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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28.

고스트 오브 쓰시마, 구로사와 그리고 사무라이에 대한 정치적이고 근거 없는 믿음




선의의 존경으로 싼 짐 풀기

Unpacking the baggage of well-intentioned homage



[고스트 오브 쓰시마(Ghost of Tsushima)]는 사무라이들을 웅장하게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미려하게 구현된 갑옷을 입은 채 말에 올라 있다. 그 대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할지 고민하는 게임의 주인공 진을 보게 된다. 우리의 영웅인 진은 쓰시마를 가로지르면서 백성을 지키기 위해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무사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진이 일대일 대결을 할 때마다 넓은 시각으로 진과 대결 상대가 한 화면에 담겨 영화와 같이 연출된다. 게임을 제작한 아티스트들은 전설적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을 흠잡을 곳 없이 구현하고 있다.

인디와이어(IndieWire)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의 디렉터인 네이트 폭스(Nate Fox)는 “크게 영감을 받은 명인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엔터테이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를 통해서도 그가 속한 게임 제작팀인 서커 펀치(Sucker Punch)가 받은 영향에 관해 설명했는데, 게임의 화면이 흑백으로 전환되는 “구로사와 모드”는 물론 게임의 제목도 영향을 받았으며, 구로사와 감독의 유명작인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에서 “사무라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원작과 최대한 가까운 경험을 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게임에 쏟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구로사와”에서 사무라이 모험 물을 위한 큰 틀을 따왔을 뿐, 구로사와의 작품이 안고 있는 정체성과 문화는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구로사와의 작품만으로 사무라이를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정치세력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꾸준히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는 작품활동을 하던 1943에서 1993년 동안 사무라이 영화로 명성을 얻었다. 이에 대한 일본의 평은 다양하게 갈린다. 사무라이 가문에서 자란 그의 배경에 주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서구의 유행을 노렸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거나 구로사와는 1950년대 영화 비평계에서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구로사와 감독은 그가 제작한 사무라이 영화로 유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는 없다. 구로사와 감독은 폭력 속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이데올로기 충돌을 필름에 담았으며, 때로 답하기 어려운 그러한 주제를 사무라이의 삶을 벗어난 방식으로도 다루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정뱅이 천사(Drunken Angel)]와 [조용한 결투(The Quiet Duel)] 또는 1944년에 제작된 선전 영화 [가장 아름답게(The Most Beautiful)]와 같은 작품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질병이나 알코올 중독 또는 그와 유사한 고난을 겪는 인물의 내적 충돌을 다룬바 있다.

그의 작품은 비평을 위해 박제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서구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작품특성과 주제가 재해석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Seven)]의 서사는 [7인의 사무라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유명한 명작인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는 구로사와의 [요짐보(Yojimbo)]와 지나치게 유사했기 때문에 감독인 세르조 레오네(Sergio Leone)가 도호 프로듀션에게 저작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조지 루카스(George Lucas)는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The Hidden Fortress)]에서 [스타 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Star Wars: A New Hope)]의 제작을 위한 영감을 얻었으며, 이후 보답으로 구로사와 감독이 몽환적인 드라마 [꿈(Dreams)]을 만들 때 제작을 도와주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 또한 충만한 액션과 드라마로 구로사와의 계보를 따르고 있다. 게임을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플레이어는 쓰시마의 군주 시무라(Shimura)가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전통, 용기, 명예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시무라는 사무라이의 정신을 주장하며 수하를 규합시킨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죽을 것이며, 그들의 백성을 위해 죽을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영광을 가져올 것이다. 영광과 전통 그리고 용기가 사무라이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믿음은 근래의 것이고, 구로사와 또한 그렇게 주장한적이 없다. 위의 메시지는 오늘날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이 말하는 “정신(The code)*”과 풀 수 없게 얽혀있다.

*역주: 코드는 주로 공통된 정치 이념과 성향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한국에서 익숙한 정신으로 번역했습니다.


“현대” 무사도 정신(Bushido code), 1900년대 니토베 이나조(Inazō Nitobe)가 재해석한 무사도 정신은 일본의 군대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무사도 정신의 가장 쉬운 예로는 일본군의 가미카제, 공식 명칭으로는 순풍특공대(Tokubetsu Kōgekitai)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포로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때까지 충성과 명예를 앞세우던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무사도 정신은 국수주의 세력 안에 여전히 스며들어 있다.

일본의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 Party)은 2019년 레이와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기 위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아티스트 아마노 요시타카(Yoshitaka Amano)에게 일본 총리 아베 신조(Shinzo Abe)를 사무라이로 그려줄 것을 의뢰한 바 있다. 또한, 중도 우파를 자칭하는 자민당(LDP)의 맴버 다수는 교과서에 실린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역사 왜곡을 돕거나 주도한 경력이 있다. 아베 본인 또한 외국인 혐오 교육을 지원해 왔으며, 그의 아내는 반일과 반중을 앞세운 국수주의 학교의 설립을 위해 9천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또한 일본의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Nippon Kaigi)의 맴버이기도 하다. 미 의회 보고에 따르면 해당 단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를 서구 식민지에서 해방했기에 일본은 찬사를 받아야 하며, 1946~1948년의 극동국제군사재판(Tokyo War Crimes tribunals)은 불법이고, 1937년 일본 제국군에 의해 일어난 ‘난징 대학살(Nanjing massacre)’이 거짓이자 날조”라고 믿는 단체 중 한 곳이다. 아베와 일본회의는 일본의 상비군 복권을 허용하기 위해 일본 헌법, 특히 9조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임기의 끝이 다가오는 2021까지 일본 헌법 개정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로 그는 2013년부터 매년 꾸준히 전쟁 범죄자를 기리기 위해 아쿠스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전쟁 범죄자 중에는 현대 무사도 정신의 모범으로 포장된 그의 조부도 포함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의회와 국수주의 이념을 옹호함으로써, 일본의 반 진보적인 국수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주의적 가치관은 일본의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또 다른 국가주의 세력인 일본 제일당(Japan First Party)의 사쿠라이 마코도(Makoto Sakurai)가 178,784표를 얻기도 했다. 그는 재일 한국인을 겨냥한 혐오 시위에 여러 번 발언자로 참가한 경력이 있다.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일본 제국이 정립하고 활용했던 무사도 정신을 떠받들고 있다. 이는 마치 서구 언론이 기사도 정신을 다루는 것과 유사하다. 무사도 정신과 기사도 정신이 대표하는 집단은 백성을 깊이 배려하는 고귀하고 명예로운 이들로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라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사무라이에 대한 개념은 일본 제국주의의 신념과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하게 뒤섞여있다. 그래서 서양에서 사무라이의 전승을 다룰 때는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서양의 연극에서 일부 영향을 받은 구로사와의 후기 작품은 사무라이와 전국 시대 사무라이의 역할을 비판하고 있다. 리어왕을 일본식으로 짙게 각색한 [란(Ran)]이나 하위 계급의 범죄자가 봉건 영주를 흉내 내는 [카케무샤(Kagemusha)]같은 작품은 사무라이가 그 시대 하위 계층과 같은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명예와 기사도에 충실하지 않은 집단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통해 사무라이의 개념을 해체한다.

구로사와 감독의 대작과는 달리, 그가 경력 막바지에 보여 주었던 비판적인 메시지는 서구에 잘 전달되지 못했다. 2003년 서구에서 제작된 영화인 [마지막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는 민중과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사무라이 군주를 그리고 있다. 봉건제 일본 사회의 인물을 지나치게 낭만화한 잘못된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털트 스윔(Adult Swim)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 [사무라이 잭(Samurai Jack)]과 딤프스(Dimps)와 폴리곤 매직(Polygon Magic)이 [7인의 사무라이]를 재해석한 게임 [7인의 사무라이 20XX]도 유사한 잘못을 저질렀다. 특히 [7인의 사무라이 20XX]는 공식 판권을 얻었음에도 대실패했다. 서구에서 다루어지는 외로운 방랑 무사의 이야기는 미국 서부 물의 총잡이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그렇다면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어떨까. 클로즈업 카메라를 통해 배우 각각의 감정을 담아내는 기법이나, 정돈되지 않은 자연과 봉건제 시대의 작은 마을을 파노라마 샷으로 담아내는 감각은 분명 구로사와 감독의 느낌이 난다. 이는 폭스와 그의 팀이 이룩한 성과이다. 그러나 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알게 된다. 게임이 구로사와 감독에게 표하는 존경은 다른 아무 흑백 영화에도 대입할 수 있다.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이나 다른 사무라이 영화가 지닌 서사의 특징과 상징을 파악하는 것이 영화의 고유한 샷만큼이나 중요하다. 구로사와 모드가 게임에 들어 있다고 해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특징이 게임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국가 정체성에 대해 논할만한 맥락을 지닌 서구 백인 학자는 얼마 없을 겁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구로사와의 작품에 대한 서구의 해석에 대해 논할 때, 베트남 여성이자 아트 디렉터인 토리 힌(Tori Huynh)이 한 말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 민족주의에 대한 맥락은 일본인이나 다른 아시아인들의 그것과 매우 다릅니다. 영화의 오리엔탈리즘은 기묘할 정도로 일본의 고통과 죄책감에 집착하고 있고, 학술계 또한 그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략- 구로사와 감독의 심미성을 다룰 때는 아무 문제 없겠지만, 그의 이념에 대해 다룬다면 또 다른 문제겠지요.”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서는 진이 일대일 대결을 벌일 때마다 화등이나 색색의 꽃이 가득한 배경을 이용해 둘 사이의 긴장을 아름답게 보여 준다. 이는 분명하게 구로사와의 작품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대부분의 대결은 진의 오해로 인해 빚어진다. 신화 속의 검이나 갑옷을 얻기 위한 사이드 퀘스트 때문에 발을 뻗지 않아도 될 곳에 발을 뻗어서 일어나는 대결인 것이다. 이는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거나 긴장을 유발하는 대신, 단순한 무대로 반복되기 때문에 시각적인 만족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폭스와 서커펀치의 대본에서 사무라이는 일본의 폭력적인 지주가 아니라, 봉건제 일본을 지키는 진정한 수호자로 대우받는다. 게임은 진을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쓰시마를 되찾는 수호자로 그린다. 섬을 뒤덮은 혼란 속에서 도적들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고, 사무라이로서의 명예와 도덕을 버리더라도 외적의 침략에 맞서는 것이다.

진은 그가 구해야 하는 목숨과 그의 명예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나 이는 곧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게 되며 게임은 도덕적으로 흐릿하게 끝난다. 그와 그 주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사무라이와 무사도 정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진의 회상 장면에서 진이 암살파트 의외의 부분에서 누군가를 암살하면 진의 삼촌인 시무라가 겁쟁이나 하는 짓이라며 진을 꾸짖는다. 적대 세력의 칸이 진이 암습을 가했다고 시무라에게 귀띔하는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약 플레이어가 이를 피해 간다고 해도, 결국 게임의 이야기는 진이 백성을 구하는 동안 그의 명예와 충돌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민족주의 판타지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을 해보면 이 게임은 외부인이 만든 게임처럼 느껴진다. 복잡한 문화를 낡은 흑백 필름을 통해 단순하게 받아들인 외부인이 만든 게임인 것이다. 게임 플레이는 부드럽고 영웅의 애니메이션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게임은 참고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만든 창작자들은 게임이 멋들어진 유사 역사 드라마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패미통(Famitsu)과의 인터뷰에서 서커 펀치의 크리스 짐머만(Chris Zimmerman)은 “일본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멋지다고 느끼거나, 역사 드라마처럼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영광일 겁니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게임은 영화처럼 느껴지는 일 대 일 대결과 같이 “쿨”해 보이는 외관을 만들어 내기는 했다.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폭스는 말했다. “게임이 역사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고증을 자세히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는 게임의 이야기가 사무라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게임을 개발하는 중에는 알지 못했겠지만, 서커 펀치가 만든 사무라이에 대한 이미지와 우상화는 결국 그들의 책임이다. 게임이 쓰시마에서 일어난 사건을 역사적으로 고증할 필요는 없으나, 게임이 상징하는 사무라이는 국수주의자들이 왜곡한 역사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전파하고 있다. 만약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무대로 삼은 시대의 계급 충돌을 다루었다면 영감을 받은 원작에 실로 충실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그저 한 시대를 “쿨”하게 다루었을 뿐, 그 시대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게임이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에게 이토록 영감을 받고 싶었으면 영화나 글 같은 다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은 주제를 연구하고 연구의 결과를 드러냈어야 한다. 창작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오픈 월드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한 문화의 역사는 실제로 무엇인가? 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작품을 만들고 말았는가? 게임은 이러한 질문을 그저 겉핥기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구로사와의 작품을 게임을 통해 체험해볼 수는 있어도 정작 구로사와의 작품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게임이 배경으로 삼은 국가의 정치에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 게임의 창작자들에게 있어 구로사와의 작품이란 그저 흑백일 뿐이다.



2020. 2. 3.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여성이기에 치른 대가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여성이기에 치른 대가



 2020년이 되고 나니, 2010년 당시 여성으로서 게임 속 젠더에 대해 글을 쓰는 기분이 어땠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십 년 전 비디오 게임 업계의 성비 불균형은 매우 분명하고 고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는 유명 여성 개발자가 패티시의 대상이 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2007년 게임 디자이너 캐시 시에라(Kathy Sierra)는 온라인에서의 괴롭힘과 협박 때문에 직업을 포기하고, 공개적인 활동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 사건은 이후 몇 년 동안 조금 특이한 일로 여겨졌을 뿐, 2014년 와이어드지(Wired)에 개재된 그녀의 글이 설명하듯 “온라인을 통한 괴롭힘의 강도와 빈도가 느리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신호로 여기지 않았다. 역주1)

당시 인기 게임의 대부분은 여성이 제작하지 않았고, 여성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게임은 남성의 파워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는 “현대전(Modern warfare)”이라는 게임 제목과는 달리 2013년까지 멀티플레이에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2010년 8월에 발매된 헤일로: 리치(Halo: Reach)는 남성과 여성 스파르탄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선택에 따른 유의미한 변화는 볼 수 없었다. 같은 시기 메스 이펙트(Mass Effect)같은 롤플레잉 게임 또한 남성, 여성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정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가장 앞서나간 게임으로 평가받았다. 주인공으로 여성만 선택할 수 있었던 유명한 게임은 익숙한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성별만 바꾼 것이었다. (라라 크로프트는 섹시한 인디아나 존스, 조안나 다크는 섹시한 여성 제임스 본드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난 소수의 사례에 해당하는 비욘드 굿&이블(Beyond Good & Evil)의 주인공인 제이드(Jade)는 게임을 즐기는 소수의 여성에게 이미 충분한 선택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쓰였다.

게임은 일반 남성을 위한 것이었고, 게임 웹사이트 또한 일반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아이지엔(IGN), 스파이크(Spike) 그리고 유지오(UGO)같은 사이트는 주기적으로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매력 순위를 매긴 기사를 썼다. 아니지, 아이지엔은 실존 여성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심지어 “소식통(enthusiast press)”의 수준을 벗어나 더 진지한 글을 다루고자 하는 웹사이트에서도 젠더와 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러한 게임 사이트들 역시 주로 백인, 이성애자, 경제적 배경이 비슷한 중산층 남성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이상하거나 기이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비디오 게임이 1990년대부터 꾸준히 그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리엔(Tracey Lien)이 2013년 폴리곤(Polygon)에 게임 마케팅의 역사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80~90년대 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린 남성이 어린 여성보다 게임을 더 많이 즐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알 낳는 닭”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이후 수십 년 동안 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린 남성에게 집중되었으며, 게임은 사회에서 남성적인 것으로 다루어졌다.

따라서 시장이 마케팅 대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관리해 온 이들이, 오늘날 비디오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유명인들이라는 주장은 앞뒤가 맞는 주장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이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지루한 관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0년 당시 이 주장은 비아냥과 괴롭힘은 물론 협박까지 당할 만큼 소름 끼치는 주장이었다.

물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언제나 다양했다. 인디 게임 개발과 인디 게임 비평 영역은 2000년대 들어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다. 워드프레스(Word press) 같은 블로그 플랫폼의 발전과 초기의 유튜브(Youtube) 그리고 새로운 소셜 미디어 덕분에 게이머는 서로를 찾고 주류에서 다루지 않는 논의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10년에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에서 벗어난 이들이 주도하는 비평 공간이 탄생했다. 페미니스트 게이머(Feminist Gamers), 더 보더 하우스 블로그(The Border House Blog), 섹시 비디오게임랜드(Sexy Videogameland) 그리고 세이크빌(Shakesville) (가끔 게임을 다루는 페미니스트 블로그) 같은 웹사이트는 보통 그들이 즐긴 게임에 대한 감상을 썼지만, 이따금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오랫동안 들어온 다른 이들의 말이나 마케팅과 관계없이, 이러한 사이트들은 다양한 이들이 비디오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당시 내 주위에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여성이 많지 않았고, 비디오 게임으로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러한 블로그의 존재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만약 내가 비디오 게임이 담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면 누군가 관심을 가지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블로그는 현재 모두 문을 닫았고 아카이브가 남아 있지 않은 곳도 다수 있다. 2009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운영 중인 크리티컬 디스턴스(Critical Distance)는 인터넷 곳곳에 있는 좋은 글을 매주 소개하고 있다. 그곳의 아카이브는 수년간 일어난 게임에 대한 논쟁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다행인 것도 있다.

주류 사이트가 인디 공간에서는 평범하게 거론되는 문제를 다룰 때, 특히 그것이 게임 내 성차별과 성 역할 문제라면, 분노에 가득 찬 독자의 반응을 종종 받게 된다. 예를 들면 2010년 8월 31일 G4에 실린 아비 헤페(Abbie Heppe)의 메트로이드: 아더 M(Metroid: Other M) 리뷰가 그랬다. 당시 대다수의 리뷰는 게임의 불편한 조작과 일직선 디자인을 지적하며 보통과 긍정을 오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헤페의 리뷰는 게임의 서사와 서사 구조를 지적했다. 글은 특히 젠더 정치(gender politics)를 주목했다. 그녀의 글은 줄곧 독립적이고 자신만만하게 그려지던 현상금 사냥꾼인 사무스 아란(Samus Aran)이 남성 군단장의 관리하에 활동하고, 시리즈 동안 거듭 물리쳤던 적인 리들리(Ridley)와의 대결에서 아이 같이 공포에 빠지는 것을 지적했다.

헤페는 메트로이드: 아더 M의 사무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녀는 밋밋한 남성 캐릭터가 그녀에게 지시하기 전까지,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길을 열거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유인즉슨 그녀가 그에게 (당연히 친구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조를 어떻게 설명하건 간에, 용암 구역에서 10분이 넘도록 바리아 슈트(Varia Suit)를 사용 못 해보면, 이 서사 장치가 얼마나 괴로울 정도로 멍청한지 알게 될 것이다.” 덤으로 헤페는 엉망으로 쓰인 사무스 아란의 대사도 혹평했다. “사무스는 ‘고해 시간(confession time)’이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마치 12살 소녀가 예쁘게 장식된 일기장 속으로 숨어들 듯 말이다. 마치 엘런 웨이크(Alan Wake)가 여성 채널 오리지널 영화와 만난 것 같은 나레이션은 당신이 ‘아빠의 고민(daddy issues)’을 걱정하기도 전에 늙어 버린다.” 헤페는 게임에 5점 만점에 2점을 주었다.

아더M이 표현한 사무스에 대해 2019년의 메트로이드 팬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게임이 주인공을 성차별적으로 표현해서 실망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헤페의 리뷰가 처음 나왔을 당시의 주류 의견은 그렇지 않았다. 브레이니 게이머(Brainy Gamer) 블로그에 “백래시(Backlash)”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은 리뷰에 대한 반발이 “방대하고(459개의 코멘트, 계속 늘어나고 있음) 개인적” 이었다고 말하며 헤페가 받은 코멘트를 다수 싣고 있다. 이제 보석 같은 코멘트를 한번 살펴보자.

“여성 리뷰어는 리뷰를 기회 삼아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이고 성차별 반대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게임의 스토리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실제 게임 플레이나 그래픽 같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정말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나는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게임을 비평할 때는 더 좋은 비평가를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마다 찾아오는 그 시기에는 게임 리뷰를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이야... 여성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다니... 이야... 메트로이드 같은 비디오 게임을 누가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남자지! (이 게임은 쿠킹 마마가 아니라고)”

브레이니 게이머의 글에서는 이러한 백래시를 “유입이 많은 사이트에서 게임을 비평할 때, 다시 말해 그나 그녀가 단순한 리뷰어가 아닌 비평가의 역할을 할 때 일어나는 일”의 예로서 정의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점수와 함께 실리던 게임 리뷰는 앞서 헤페의 리뷰에 적힌 코멘트가 증명하듯. 기술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구매자 가이드였다. 게임이 다루는 주제와 톤을 분석하는 방식, 특히 헤페의 리뷰를 혐오하던 이들에게 있어 페미니스트 관점의 분석은 절대 게임 점수에 영향을 줄 수 없는 틀린 것이었다. 성별에 기반한 고정관념을 통해 객관성의 본질을 “남성”에 두는 이들은 이러한 분리를 애용한다. 게임의 톤과 서사에 대한 비평은 “여성”스럽기 때문에 본질이 주관되고 편향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스트 시각의 게임 비평은 기술적인 남성 전문가의 영역에 있을 수 없는 소녀의 감성 따위로 취급한 것이다.

게임 속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소외된 비평가들은 아직도 헤페가 받은 것과 같은 코멘트를 반복해서 받고 있다. “멍청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감정으로 전문가의 영역을 방해하고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 당시 페미니스트는 게임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지겹게 구는 외부자 취급을 받았다. 마치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잭 톰슨(Jack Thompson)처럼 말이다. 역주2)

같은 시기인 2010년 8월 게임계에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났다. 페니 아네이드(Penny Arcade)가 8월 11일 내놓은 만화는 “매일 밤 우리는 딕울프(Dickwolves)들에게 강간당하고 있습니다”라는 NPC의 요청에도 불가하고 게임 속 영웅이 그를 도와주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셰이크빌(ShakeVille)의 객원 블로거인 셰이커 밀리(Shaker Milli)는 이 만화에 대한 글을 통해 페니 아케이드의 어두운 유머를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해당 만화는 “강간 피해자들이 의심받고, 비난당하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는”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지적했다. 역주3)

당시 게이머들은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패배”의 의미로 자주 사용했다. 지난 십 년간 정말 뒤처진 표현이기 때문에 지금은 당시 그 말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전 고타쿠 부편집장 패트리샤 에르난데스(Patricia Hernandez)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발견한 의문에 대해 2012년 쓴 글이 있다) 페니 아케이드의 만화를 향한 쉐이크빌의 글은 이후 일 년 동안 이어진 강간을 농담으로 사용하는 게임 문화에 대한 논쟁의 발화점이 되었다.

바로 따라온 페니 아케이드 만화에서는 페니 아케이드의 두 작가가 만화에 등장하여 논란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만화를 읽고 강간범이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금 강간 중이라면 그만두세요”라고 그들은 독자에게 말한다) 이어서 2010년 8월 6일 페니 아케이드 사이트는 딕울프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비난이 쏟아지자 그들은 2011년 1월 26일 판매를 중지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5일이 되어서야 페니아케이드는 간신히 사과로 볼 수 있는 내용을 게재했다. 작가인 마이크 크라우릭(Mike Krahulik)은 “이후 저지른 모든 일”을 후회한다고 밝히며 정작 문제가 된 만화와 농담은 옹호했다. “우리가 만약 딱 그 만화까지만 그렸다면 딕울프는 상징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비웃고 소외시키는 상징 말입니다.”

딕울프 논란의 가장 심란한 부분은 페니 아케이드의 문제가 된 만화와 “강간”이라는 단어가 게이머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에 불편을 토로한 이들이 엄청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신성화된 게임과 그것을 위협하는 적을 향한 조직적인 괴롭힘은 2010년대 내내 이어졌다. 2012년 2월 바이오웨어(Bioware)에서 수석 작가였던 제니퍼 헤플러(Jennifer Hepler)의 오래된 인터뷰가 레딧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2006년에 작성된 오래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게임의 대사처럼 전투도 “빨리 감기(Fast-Forward)”를 도입한다면 게임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인터뷰가 뒤늦게 떠돌게 되면서,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들은 레딧에서 처음 시작된 “바이오웨어를 죽인 암세포”라는 말로 헤플러를 비난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최근 엔썸(Anthem)을 제작한 바이오웨어를 비추어 볼 때, 나레이션을 위해 전투를 덜어내는 것이 바이오웨어를 “파괴”할 것이라는 말은 참 잔인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 괴롭힘에서도 성차별적인 이분법을 볼 수 있다. 여자는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에만 관심을 두는 한편, 남자(진짜 게이머)는 게임의 정말 중요한 부분, 전투를 신경 쓴다는 이분법이다. 이 논쟁은 더 나아가 전투가 없는 게임이 정말 게임인가 하는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2013년 8월 헤플러는 바이오웨어에서 사직했다. 그녀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이후였다.

“진정한 게이머(real gamers)”라는 개념은 게임 커뮤니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경쟁 게임(competitive games)을 플레이하는 여성은 실력이 뛰어나도 남성 플레이어만큼 존중받기 어렵다. 2012년 2월 캡콤은 자사의 새로운 협업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X 철권(Street Fighter X Tekken)을 홍보하기 위해 각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겨루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했다. 이 쇼는 철권 플레이어 팀의 리더인 아리스 바흐타니아스(Aris Bakhtanias)가 여성 플레이어를 성희롱한 사건으로 회자하고 있다. 그는 “성희롱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 문화의 일부이고, 그것을 제거한다면 그것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가 아니다...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e스포츠가 있듯, 격투 게임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놀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당시 자신을 변호했다.

바흐타니아스의 변호는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반발은 종종 격투 게임 커뮤니티와 e스포츠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른 e스포츠 커뮤니티와 달리, 격투 게임 커뮤니티는 역사적인 인종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e스포츠 상위권에서 백인과 아시안 선수를 보는 것처럼, 격투 게임에서는 흑인과 라틴계 선수를 상위권에서 볼 수 있으며, 토너먼트를 직접 운영함은 물론 전문적인 아나운서나 캐스터가 되기도 한다. 격투 게임 커뮤니티는 그러한 특수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편 바흐타니아스는 자신의 성희롱을 정당화하기 위해 e스포츠의 인종 분열을 이용했고, 격투 게임 커뮤니티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여성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그의 행동과 발언은 “진정한” 게이머가 되기 위해,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여성이 성희롱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2019년 개최된 EVO에서는 오랫동안 참가한 여성 참가자들이 행사에서 경험한 괴롭힘을 전달하고, 발언을 존중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발언한 바 있다.

2012년 5월 17일, 페미니스트 미디어 비평가인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eesian)은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Tropes vs Women in Video games) 영상 프로젝트를 킥스타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원활히 진행되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전의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사키시안은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한 해 동안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소외된 게이머들이 온라인을 통해 모여 목소리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게이머들 또한 온라인을 통해 모였다. 그들은 딕울프를 암구호 삼아 비디오 게임을 위협하는 집단, 심지어는 사키시안이나 제니퍼 헤플러같은 이들에 맞서기 위해 뭉쳤다.

2012년은 그들의 적으로 가득했다. 편협한 게이머들은 그들과 다른 모두를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게임 제작 도구의 보급과 낮아진 문턱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을 만드는 움직임이 점차 또렷해지는 시기였다. 2012년 7월에 공개된 인디 게임: 더 무비(Indie Game: The Movie) 다큐멘터리는 페즈(Fez), 브레이드(Braid), 슈퍼 미트 보이(Super Meat Boy)의 개발자를 조명하며 주류로 부상한 인디 게임을 다루었다. 퀴어 인디 게임도 빠르게 성장했다. 안나 엔트로피(Anna Anthropy)의 디스포이아(dys4ia), 메리트 코파스(Merritt Kopas)의 림(Lim), 포르펜틴(Porpentine)의 하울링 독스(Howling Dogs), 매티 브리스(Mattie Brice)의 마이니치(Mainichi)같은 주목할만한 퀴어, 트랜스 여성의 게임이 이 시기에 출시되었다. 이 게임들은 트랜스 여성이 독립적으로 제작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서로 다른 디자인과 접근을 택했음에도 비슷한 숨결을 공유하고 있다. 역주4)

또한, 2012년은 “트와인 혁명(Twine Revolution)”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픽션 제작 엔진인 트와인 엔진 덕분에 다양한 인터렉티브 픽션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트와인 혁명”이라는 표어는 2012년 12월에 포르펜틴이 작성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게임을 제작한다는 것 그리고 트와인 혁명(Creation Under Capitalism and the Twine Revolution)”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글은 전 코타쿠 직원인 파트리샤 에르난데스(Patricia Hernandez)가 개설한 블로그인 나이트메어 모드(Nightmare Mode)에 개재되었었다. (페트리샤는 코타쿠의 다른 친숙한 이름과 함께 2012년 당시 정직원으로 일했다) 혁명에서 탄생한 가장 유명한 게임은 아마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일 것이다. 조 퀸(Zoe Quinn) 총 제작, 패트릭 린지(Patrick Lindsey) 추가 작문, 아이작 챈클러(saac Schankler)가 음악을 작곡한 게임이다. 게임은 2013년 2월 14일에 공개되어 다양한 비평을 받았으며 훗날 게이머게이트(Gamergate)의 촉매가 되었다. 역주5)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은 이제껏 불균형하던 비디오 게임의 성비가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2012년 말에는 #1reasonwhy와 #1reasontobe라는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에 등장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1reasonwhy 해시태그를 통해 비디오 게임 업계에 여성 종사자가 적은 이유를 주고받았다. 이어서 여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1reasonwhy 태그를 통해 게임 디자이너의 길을 가로막는 우울한 현실의 사례를 공유했다. 외모에 대한 지적과 게임 컨퍼런스에서 겪은 성희롱이 언급되었다. 2013년에 발매된 툼 레이더(Tomb Raider) 리부트에 수석 작가로 참여한 리안나 프래쳇(Rhianna Pratchett) 또한 #1ReasonTobe 해시태그에 참여했다. 그녀는 동료 게임 디자이너에게 자주 “플레이어가 여성이라면?” 어떠할지 상기시켜 주어야 했다고 말하며, 태그를 이용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주고받자고 독려했다. #1reasonwhy, #1reasontobe 해시태그는 오늘날에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ame Developers Conference)는 #1ReasonTobe라는 이름의 연간 행사를 만들어서 게임 업계의 다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패널을 선정하고 있고, 최근에는 여성은 물론 더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패널을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프래쳇이 작가로 참여한 툼 레이더 리부트는 발매되기 전까지 전반적인 논쟁과 조사를 통과해야 했다. 2010년 10월 툼 레이더의 아트 디렉터인 브레인 호턴(Brain Horton)은 게임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에게 약간의 “젖살(baby fat)”이 있을 것이며 “라라 크로프트를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언락되는 비키니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리부트 버전의 라라 크로프트는 분명 극단적인 모래시계 체형에서 벗어났지만 “젖살”이 찐 체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들과 어울려 놀 법한, 틀에 박힌 쿨한 너드 소녀처럼 보였다. 뭐, 간신히 말이다. “그녀는 그녀 주변의 남자만큼 키가 크지는 않고, 아마 머리 정도 작을 겁니다” 당시 호턴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그녀가 모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느낌을 강조해 줄 겁니다.”

2012년 툼 레이더의 제작 총감독인 론 로젠버그(Ron Rosenberg)는 코타쿠를 통해, 게임 후반 라라가 강간 시도에 맞서 싸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성폭력이나 그와 유사한 항목은 저희 게임이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아닙니다”라며 그의 발언을 번복했다. 로젠버그의 망설임은 당시 트리플A 게임이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마케팅하기 위해 겪고 있던 불안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젠버그는 플레이어가 라라를 “보호”하고 싶어 할 거라고 설명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분명 그녀는 영웅이고 당신은 그녀의 조력자입니다. 그녀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당신은 남자 캐릭터에게 가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 이입하게 될 겁니다.”

게임의 혼란스러운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툼 레이더 리부트는 크게 성공했다. 툼 레이더 리부트는 2010년 메트로이드 M이 시도했으나 실패한, 강인함과 연약함 사이를 오가는 현실적인 주인공을 그려냈다. 더불어 2013년은 기존과 다른 트리플A 영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게임이 평론으로부터 넓게 고평가를 받았고 충분한 매출액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2010년대 후반, 다음과 같은 여성 캐릭터가 트리플A 게임의 전면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의 알로이(Aloy), 기어즈5(Gears 5)의 케이트(Kait), 라스트 오브 어스: 레프트 비하인드(The Last of Us: Left Behind)와 라스트 오브 오스 파트 2(The Last of Us Part 2)의 엘리(Ellie). 하지만 2013년에 발매된 대부분의 트리플A 게임은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삼지 않았다. 그 대신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나 라스트 오브 어스(Last of US)같은 게임이 “아버지 게임(Daddening of games)”의 유행을 선도했다. 코타쿠의 스티븐 토틸로(Stephen Totilo)는 2010년 2월에 “아버지 게임”의 시초를 조사한 바 있다. 그리고 매티 브리스(Mattie Brice)는 더 나아가 2013년에 이 현상을 “게임의 아버지 화(the dadification of games)”라고 칭했다. 이 유행은 갓 오브 워(God of War) 시리즈가 아버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시리즈를 리부트했던 2018년까지 이어졌다. 그러한 게임은 자신보다 어리고 연약한 인간을 돌보는 주인공의 부모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게임의 수석 디자이너들은 말 그대로 그들이 만든 게임 속 캐릭터의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켄 레빈(Ken Levine)은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엘리자베스(Elizabeth)를 자신의 “딸”처럼 여긴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그것은 그녀에 대한 포르노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갓 오브 워의 코리 바로그(Cory Barlog) 또한 그의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게임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게임의 가부장적 주제에 대해 많은 디지털 잉크가 흘렀는데, 그 일부는 크리티컬 디스턴스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관련 글 모음에 고여 있다.

2010년 발매된 메트로이드: 아더M처럼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 역시 여러 호평과 비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인상 깊게 두드러진 두 여성 캐릭터를 깊게 파고들었다. 비둘기 같은 눈과 백인 여성의 연약함을 가진 디즈니 공주 같은 캐릭터인 엘리자베스 콤스톡(Elizabeth Comstock)과 더 파운더스(The Founders)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무장 혁명단체 복스 포퓰리(Vox Populi)의 여성 지도자 데이지 피츠로이(Daisy Fitzroy)가 그 둘이다. 2010년대 초반에 일어난 트리플A 게임의 여성 묘사에 대한 많은 논쟁은, 사무스 아란이나 라라 크로프트 같은 백인 여성에 머물러 있었다.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는 게임에서 엇갈리는 인종과 젠더에 대해 비판적인 대화를 이끌었다. 게임이 백인 여성은 순진하고 동정 가는 조력자로 묘사한 한편, 흑인 여성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악당으로 프레임 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임에 비판적인 이들은 엘리자베스 보다 데이지의 곤경에 더 공감했다.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편향된 서사에 대한 반박은 주류 게임 언론 밖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리/액션(re/Action)은 유색 트랜스 여성인 매티 브리스(Mattie Brice)가 이끌던 독립된 비디오 게임 블로그로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었다. 2013년 7월 그 사이트에 내 친구인 소하 엘-사바위(Soha El-Sabaawi)의 글이 개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가 어떻게 데이지 피츠로이를 잘못 다루었는가에 대해 글을 썼다. “부커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복스 포퓰리와 싸우는 동안 나는 텅 빈 내 아파트에서 끝없이 소리쳐야 했다. ‘왜? 왜 내가 이걸 해야 해?’ 내가 복스 포퓰리 맴버를 죽일 때마다, 나는 한발씩 그들의 억압받은 역사 또한 지워 나갔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내 적이 아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사양에서 벗어난 관점으로 게임을 비평하는 이들은 여전히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고작 3년 동안, 메트로이드: 아더M을 리뷰했던 2010년의 평균과 비교해 보면 게임 속 젠더 문제에 대한 비평은 퍽 복잡해졌다. 심지어는 주류 언론까지 주기적으로 인종의 엇갈림, 퀴어니스, 그 외 다른 소수자를 포함한 게임의 젠더 정치를 다루기 시작했다. 다양해진 비평가와 게임 제작자의 목소리에 감사할 일이다.

2013년 3월 페미니스트 프리퀀시(Feminist Frequency)는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Tropes vs Woman In Video game) 시리즈의 첫 번째 영상을 공개했다. 짐작과 예상대로 그 비디오는 격분을 일으켰다. 또한, 2월에 발매된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는 다양한 매체에서 비평과 찬사를 받았으나, 트와인 혁명에서 비롯된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다른 장르의 게임과 동등하게 다루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게이머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비슷한 비난은 곤 홈(Gone Home)에도 쏟아졌다. 2013년 발매된 인디 게임 곤 홈은 텅 빈 집을 탐험하며 사라진 거주인을 조사하는 게임이다. 디프레션 퀘스트는 정신질환, 곤 홈은 퀴어의 커밍아웃을 다루고 있는데, 두 게임 모두 현실을 무대로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게임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인간미가 느껴지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많은 비평가에게 이와 같은 게임의 출시와 성공은 게임이 미래에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며 누가 그것을 가장 잘 말할 수 있을지와 같은 흥미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2013년에 이르자 주류 게임 언론에서도 다양성 있는 글과 주요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디프레션 퀘스트나 곤 홈 같은 게임이 대자본을 투자한 메이저 게임과 같은 위치에 실렸다. 한편 크라우드 펀딩과 페트론의 등장 덕분에 인디 게임 개발, 또는 인디 게임을 비평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것도 가능해졌다.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말이다. 또한, 이제까지 한쪽에 밀려있던 비디오 게임 업계의 폐쇄성에 대한 담론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편견에 가득 찬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중 일부는 음모론을 의심하기도 했는데, 이전의 게임과 다른 실험적인 인디 게임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다수에게 “강요(forced)”한 언론인 집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게임은 게임으로 볼 수 없으며 찬사와 관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게이머게이트(Gamergate)로 알려진 혐오 운동을 점화시키고 불타게 만든 것은 단 한 줄의 생각이었다. 디프레션 퀘스트의 개발자인 조 퀸(Zoe Quinn)이 긍정적인 리뷰를 위해 코타쿠의 저널리스트와 동침했다는 거짓되고 모욕적인 주장이 그것이다. 이 한 줄의 생각은 2014년 8월 16일 퀸의 전 남자친구의 블로그에 등록된 글이 출처였다. 편견에 찬 게이머들은 그것을 퀸을 몰아세울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게임 산업에서 소외되어 있던 다른 이들의 성공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주6)

다른 많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고발당했다. 내가 게임 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동침하며 돌아다녔다고 말이다. 당시 내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프리렌서(내 이전 정규직이었던 보스턴 피닉스(Boston Phoenix)는 2013년 문을 닫았다) 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 이야기다. 그러나 당시 일 년간 살해와 강간 협박을 받고 사실을 떠올려 보면 나는 도무지 웃을 수 없다. 또 다른 이들, 그러니까 매티 브리스(Mattie Brice), 젠 프랭크(Jenn Frank) 그리고 그 외 몇몇은 인터넷을 떠나 몇 년간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을 정도로 많은 위협과 협박을 받았다.

데드스핀(Deadspin)에 카일 뱅거(Kyle Wanger)가 게재한 수필 “미래의 문화 전쟁, 게이머게이트가 여기 있다(The future of the culture wars is here, and it’s Gamergate)”는 게이머게이트의 전략과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초기에는 레딧(Reddit), 포찬(4chan) 그리고 이후에는 에잇찬(8chan), 키위 팜즈(Kiwi Farms) 포럼을 중심으로 모여 공격 대상을 특정했다. 그들은 거대한 지원군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다수의 익명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사용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괴롭힘과 협박을 일삼았다. 또한, 대상의 해고를 종용하기 위해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거나, 대상이 언론인이라면 해당 언론의 광고주에게 광고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캠페인의 반대편에 있다면 게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을 쓰는 것과 같은 자신이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더 쉬운 선택처럼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이런 전략은 일찍이 페니 아케이드의 딕울프 만화에 대한 비평을 거두게 하거나,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 영상에 대한 반응을 바꾸는 성공을 거둔 바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전략은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떠나게 만들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캐시 시에라나 제니퍼 헬퍼 그리고 그 외 많은 이들이 여전히 공공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그 사실을 증언했을 것이다.

올해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는 수필을 모아 “모든 것은 게이머게이트(Everything is Gamergate)”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그러나 “5년 전 일어난 일련의 불쾌한 사건이 온라인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꾸다”라는 글의 부제와는 달리 게이머게이트는 온라인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꾸지 놓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인터넷과 그 연장선에 놓인 비디오 게임이었다. 비디오 게임은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더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논쟁에 휘말린 것으로 밝혀진 이들 중에는 내 지인도 많았다. 우리는 컨퍼런스에 마련된 게임 속 여성(Women In Gaming) 패널에서 서로를 만났다, 산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소수의 여성과 나를 하나로 묶어 착각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는 나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말을 추적하는 편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들에게 반대할 때 그랬다. 게이머 음모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우리는 모두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모두 친구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분리하고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야 했다. 거기에는 거대한 조직도 거대한 음모도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소외되어 있던 이들의 존재감이 늘어나 있었다. 마침내 서로 찾고 만나서, 그들이 항상 존재하기를 바랐던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블로그 포스트와 트와인 게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대화에 불과했다. 그렇게 각각은 개인의 소통에 불과했던 소소한 것들이 마침내 하나로 뭉쳐 힘을 같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편견에 가득 찬 이들을 놀라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그리고 편견에 가득 찬 이들 또한 우리에게 맞서기 위해 한데 모였다.

2010년 초, 나는 23살이었다. 나는 보스턴 피닉스에서 2008년부터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너드 문화를 다루었다. 지역의 게임 이벤트를 취재하면서 보스턴 근교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과도 만났다. 조 퀸이나 브리아나 우(Brianna Wu)같은 무명의 유망주들 말이다. 경쟁적인 비디오 게임도 취재했는데, 슈팅과 격투 게임을 특히 좋아했다.

2010년 3월에 나는 “기어즈 오브 워 3는 여성 캐릭터를 추가할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코믹스와 소설로 확장된 기어즈 오브 워의 설정에 따르면 그 세계의 여성은 대부분 출산 캠프로 강제 이주시킨다. 전투가 허락된 유일한 여성은 불임은 여성뿐인데, 그들 또한 어린 시절과 십 대는 그 캠프에서 지내야 한다. 기어즈 오브 워 코믹스에는 알렉산드라 브랜드(Alexandra Brand)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녀는 10대 소녀 시절 납치범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간당했고, 18세에 공식적으로 불임 선고를 받고 전선으로 내몰린다.

2010년 당시 기어즈 세계의 젠더 정치에 대한 내 비평은 그리 깊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질문은 아주 단순했다. “만약 여성이 아이를 갖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나는 기어즈 오브 워가 만화 같은 근육질 남성 영웅을 위한 파워 판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터무니없는 파워 판타지에 여성이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서툴고 얄팍한 내 글은 폭발했고, 심지어 코타쿠에 링크까지 걸렸다. 그 결과 나는 나를 상처입히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그들은 나 같은 여성이 전장(가상이거나 아니거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그 메시지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무시했지만,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내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 감정 또한 쌓여갔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당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나는 내 글에 대한 모든 이메일, 코멘트, 포럼 게시글을 읽었었다. 나는 다수의 후속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고 셈하기엔 너무나 많은 코멘트에 답글을 달았었다. 나는 게이머들이 내가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외부인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만약 내가 그들 중 하나라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킨다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평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글을 처음 링크한 코타쿠를 탓했다. 도대체 공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누군가 사무실로 찾아와 나를 죽인다니? 그저 인터넷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여성 캐릭터로 플레이하고 싶다고 썼을 뿐이었다. 심지어 거듭 강간당한 결과 불임이 된 여성 아닌가? 왜 나는 그토록 두려워해야 했을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2019년으로 돌아와 보자. 기어즈 5는 올해 초에 발매되었다. 그 게임은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는 사육장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기어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는 여전히 각박하지만, 여성 캐릭터가 끊임없이 성적 위험에 노출되는 세계는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다른 위험에 직면해 있다, 게임 속 세계의 다른 이들과 똑같이 말이다. 나는 기어즈 5를 내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코타쿠에서 리뷰했다.

지나간 10년은 승리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괴로운 경험이었는가를 제외하면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게임에서 젠더를 논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게임의 주인공이 여성인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행에 가깝다. 근육질의 백인 남성을 가녀린 백인 여성 캐릭터로 교체하는 것은 비슷한 타이틀이 넘쳐나는 게임 시장에서 돋보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백인 게이 여성으로 깜짝 논란 반응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는 충분한 변화로 볼 수 없어서 감흥이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에 일어났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놀랐을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여전히 더 대담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매체는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변화조차 대가 없이 찾아오지 않았고, 치른 대가 만큼 변화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2010년이 시작되던 당시 나는 이후 10년간 비디오 게임과 젠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 될지 몰랐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될지 몰랐다. 나는 게이머게이트가 국제적인 뉴스가 되고, 지역 게임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이 정치 평론가들의 화두가 되리란 것을 몰랐다. 난 게임이 얼마나 많이 변할지 알지 못했으며, 그것이 내가 겪고 지켜봐야 했던 고통에 비해 얼마나 의미 없고 하찮은 것일지도 몰랐다.

2010년대 초 비디오 게임 비평의 세계는 작게만 느껴졌다. 현상 유지에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쉽게 따를 수 있었으며, 쉽게 기억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쉽게 표적이 되었다. 그저 비디오 게임에 불과한 것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나와 동료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다. 실제로 우리는 직업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건강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나는 지금도 당시 논쟁에 가치는 있었는지, 핵심을 찌르는 논쟁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완전히 놓친 혁신적인 게임과 논의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2010년대 초,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많은 이들이 게임 언론과 게임 업계를 떠났다.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온라인 활동을 크게 줄여야 했다. 지난 십 년간 내가 동료들로부터 배운 가장 유용한 팁은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인명 검색 사이트에서 지우는 것이다. 나를 향한 잔인한 코멘트가 일정 이상 눈에 들어오면 인터넷 탭을 빨리 닫는 방법도 익혔다.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를 뮤트하고 차단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는 이제 2010년 당시의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에, 그때는 스스로 뭘 좀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다. 여전히 나는 한밤중에 뜬 눈으로 내가 택한 길을 되묻는다. 떠나야 했던 사람들, 혐오하는 세력에 내쫓긴 이들, 지원이 없어 쫓겨난 이들 또는 그 모두를 겪은 이들을 기억하게 된다. 특히 나보다 더 강렬하고 멋진 일을 해냈던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립적이고 다양한 언론이 변화를 이끄는데 준 도움. 그리고 그것을 잃는 두려움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과거로 퇴보하고 싶어 하는 편견에 가득 찬 이들 또한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다.



2019. 10. 29.

Allow Natural Death


Allow Natural Death

Jenn Frank 지음. 2012년 11월 29일



정확히 6년 전 나는 토이저러스에서 닌텐도 위(Wii)를 구입해서 설치했다. (그 박스는 여전히 나와 소녀시절을 함께한 침실 바닥에 남아있다. 이듬해 11월 내가 떠난 곳이기도 하다.)

“상상했어요? 알(Al)?”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 생전에 이런게 될거라고?” 내가 하는 (에헴)볼링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위(Wii)의 “페이스메이커” 경고를 보았다.* 바로 양아버지에게 명령하듯 외쳤다. “나가요! 나가세요!” 감사하게도 나는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역자주: 닌텐도 위는 페이스메이커나 기타 의료기기와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안내로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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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게임 리뷰로 돈을 버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머니를 더 짜증나게 하기 위함이 컸다. 일생동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해주는 사람은 곧 꾸준한 반항심을 위한 최고의 동기가 되기 마련이다.

변화는 2월 “크리쳐스(Creatures)”에 대해 칼럼을 쓴 때에 일어났다. 그녀가 결국 이해 선언을 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내가 너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

“아뇨.” 나는 답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환희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짖굳게 만족해 하고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조용히 서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따금 프리렌서가 쓰는 모든 글은 누군가를 향한 러브레터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야 한다. 크리쳐스에 대한 칼럼은 내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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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보다 더 심하게 울어본 기억이 없다. 내게 음악을 틀라고 말한 그 순간. 그러니까... 무슨일이 있던간에 집을 정리해 두라고 의사가 말했다. 다가온 임종을 누군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음악을 틀려던 그 순간 나는 떠올렸다. 거실에 있는 CD 플레이어를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엎친데 덥친다더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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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시키지 않음(do not resuscitate)” DNR이라는 용어를 AND로 바꾸자는 논의는 진작부터 있었다. DNR이라는 말이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자연사를 받아들이기(allow natural death)”는 한결 좋게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은 가족의 소망을 늘 무시한답니다” (내가 가장 덜 좋아하던)의사가 말했다.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나는 분노에 찬 연설을 쏟아냈다. 세상 사람들이 죽고 싶은 기분을 느낄 때 죽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거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친척이 의사에게 말했다.

“글쎄,”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여긴 뷔페가 아니니까.”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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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1993년에 나를 입양했지만 나는 그보다 이른 1989년부터 그녀와 살기 시작했다.

어릴적 나는 바늘을 무서워 했기 때문에 처음 예방접종을 받을 때에는 의사가 나를 붙잡기 위해 온 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나는 줄곧 의사가 무서웠다.

그 이후 어머니와 나는 방법을 하나 고안해 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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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워진 집중치료실에 앉아 비디오 게임에 대해 고심했다.
가능한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점을 생각해 보았다.

정말 더러운 밤. 나는 내가 게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내가 피해자에게 최고의 죽음을 내려야 하는 목표를 지닌 주인공인, 어찌된 일인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는 게임.

9월 23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간호사가 어머니의 채액을 교환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나는 긴장한 상태에서 곤두박질 친 바이탈 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 채액이 기계에 연결되자 모니터에 그래프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얼마나 “살아남아” 있는지 굽게 그리고 곧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추측할 권한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죽음을 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간섭해서 찌른 상흔이 지랄맞은 상황을 부추기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어머니의 또렷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눈동자를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중얼거리듯 그녀에게 말했다. “일어나셨네요. 잠깐만요.” 나는 토트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가지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었어요.” 그녀에게 말하며 다가가 침대에 앉았다. “제가 성우를 담당한 게임 기억 하세요? 그거 나왔어요. 잠깐요. 지금 보여드릴께요.”

복합적인 장기 파손을 입은 사람이 의식을 회복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뇌까지 산소가 도착하기 때문이다. 난 정말 중요한 순간을 사소하게 쓰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꼴좀 보라지. 눈 앞에서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 하기를 원할 뿐이라니. 세상에, 신이시여. 얼마나 이기적인거야.

아이폰으로 게임을 시연해 보였다. 그녀를 둘러싼 기계의 소음 사이에서 녹음된 내 작은 목소리를 구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추가 더빙을 시작했다. “라인,” 그녀에게 설명했다. “들리세요? 트라이앵글.”

내 게임은 금방 끝났다. “음, 그래요. 끝났네요.” 나는 폰을 집어넣고 다른걸 꺼내려고 뒤적거렸다. “제 글 기억하세요? 제 글이 잡지에 실렸어요. 음, 8월에요.”

내가 그녀의 앞에 소책자를 펼쳐 보이자 그녀는 책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책을 가져가 손에 들더니 표지를 엄지속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을 침대 한견에 내려 놓은 후 내 손을 찾아 향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꼭 쥐었다.

힘을 주어 손을 쥐고. 다시 힘을 주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손을 쥐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뚜렷한 의미를 담은 젖은 눈으로. 산소호흡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눈썹만큼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울때마다 하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준 상처와 슬픔에 대해. 눈을 내려 꼭 쥐고 있는 우리의 손을 바라보았다. 몸을 굽혀 그 손에 몸을 묻고 울었다.

의자에서 몸을 때 침대로 무너지듯 무릅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산소 호흡기로 가려져 입을 맞출 공간조차 없었기에.

———

비슷한 시각에 텍사스의 다른 한쪽에서는 테리가 내가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던 게임의 마지막 부분을 시연하고 있었다. [슈퍼 헥사곤] 테리가 만든 게임이었고 테리는 누구보다 그 게임을 잘 했다.

핵사곤은 중요한 게임이다. 처음 테리를 만났을 때 나는 테리를 새워놓고 그의 게임이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게임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기다림과 움직임 그리고 기회를 향해 커서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행운과 불은 그리고 기억과 결단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정말 좋네요.” 테리는 기쁜 듯 내게 말했다.

최근 엣지(Edge)의 Jason Killingsworth은 테리에게 [슈퍼 헥사곤]이 죽음을 암시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 스포일러! - 느려지던 세계가 열리고 커서의 삶을 되돌아 본 결과 그 이상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글쎄, 나는 죽음말고 설명할 다른게 떠오르지 않는다.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보지 못할 그것을 나는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코 와이어과 튜브를 거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더 많은 튜브를 연결할 작정이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내가 오래 생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 일생을 바치는걸 상상해 보았다. 그녀와 그 방에서 그렇게 지내는 기분을 그려보려 했다.

나는 친지중 한명이 포기한채로 의사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묻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덜 좋아하던 의사였다.

“손을 잡아주세요.” 의사가 말했다. “기억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피부가요.”

———

나는 20분 안에 명령대신 부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당시에 울지 않았다. 대신 내 어리석은 판단력의 깊이를 고민했다. 나는 내가 아닌 그녀를 위해 빌었다. 결정권을 가진 단 하나의 딸을 둔 엄마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내가 쓴 부고는 바보같았다. 그녀를 명예롭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도할 뿐이었다. 지금과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녀의 일생에 대해 썻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녀가 테니스를 좋아했다는 식으로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녀를 구글에 검색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어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같다.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무도 잡지 않아요.” 그녀의 멍청함에 답했다.

그리고 나는 듣게되었다. 나는 그녀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자연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추락하는 동안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한게 아니야. 어떻게 멈추지?”

나는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대신 소리칠 뿐이었다. “이게 당신들이 말한 편안함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놓아드릴께요.” 병원은 당신에게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향해 그 말을 하라고 시킬 것이다. 그녀의 심장이 도통 정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그 말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 내 말을 듣지 못해 다행이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등을 보인채로 두 손만 등 뒤로 넘겨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정말 하고 싶던 말을 했다. 방에 남아있던 이들에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2017. 2. 13.

“게이머”는 당신의 청중일 필요가 없다. “게이머”는 끝났다.



 최근 한국에 필요한 글이라 생각되어 2014년 가마수트라(Gamasutra)에 Leigh Alexander가 투고한 글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게이머라는 단어의 의미와 시대에 따른 변화를 알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글이 올라온 2014년 당시, 한창 게이머게이트가 논란이었습니다. Leigh Alexander는 당시 최전선에서 싸운 언론인입니다. 지금은 FBI의 게이머게이트 보고서를 통해, 당사자에 대한 주요 논란이 거짓이었고, 실상은 혐오범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입니다. 지금부터 읽으실 그녀의 글은 이 블로그에서 게임을 다루는 시각을 대변하는 글이라고 봐도 무관한 글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게이머”는 당신의 청중일 필요가 없다. “게이머”는 끝났다.

'Gamers' don't have to be your audience. 'Gamers' are over.

August 28, 2014 | By Leigh Alexander



 이따끔 나는 나를 게임 문화(Game culture) 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알다시피 ‘게임 문화’는 다소 부끄러운 것이다. 그것은 문화라기 보다 소비다. 반복되는 농담과 인터넷 밈으로 채워져 있는 게임 문화가 인터넷에서 날뛰고 있다.

그것은 버섯 모자를 쓴 젊은 남성이 버섯 인형을 들고, 가방을 매고, 특전 포스터를 옆구리에 낀채 줄을 서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그들은 판매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이고 열정적으로 줄을 선다. 무언가를 살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서. 그들은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쩌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긴 줄을 비추면, 그들은 왜 거기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온라인에서 '게임 문화'는 ‘게임 저널리즘의 윤리’와 사회 정의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자 선언한. 대인 관계에 서툴고, 전문 직업을 가진 삶에 대한 경험 없는 소수만의 것이다. 바른 인간으로써, 근엄한 표정으로, 비디오 게임을 위하여-!

요즘 나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알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이보다 나아져야 한다. 게이머게이트에 대한 옹호, 페미니즘 운동가에 대한 폭력, 그러한 이들을 지지하는 업계인, 이러한 것이 우리의 얼굴이고 게임이라는 비즈니스를 대표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깊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만 한다. *역주[1]

우리의 업계에 대해 세상이 알고 있는 전부는 다음과 같다. 십억 달러를 들인 전쟁 시뮬레이터, 터치스크린 캔디 중독자에 대한 머리기사. 이게 전부이다. 우리는 정말 심각하게 이보다 나아야만 한다.

‘분열’을 원치 않는다고? 미숙한 문화의 사막에서 엿 같은 행동을 일삼는 것이 괜찮은 사람과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나눈 것이 누구인가? 지금 여기 어디에 ‘논의’가 존재하는가?

좋다,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라고 해두자. 인디 게임과 업계의 선구자들을 포함한 다수는 지난 몇 주간 업계의 대화 방향에 지치고, 격노하고, 낙담했다. 실제 트롤의 편에서 글을 찍어내는 신뢰받는 언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차별주의자들에게 지면을 주지 말아야 한다. 별것도 아닌 과실을 위해 업계 전체가 비난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따금 트위터에서 게임 커뮤니티의 열성 이용자들이 혐오 집단에 엮이고는 한다. 그러면 커뮤니티는 이렇게 대응한다. "게시판에서 혐오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삭제된 내용은 커뮤니티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삭제된 바로 그 내용이 그 커뮤니티를 대변한다. 당신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그렇게 인식한다.

우리가 우리 공간의 문화를 만들거나 조율하는 것을 거부할 때, 그 공백에서 생겨난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게 바로 게임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기이하면서도 현명한 게임 외부의 선구자들은 줄곧 게임을 발견해왔다. 술집을 더 재미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아케이드 게임을 도입했고, 훌륭한 문화 교류의 장으로 머드(MUD)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업계의 큰손들은 ‘얼리어답터’를 위한 하이테크로써 게임을 팔고자 했다. 얼리어답터 = 물건에 낭비할 소득을 가진 젊은 백인 남성(dude) 말이다.

갑자기 외로운 지하실 아이들 세대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그들이 가장 큰 고객이었다고. 마케터가 그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마케터들은 빛나는 블라우스와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그들이 만드는 모든 것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들과 동일한 이해를 둔 약속된 최우수 고객에게 게임을 팔기 위해서.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 때쯤에는 단 하나의 지표만 남고 말았다. 돈을 가져라. 여자를 가져라. 총을 가져라, 더 큰 총을 가져라. 그렇게 게임은 사회의 외톨이가 되었다. 정말 축하한다. 당신은 저항으로 부터 승리하기 위해,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게임뿐이다. 대중은 무엇을 사야 할지 알려주는 것이 목적인 언론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들은 점수를 매기고 타이틀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업계와 창작자를 괴롭히기 딱 좋은 ‘팀 스포츠’에 불을 지폈다.

그 시기의 비디오 게임이 오늘날, 도덕적 공황의 희생양이 된것은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고 자본주의 미국 사회의 십 대 백인 소년들에 의해 게임에서는 극악한 일들이 저질러졌다. 그러나 게임은 그것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게임과 게이머 모두 불안에 휩싸여 있었을 뿐이다. 그 안에서는 작고 검게 스멀거리는 그것을 외부에서는 또렷이 볼 수 있었다.

2014년 오늘날 업계는 변했다. 우리는 여전히 화가 난 남성이 비디오 게임의 주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소비층의 소프트웨어 평균 매출은 해마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미 예측 가능한 소수의 브랜드만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역주[2]

과거에 시장을 이끈 이들은 오늘날 확실히 성장했다. 게임의 토양은 비옥해졌다. 다채로운 작은 게임들이 하늘거리고, 창의성이 커뮤니티의 싹을 틔운다. 단순한 소비가 아닌, 자기표현과 성숙한 지원이 쏟아진다. 그곳에는 새로운 청중과 새로운 창작자들이 살아있다. 벌레가 탈피하듯 문화와 상업 양방향으로 낡은 “게이밍(gaming)”이라는 단어를 이제 탈피할 때가 되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복잡함을 더해가는 매체는 탄산음료에 취해있는 이들의 정체성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이제 그들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그들은 그들이 더는 최우수 고객이 아니라는 사실. 그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전문적인 업계 사이트에서 조차 근시안적인 댓글들이 발견되고는 한다. 우리는 그런 콘텐츠 제작자들의 당혹스럽고 완고한 침묵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청중을 원치 않는 문자 그대로 올드 스쿨한 개발자들에게 변화는 힘든 일일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나 만화책이 아닌 다른 참고 자료를 찾아야 하다니? 어린아이와 나이든 남자. 모두에게 똑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이머의 자존심”에 밀리고 구매 안내서의 일방적인 통계에 특별 관심 장르로 분류되던 이들, 새로운 세대의 제작자와 그 팬들은 더 건강한 언어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자주적인 개발자의 인생을 쓰는 일이 되었다. 더는 협력에 목말라하는 기업에 협조하지 않는다.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제 “평론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게임을 사야 할지 알려주는 일 또한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지원할지 또는 누구를 지원할지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허수아비같은 ‘게임 저널리즘 윤리’는 이미 낡은 가치이다. ‘리포터’라고 불리며 광고 계약을 성사시키고 리뷰 점수를 기록하던, 우리가 우리의 청중만큼이나 약한 존재이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 게임 저널리즘 작가의 일은 창작이다.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매체에서 문화를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화론과 포용에 대한 공격의 깃발로 ‘윤리’를 목에 매고 울부짖는 트롤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제작자와 작가 모두, 게임이 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은 것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 도달하고 있다. 점차 가까워질 것이다 - 게임이 희비극, 뮤지컬, 삽화, 꿈의 세계, 가족 이야기, 민속학, 추상 미술이기를 원한다. 게임은 이제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여기에서 배제되기를 원치 않는다.

특정 집단만을 칭하는 그래서 점차 사용을 꺼리는 "게이머"라는 딱지.
그 게이머는 끝났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다.

둔한 바보, 생각 없는 과소비자, 아이처럼 구는 인터넷 논객. 그들은 내 청중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청중일 필요도 없다.
한쪽 "편"을 들거나 "논의"를 가질 필요조차 없다.

거기에 과거가 있고 여기에 현재가 있다.
바로 여기, 앞으로 미래에 당신이 즐길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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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1]

원문에서는 게이머게이트를 옹호하는 미디어, 비디오 게임을 통해 패미니즘 캠페인을연 Anita Sarkeesian이 당한 폭력을 링크로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All of us should be better than this. You should be deeply questioning your life choices if this and this and this are the prominent public face your business presents to the rest of the world.] 원문에서는 관련 글을 링크하고 “이것”이라고 표현하나, 이미 삭제된 글이 다수라 의역하였습니다.

*역주[2]

‘어라? 정말 그런가?’라고 생각하실 분이 많으실 것 같아 덧붙여 말합니다.
2016년 미국의 ESA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게임을 즐기는 성비는 남 59% 여 41%입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게임을 구매하는 연령은 성별구분 없이 38세입니다. 남녀 성비가 거의 균등하며, 평균 연령이 과거보다 높아졌기 때문에 해당 세대의 사회 인식이 게임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역주+@

맙소사. 마지막 부분이 누락되어 있기에 추가합니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2017-06-10 다시 한번 매끄럽게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