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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8.

Disco Elysium





느닷없이 등장해서 필자의 올해의 게임이 된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에서 플레이어는 형사가 되어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누아르 추리물에 강한 영향을 받은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현실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과 비슷한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합니다. 게임의 진행은 누아르 물 하면 떠오르는 수사 과정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면 질문을 통해 사건의 단서를 얻고, 구석구석 뭐라도 있지 않을까 발품을 팔고 다니는 구성입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형사가 되어볼 수 있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24종류의 스킬이 있습니다. 이 스킬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고 자아를 가지고 플레이어와 치고받고 싸웁니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행동할 때마다 스킬 체크가 이루어집니다. 체력에 관한 스킬을 선호했다면 몸으로 들이받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며, 머리를 쓰는 스킬을 선호했다면 말로 풀어가는 상황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러한 이색적인 스킬 시스템은 게임의 설정을 통해 위화감 없이 플레이어에게 전달됩니다.

캐릭터 만들기에는 정치와 사상도 포함됩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현실과 아주 가까운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보이는 인터페이스 구석에 처박혀 읽어주길 바라는 설정이 아닙니다. 게임의 세계와 그곳에 있는 인물에 녹아들어 있는 매끄럽고 깊이 있는 역사와 정치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과(NPC) 대화를 하면서 원하는 성향의 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향은 플레이어의 능력치에 변화를 주거나 소소한 특전을 주는 “생각(Thought)”이라는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있어서 플레이어의 역할극을 강조해 줍니다. (간단하게 Perk를 생각하면 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디스코 엘리시움]의 NPC는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이들은 단순한 퀘스트 시작 지점이 아니라 퍼즐 그 자체입니다. 현실과 유사한 정치와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NPC는 현실의 인물과 유사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NPC는 선과 악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에서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입니다. 아름답게 주조된 고리퍼즐(Huzzle)처럼 게임 속 캐릭터들은 풀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합니다.

역사, 정치, 사상을 아우르는 게임의 깊이는 텍스트를 통해 완성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경험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이루어낸 최고의 성과입니다. 감각적인 스킬에 투자했다면 게임은 감정을 느끼는 멜로물이 되고 육체에 올인했다면 몸으로 부딪치는 누아르 물이 됩니다. 선택에 따라 제공되는 텍스트가 다를 뿐임에도 그런 차이를 만들 정도로 이 게임의 텍스트는 훌륭합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도 푹 빠져들 정도입니다.

텍스트도 훌륭하지만, 그래픽과 음악도 결코 떨어지는 수준은 아닙니다. NPC의 음성 더빙은 캐릭터에 색을 더해주고 배경음악은 게임의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더빙 또한 인상적인데 그 부분은 설명 대신 직접 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외형을 꾸밀 수 있는 선택지도 제법 폭넓게 준비되어 있어서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알맞은 모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이 음악에 꽤 자신이 있었는지 음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퀘스트도 있는데 필자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면 인상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퀘스트는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논리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임무와 멋대로 뛰쳐나가는 사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게임의 독특한 흐름은 정말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고 다시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텍스트로 복선을 깔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그래픽과 음악으로 절정을 찍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연출은 다른 텍스트 위주의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만족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디스코 엘리시움]을 추리 게임으로 즐긴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범인을 잡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큰 흐름은 플레이어의 추리와 무관하게 항상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플레이어가 퀘스트의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매우 적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정의에 따라 승리하는 게임을 상상했다면 이 게임의 결말에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추리물로 보자면 정말 엉터리입니다.

물론 그런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플레이어에게 실패와 패배를 경험시키고 싶어 합니다.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 이 게임은 극단적으로 게임 오버를 택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가 실패와 패배를 안고 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러 실패해볼 가치가 있을 만큼 실패에 따른 결과가 재미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 게임은 가상 현실의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겪은 실패와 패배를 치료하려 합니다.

플레이어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실패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사상을 전파하고 심각한 역사를 비웃고 사람을 속이고 사람에게 속으면서 게임의 끝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그 모든 실패에 대해 인상 깊은 감상을 남깁니다. 그 감상은 게임이 플레이어라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 이유와도 일치합니다. 게임은 게임을 이용해 메시지를 던집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끝에 받게 될 현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41,000
편의: 데킬라 선셋
제작: ZA/UM
좌표: 스팀 스토어 페이지

2018. 2. 15.

Celeste




 [Celeste]의 주인공은 산을 오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고자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도 같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산의 정상을 향하며 계속 갈등합니다.

이게 맞는 길 일까? 산의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거친 픽셀로 그려진 2D 플랫포머 게임. [Celeste]에는 움직이는 발판이 있고, 찔리면 죽는 가시가 있고, 펄펄 끓는 용암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플레이어는 달리고, 뛰고, 공중에서 달립니다. 하지만 일찍이 가시와 용암이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게임은 많았고, 달리고 뛰는 게임 또한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를까요? 어째서 플레이어는 산에 올라야 할까요?

그 이유가 이 게임을 특별한 게임으로 만듭니다.

[Celeste]는 정말 어려운 게임입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은 정확한 판단과 완벽한 조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늘 플레이어의 예상을 뛰어넘어 플레이어가 실패하게 만듭니다. 주어진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익히지 못한다면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이 바로 [Celeste]의 산입니다. 어지간히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수백 번은 물론 수천 번은 실패해야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이토록 막막하게 어려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불안을 느끼게 합니다.

이게 맞는 길 일까? 내가 클리어할 수 있을까?

이 가차 없는 산은 때때로 플레이어가 들어온 입구를 막아 퇴로까지 차단해 버립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기 싫다면 눈앞의 난관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은 난관을 도전으로 바꾸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에 플레이어가 볼 수 없게 가려져 있거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는 장애물은 없습니다. 거칠게 막힌 통로는 돌아가지 말고 극복하라는 의미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극복을 요구받는 동시에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무한한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전보다 더 어려운 도전을 위한 각오를 다질 때, 게임은 음계를 높이고 빠른 음정으로 응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게임의 이야기를 통해, 게임의 도전을 극복하는 것이 곧 주인공의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와 일치함을 깨닫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전진은 게임의 전진이고, 게임의 전진은 주인공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플레이어가 난관에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것은 곧 게임에서 게임 주인공이 극복하는 이야기와 맞물려 플레이어를 움직이는 강한 힘이 되어줍니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주인공은 영원히 플레이어와 함께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Celeste]의 산은 극복을 의미하는 동시에 큰 실패의 위험을 껴안은 게임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작자가 게임에 담은 확신에서 오는 플레이어를 향한 도전입니다. 그것은 어렵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난관이며 그것과 같은 무게를 지닌 극복입니다. 바로 그 무게가 게임의 가상에 현실을 부여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진심으로 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플레이어는 충족을 느낍니다. 그것은 정해진 게임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결말에서 오는 충족이 아닙니다. 산의 입구에 서 있던 나와 산의 정상에 선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얻는 충족입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 선 플레이어는 다시 산의 입구로 돌아갑니다. 전에 없던 확신과 자신감을 품고. 더 어렵고 더 많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플랫폼: PC, PS4, 스위치, XBOX, 맥, 리눅스
가격: $19.99
편의: 매우 어려움
제작: Matt Makes Games
좌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