입니다. 느긋하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미래에도 값싼 단말기의 처리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닙니다) 손때묻은 낡은 기지를 탐사하면 됩니다.

먼 우주로 떠났지만 [Fullbright]의 신작 [Tacoma]는 가까운 집을 무대로 한 그들의 전작 [Gone Home]과 비슷한 첫인상을 줍니다. 사람이 살아간 흔적이 널브러진 공간에서 흔적을 정리하여 사건을 완성하는 것이 게임의 주된 흐름입니다. 이번에 다른 점은 이해하기 훨씬 쉽고, 완결되어 있으며, 또 더욱 흥미진진하다는 것입니다. 한곳에 멈춰서 있어야 하거나, 공백으로 이야기를 처리해야 하는 걷는 게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ullbright]는 AR 영상이라는 발상을 떠올렸습니다. 실존했던 인물의 실루엣을 딴 가상 데이터가 실제 인물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바로 AR 영상입니다.

우주 기지에 있었던 여러 인물의 대화와 행동은 짧은 영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영상을 원하는 속도로 몇 번이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이야기가 지루하다면 아예 무시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선택 가능한 구성은 게임의 설정과 잘 어울리고, 플레이어가 게임을 이끌어 가는 느낌을 주는 덕분에 몰입감을 크게 높여줍니다. [Fullbright]의 특기인 세밀한 사물과 배경 묘사도 여전해서, 플레이어의 노력에 따라 사건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전작 [Gone Home]에서는 소소한 물건까지 집착에 가깝게 표현했으나, 이번에는 사건에 의미 있는 물건 위주로 비중이 조절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게임 경험 전체로 보면 좋은 결정입니다. 플레이어가 사건과 관계없는 물건을 몇 개 들여다보다 전체에 흥미를 잃는 것 보다는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Tacoma]의 이야기는 초반에 흥미를 잃고 그만두기에는 너무 매력적입니다. SF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익히 봤을 법한 내용이라서“겨우 이거야?”라고 시큰둥하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은 같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익숙한, 가상의 사회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질문하는 SF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짧은 게임에서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니, 고민해보면 대단히 깊이 있지도 않고, 공감하기에 껄끄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재미있게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는 흥미롭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오늘날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미래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고, 갈등이 매끄럽게 완결되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이건 놓치면 손해입니다. 내키지 않으면 할인할 때 사면 됩니다. 한국어화도 되어 있습니다.

[Tacoma]는 걷는 게임을 잘 만드는 회사가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 게임입니다. 걷는 게임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리뷰로 게임의 구조에 대해 길게 떠들지 않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E3에서 이 게임의 광고를 무슨 온라인 게임처럼 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해보니 화가 치밀 정도로 포인트를 짚어내지 못한 형편없는 광고였습니다. 공식 트레일러가 게임의 이미지와 그나마 가까우니 그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유명한 게임으로 [Deus Ex] 시리즈가 있습니다. 장르에 충실한 게임인 동시에 생각해볼 이야기를 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좋은 게임입니다.


플랫폼: PC, XBOX
가격: $19.99
편의: 쉬움, 드라마
제작: Fullbright
좌표: itch.io , 스팀 , GOG

2017. 3. 10.

EYE




 [EYE]는 호러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본래 $0.99에 판매 중인 게임이나, 대통령 탄핵 기념 무료 공개 중이라 소개해 봅니다. 게임에서 항상 플레이어를 지켜보는 “눈”을 이용한 독특한 연출과 장치가 인상적인 게임입니다. 다소 어렵지만 플랫포머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즐겁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웃음) 화면의 크기를 키워 가독성을 높이고, 이야기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0.99(무료로 할인중)
편의: 어려움
제작: 2gold
좌표: itch.io

2017. 2. 25.

Night in the Woods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히 마무리되었으니 그걸로 괜찮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인공이 친구와 끝없이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농담이 중요합니다. 게임을 해보니 알겠습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관계는 대단합니다. 가벼운 농담은 꺼내기 너무 무거운, 감추고 싶은 상처와 아픔을 나누기 위한 암시입니다. 농담과 웃음은 서로의 믿음을 확인시키고 삶의 상처를 덮어 도닥여 줍니다.

그들의 시시콜콜한 이탈도 재미있고 중요합니다. 그건 썩 아름답지 못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 동감하고, 심지어 감동하게 됩니다. 책임은 우리를 언제나 무겁게 누르고 있고, 실패의 대가는 가혹합니다. 그것은 삶에 눌려 터지지 않기 위해 튀어나온 부분입니다. 우리 또한 겪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Night in the Woods]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동감하며 나를 기억해내는 게임입니다. 게임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겪어 보았음 직한 이야기를 내 주위에 있음 직한 캐릭터로 풀어냅니다. 그것은 억지로 꾸며진 느낌이나, 엉성하게 짜 맞춘 티를 내지 않습니다. 게임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매력적인 캐릭터와 재치 있는 웃음으로 느긋이 풀어갑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승전결을 갖춘 심각한 사건이 존재합니다. 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암시와 그것이 가져올 파멸에 대한 거창한 묘사가 게임 내내 이어집니다. 나름 흥미진진하고 훌륭하게 전개되는 편이지만, 워낙 시시콜콜한 부분이 뛰어나다 보니, 심각한 부분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아 우스울 지경입니다. 필자는 귀찮아서 대충 넘겼는데, 게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칠 여유가 있다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필자는 제작자가 일부러 게임에서 심각한 사건의 분량을 줄였다고 생각합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거대한 음모와 혐오가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뜻밖에 거대한 힘을 목격하게 됩니다. 서로의 유대와 옳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이따금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한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힘에 비하면, 까짓 위기는 별거 아닙니다.

[Night in the Woods]는 현실을 용감하게 표현한 게임입니다. 흔치 않은 시도이자, 흔치 않은 성과입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정말 마법 같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게임의 구성을 집어넣은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훌륭한 솜씨로 그려진 그래픽과 음악 그리고 기억에 평생 남을만한 캐릭터에 비해, 게임의 구성을 빌려온 부분은 거칠고 많이 부족합니다. 플랫포머 게임이라 칭하기에는 규칙이 엉망이고, 어드벤처 게임이라기엔 퍼즐이 빈약합니다. 차라리 과감하게 생략하고, 대화와 이벤트에 더 힘썼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19.99
편의: 9시간, 쉬움
제작: Infinite Fall
좌표: 공식 홈페이지


#3월 19일 리뷰 수정

2017. 2. 4.

Everything is going to be ok




Page24 아이콘을 클릭하자 대충 그려진 토끼와 고양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848명이 시청 중) 토끼는 용암에 끓고 있는 신세를 한탄하고, 고양이는 격려의 응원을 외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희망이 남아있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리고 고양이는 용암에 가라앉아 죽습니다.


이제는 쓰이지 않는 낡아빠진 90년대 인터넷 이미지와 박물관에 들어가면 딱 좋을 법한 영상 클립으로 게임을 만드는 제작자 Nathalie Lawhead의 신작 [Everything is going to be ok]는 많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세상은 이제 끝났습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고 내 신세는 비참합니다. 그 와중에 나보다 영향력 있는 것들은 끝없이 (나에게)공허한 희망을 외칩니다. 아직 괜찮다고, 멀쩡하다고 말입니다. 나는 죽겠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현실에 냉소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끝났어, 나는 좋아질 수 없어, 이렇게 된 거 세상이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국경을 막론하고 어느 인터넷 사이트를 가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ok]는 특유의 감각으로 냉소하는 인터넷을 그려냅니다. 귀여운 캐릭터로 잔뜩 일그러진 모습으로, 기억의 한쪽이 비꼬아놓은 웃음으로 전달됩니다. 외롭고 출구도 답도 없는 것들을 그려내지만, 생각보다 숨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보고 웃고 있으면 묘하게 정말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아서 오히려 힘이 납니다. 스케일 크게 인터넷 전체로 드립을 치는 게임이라고 할 만합니다.

유머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이 게임에도 그런 힘이 있습니다.
돌아보기 싫은 현실을 돌아보고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
편의: This is internet
제작: Nathalie Lawhead (홈페이지 들어가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좌표: itch.io


2017. 1. 11.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






 때로 인터넷에서 나를 대신하는 캐릭터를 만듭니다. 좋아하는 작품의 인물이나 동물 또는 다른 무언가로 나를 표현합니다. 그러는 편이 평범하고 재미없는 나보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쉽고, 타인의 관심은인터넷에서 내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는 그런 존재감 넘치는 캐릭터로 가득한 게임입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이 게임에서 당신의 역할이니까요.

세계는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에 주입 당한 나노머신과 권력의 폭력에 의해 통제당합니다. 위기의 인류, 삭막한 디스토피아! 하지만 그것은 이 게임의 주제가 아닙니다.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는 작은 바(bar)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임입니다. 바는 뮤턴트와 안드로이드가 거니는 네온사인 도심의 변두리에 있습니다. 바의 이름은 “VA-11 HALL-A“ 발음이 어려워서 게임에서는 ”발할라(Valhalla)“라고 불립니다. 플레이어는 그곳의 바텐더이자 다가오는 월세의 위기와 싸우는 알바 전사입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천천히 텍스트를 읽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긋한 게임입니다. 바를 찾아오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칵테일을 만들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약간의 미니게임과 변주가 있지만, 대단하다고 적어둘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캐릭터는 개성이 강하다 못해 어색하고, 세계는 너무 혼란스러워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낯선 일을 처음 시작하면 두렵고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닌 것처럼, 이 게임도 한동안은 혼란스럽고 모호하게 시간이 흘러갈 겁니다.

모호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터넷의 타인 같던 캐릭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를 경계하는 사람도 있고, 오래전부터 친구로 지내던 사람도 있고, 플레이어를 아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플레이어가 건넨 술 한 잔에 그들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플레이어는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흥미를 끌기 위해 이것저것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던 캐릭터가, 다양한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합니다.

억지스럽던 캐릭터에게 쉽게 마음이 가고, 혼란스럽던 게임의 세계가 더욱 얽혀가는 과정에 깊게 빠져드는 이유는 게임이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 그리고 인터넷 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사용하고 있는 게임은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모험에 뛰어듭니다. 어째서 캐릭터에게 고양이 귀가 달려 있을까?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인터넷 포럼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현실에서 마이너 취급되고 비아냥거림으로 일축되는 다양한 문화를 게임은 가상의 세계 중심에 박아놓고 거대하게 확대합니다. 게임의 이야기를 통해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의 문화를 면밀하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는 기념비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인터넷 문화 등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문화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체험을 제공한 게임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비록 만들어진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이 게임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캐릭터 너머의 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나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장하게 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만 6천원
편의: waifu
제작: Sukeban Games
좌표: 스팀

2016. 12. 26.

THE MIGRATION



ships passing in the night

“지금 당장 어딘가로 잠시 떠나고 싶으십니까?”

정말 부담 없이 짧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게임이 있습니다.
걷는 게임(Walking Simulators)이라고 불리는 장르의 게임입니다.

걷는 게임은 말 그대로 걷는 게임입니다.
보통은 게임 속을 거닐며 게임의 분위기를 즐기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을 아주 잘 만드는 Connor Sherlock라는 개발자가 있습니다.

그는 거대한 조형물과 넓은 지형을 다룹니다.
게임의 수많은 변수를 조절하여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게임 속을 걷는 플레이어가 전율을 느끼고, 분위기에 빠져들어
잠시 현실을 잃어버리는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제작자입니다.

[THE MIGRATION]은 이제까지 해본 그의 작품 중 최고의 게임입니다.
10분 남짓한 매우 짧은 게임이지만, 아주 강렬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가능하면 방에 불을 끄고 헤드폰을 끼고 즐기시는 것이 좋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2
편의: 짜릿함
제작: Connor Sherlock
좌표: i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