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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3.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여성이기에 치른 대가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여성이기에 치른 대가



 2020년이 되고 나니, 2010년 당시 여성으로서 게임 속 젠더에 대해 글을 쓰는 기분이 어땠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십 년 전 비디오 게임 업계의 성비 불균형은 매우 분명하고 고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는 유명 여성 개발자가 패티시의 대상이 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2007년 게임 디자이너 캐시 시에라(Kathy Sierra)는 온라인에서의 괴롭힘과 협박 때문에 직업을 포기하고, 공개적인 활동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 사건은 이후 몇 년 동안 조금 특이한 일로 여겨졌을 뿐, 2014년 와이어드지(Wired)에 개재된 그녀의 글이 설명하듯 “온라인을 통한 괴롭힘의 강도와 빈도가 느리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신호로 여기지 않았다. 역주1)

당시 인기 게임의 대부분은 여성이 제작하지 않았고, 여성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게임은 남성의 파워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는 “현대전(Modern warfare)”이라는 게임 제목과는 달리 2013년까지 멀티플레이에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2010년 8월에 발매된 헤일로: 리치(Halo: Reach)는 남성과 여성 스파르탄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선택에 따른 유의미한 변화는 볼 수 없었다. 같은 시기 메스 이펙트(Mass Effect)같은 롤플레잉 게임 또한 남성, 여성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정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가장 앞서나간 게임으로 평가받았다. 주인공으로 여성만 선택할 수 있었던 유명한 게임은 익숙한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성별만 바꾼 것이었다. (라라 크로프트는 섹시한 인디아나 존스, 조안나 다크는 섹시한 여성 제임스 본드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난 소수의 사례에 해당하는 비욘드 굿&이블(Beyond Good & Evil)의 주인공인 제이드(Jade)는 게임을 즐기는 소수의 여성에게 이미 충분한 선택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쓰였다.

게임은 일반 남성을 위한 것이었고, 게임 웹사이트 또한 일반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아이지엔(IGN), 스파이크(Spike) 그리고 유지오(UGO)같은 사이트는 주기적으로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매력 순위를 매긴 기사를 썼다. 아니지, 아이지엔은 실존 여성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심지어 “소식통(enthusiast press)”의 수준을 벗어나 더 진지한 글을 다루고자 하는 웹사이트에서도 젠더와 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러한 게임 사이트들 역시 주로 백인, 이성애자, 경제적 배경이 비슷한 중산층 남성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이상하거나 기이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비디오 게임이 1990년대부터 꾸준히 그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리엔(Tracey Lien)이 2013년 폴리곤(Polygon)에 게임 마케팅의 역사를 정리한 기사에 따르면 80~90년대 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린 남성이 어린 여성보다 게임을 더 많이 즐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알 낳는 닭”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이후 수십 년 동안 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린 남성에게 집중되었으며, 게임은 사회에서 남성적인 것으로 다루어졌다.

따라서 시장이 마케팅 대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관리해 온 이들이, 오늘날 비디오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유명인들이라는 주장은 앞뒤가 맞는 주장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이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지루한 관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0년 당시 이 주장은 비아냥과 괴롭힘은 물론 협박까지 당할 만큼 소름 끼치는 주장이었다.

물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언제나 다양했다. 인디 게임 개발과 인디 게임 비평 영역은 2000년대 들어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다. 워드프레스(Word press) 같은 블로그 플랫폼의 발전과 초기의 유튜브(Youtube) 그리고 새로운 소셜 미디어 덕분에 게이머는 서로를 찾고 주류에서 다루지 않는 논의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10년에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에서 벗어난 이들이 주도하는 비평 공간이 탄생했다. 페미니스트 게이머(Feminist Gamers), 더 보더 하우스 블로그(The Border House Blog), 섹시 비디오게임랜드(Sexy Videogameland) 그리고 세이크빌(Shakesville) (가끔 게임을 다루는 페미니스트 블로그) 같은 웹사이트는 보통 그들이 즐긴 게임에 대한 감상을 썼지만, 이따금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오랫동안 들어온 다른 이들의 말이나 마케팅과 관계없이, 이러한 사이트들은 다양한 이들이 비디오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당시 내 주위에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여성이 많지 않았고, 비디오 게임으로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러한 블로그의 존재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만약 내가 비디오 게임이 담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면 누군가 관심을 가지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블로그는 현재 모두 문을 닫았고 아카이브가 남아 있지 않은 곳도 다수 있다. 2009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운영 중인 크리티컬 디스턴스(Critical Distance)는 인터넷 곳곳에 있는 좋은 글을 매주 소개하고 있다. 그곳의 아카이브는 수년간 일어난 게임에 대한 논쟁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다행인 것도 있다.

주류 사이트가 인디 공간에서는 평범하게 거론되는 문제를 다룰 때, 특히 그것이 게임 내 성차별과 성 역할 문제라면, 분노에 가득 찬 독자의 반응을 종종 받게 된다. 예를 들면 2010년 8월 31일 G4에 실린 아비 헤페(Abbie Heppe)의 메트로이드: 아더 M(Metroid: Other M) 리뷰가 그랬다. 당시 대다수의 리뷰는 게임의 불편한 조작과 일직선 디자인을 지적하며 보통과 긍정을 오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헤페의 리뷰는 게임의 서사와 서사 구조를 지적했다. 글은 특히 젠더 정치(gender politics)를 주목했다. 그녀의 글은 줄곧 독립적이고 자신만만하게 그려지던 현상금 사냥꾼인 사무스 아란(Samus Aran)이 남성 군단장의 관리하에 활동하고, 시리즈 동안 거듭 물리쳤던 적인 리들리(Ridley)와의 대결에서 아이 같이 공포에 빠지는 것을 지적했다.

헤페는 메트로이드: 아더 M의 사무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녀는 밋밋한 남성 캐릭터가 그녀에게 지시하기 전까지,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길을 열거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유인즉슨 그녀가 그에게 (당연히 친구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조를 어떻게 설명하건 간에, 용암 구역에서 10분이 넘도록 바리아 슈트(Varia Suit)를 사용 못 해보면, 이 서사 장치가 얼마나 괴로울 정도로 멍청한지 알게 될 것이다.” 덤으로 헤페는 엉망으로 쓰인 사무스 아란의 대사도 혹평했다. “사무스는 ‘고해 시간(confession time)’이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마치 12살 소녀가 예쁘게 장식된 일기장 속으로 숨어들 듯 말이다. 마치 엘런 웨이크(Alan Wake)가 여성 채널 오리지널 영화와 만난 것 같은 나레이션은 당신이 ‘아빠의 고민(daddy issues)’을 걱정하기도 전에 늙어 버린다.” 헤페는 게임에 5점 만점에 2점을 주었다.

아더M이 표현한 사무스에 대해 2019년의 메트로이드 팬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게임이 주인공을 성차별적으로 표현해서 실망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헤페의 리뷰가 처음 나왔을 당시의 주류 의견은 그렇지 않았다. 브레이니 게이머(Brainy Gamer) 블로그에 “백래시(Backlash)”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은 리뷰에 대한 반발이 “방대하고(459개의 코멘트, 계속 늘어나고 있음) 개인적” 이었다고 말하며 헤페가 받은 코멘트를 다수 싣고 있다. 이제 보석 같은 코멘트를 한번 살펴보자.

“여성 리뷰어는 리뷰를 기회 삼아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이고 성차별 반대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게임의 스토리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실제 게임 플레이나 그래픽 같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정말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나는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게임을 비평할 때는 더 좋은 비평가를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마다 찾아오는 그 시기에는 게임 리뷰를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이야... 여성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다니... 이야... 메트로이드 같은 비디오 게임을 누가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남자지! (이 게임은 쿠킹 마마가 아니라고)”

브레이니 게이머의 글에서는 이러한 백래시를 “유입이 많은 사이트에서 게임을 비평할 때, 다시 말해 그나 그녀가 단순한 리뷰어가 아닌 비평가의 역할을 할 때 일어나는 일”의 예로서 정의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점수와 함께 실리던 게임 리뷰는 앞서 헤페의 리뷰에 적힌 코멘트가 증명하듯. 기술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구매자 가이드였다. 게임이 다루는 주제와 톤을 분석하는 방식, 특히 헤페의 리뷰를 혐오하던 이들에게 있어 페미니스트 관점의 분석은 절대 게임 점수에 영향을 줄 수 없는 틀린 것이었다. 성별에 기반한 고정관념을 통해 객관성의 본질을 “남성”에 두는 이들은 이러한 분리를 애용한다. 게임의 톤과 서사에 대한 비평은 “여성”스럽기 때문에 본질이 주관되고 편향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스트 시각의 게임 비평은 기술적인 남성 전문가의 영역에 있을 수 없는 소녀의 감성 따위로 취급한 것이다.

게임 속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소외된 비평가들은 아직도 헤페가 받은 것과 같은 코멘트를 반복해서 받고 있다. “멍청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감정으로 전문가의 영역을 방해하고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 당시 페미니스트는 게임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지겹게 구는 외부자 취급을 받았다. 마치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잭 톰슨(Jack Thompson)처럼 말이다. 역주2)

같은 시기인 2010년 8월 게임계에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났다. 페니 아네이드(Penny Arcade)가 8월 11일 내놓은 만화는 “매일 밤 우리는 딕울프(Dickwolves)들에게 강간당하고 있습니다”라는 NPC의 요청에도 불가하고 게임 속 영웅이 그를 도와주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셰이크빌(ShakeVille)의 객원 블로거인 셰이커 밀리(Shaker Milli)는 이 만화에 대한 글을 통해 페니 아케이드의 어두운 유머를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해당 만화는 “강간 피해자들이 의심받고, 비난당하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는”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지적했다. 역주3)

당시 게이머들은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패배”의 의미로 자주 사용했다. 지난 십 년간 정말 뒤처진 표현이기 때문에 지금은 당시 그 말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전 고타쿠 부편집장 패트리샤 에르난데스(Patricia Hernandez)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발견한 의문에 대해 2012년 쓴 글이 있다) 페니 아케이드의 만화를 향한 쉐이크빌의 글은 이후 일 년 동안 이어진 강간을 농담으로 사용하는 게임 문화에 대한 논쟁의 발화점이 되었다.

바로 따라온 페니 아케이드 만화에서는 페니 아케이드의 두 작가가 만화에 등장하여 논란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만화를 읽고 강간범이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금 강간 중이라면 그만두세요”라고 그들은 독자에게 말한다) 이어서 2010년 8월 6일 페니 아케이드 사이트는 딕울프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비난이 쏟아지자 그들은 2011년 1월 26일 판매를 중지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5일이 되어서야 페니아케이드는 간신히 사과로 볼 수 있는 내용을 게재했다. 작가인 마이크 크라우릭(Mike Krahulik)은 “이후 저지른 모든 일”을 후회한다고 밝히며 정작 문제가 된 만화와 농담은 옹호했다. “우리가 만약 딱 그 만화까지만 그렸다면 딕울프는 상징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비웃고 소외시키는 상징 말입니다.”

딕울프 논란의 가장 심란한 부분은 페니 아케이드의 문제가 된 만화와 “강간”이라는 단어가 게이머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에 불편을 토로한 이들이 엄청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신성화된 게임과 그것을 위협하는 적을 향한 조직적인 괴롭힘은 2010년대 내내 이어졌다. 2012년 2월 바이오웨어(Bioware)에서 수석 작가였던 제니퍼 헤플러(Jennifer Hepler)의 오래된 인터뷰가 레딧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2006년에 작성된 오래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게임의 대사처럼 전투도 “빨리 감기(Fast-Forward)”를 도입한다면 게임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인터뷰가 뒤늦게 떠돌게 되면서,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들은 레딧에서 처음 시작된 “바이오웨어를 죽인 암세포”라는 말로 헤플러를 비난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최근 엔썸(Anthem)을 제작한 바이오웨어를 비추어 볼 때, 나레이션을 위해 전투를 덜어내는 것이 바이오웨어를 “파괴”할 것이라는 말은 참 잔인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 괴롭힘에서도 성차별적인 이분법을 볼 수 있다. 여자는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에만 관심을 두는 한편, 남자(진짜 게이머)는 게임의 정말 중요한 부분, 전투를 신경 쓴다는 이분법이다. 이 논쟁은 더 나아가 전투가 없는 게임이 정말 게임인가 하는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이후 2013년 8월 헤플러는 바이오웨어에서 사직했다. 그녀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이후였다.

“진정한 게이머(real gamers)”라는 개념은 게임 커뮤니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경쟁 게임(competitive games)을 플레이하는 여성은 실력이 뛰어나도 남성 플레이어만큼 존중받기 어렵다. 2012년 2월 캡콤은 자사의 새로운 협업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X 철권(Street Fighter X Tekken)을 홍보하기 위해 각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겨루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했다. 이 쇼는 철권 플레이어 팀의 리더인 아리스 바흐타니아스(Aris Bakhtanias)가 여성 플레이어를 성희롱한 사건으로 회자하고 있다. 그는 “성희롱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 문화의 일부이고, 그것을 제거한다면 그것은 격투 게임 커뮤니티가 아니다...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e스포츠가 있듯, 격투 게임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놀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당시 자신을 변호했다.

바흐타니아스의 변호는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반발은 종종 격투 게임 커뮤니티와 e스포츠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른 e스포츠 커뮤니티와 달리, 격투 게임 커뮤니티는 역사적인 인종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e스포츠 상위권에서 백인과 아시안 선수를 보는 것처럼, 격투 게임에서는 흑인과 라틴계 선수를 상위권에서 볼 수 있으며, 토너먼트를 직접 운영함은 물론 전문적인 아나운서나 캐스터가 되기도 한다. 격투 게임 커뮤니티는 그러한 특수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편 바흐타니아스는 자신의 성희롱을 정당화하기 위해 e스포츠의 인종 분열을 이용했고, 격투 게임 커뮤니티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여성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그의 행동과 발언은 “진정한” 게이머가 되기 위해,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여성이 성희롱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2019년 개최된 EVO에서는 오랫동안 참가한 여성 참가자들이 행사에서 경험한 괴롭힘을 전달하고, 발언을 존중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발언한 바 있다.

2012년 5월 17일, 페미니스트 미디어 비평가인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eesian)은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Tropes vs Women in Video games) 영상 프로젝트를 킥스타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원활히 진행되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전의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사키시안은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한 해 동안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소외된 게이머들이 온라인을 통해 모여 목소리를 낸 것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게이머들 또한 온라인을 통해 모였다. 그들은 딕울프를 암구호 삼아 비디오 게임을 위협하는 집단, 심지어는 사키시안이나 제니퍼 헤플러같은 이들에 맞서기 위해 뭉쳤다.

2012년은 그들의 적으로 가득했다. 편협한 게이머들은 그들과 다른 모두를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게임 제작 도구의 보급과 낮아진 문턱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을 만드는 움직임이 점차 또렷해지는 시기였다. 2012년 7월에 공개된 인디 게임: 더 무비(Indie Game: The Movie) 다큐멘터리는 페즈(Fez), 브레이드(Braid), 슈퍼 미트 보이(Super Meat Boy)의 개발자를 조명하며 주류로 부상한 인디 게임을 다루었다. 퀴어 인디 게임도 빠르게 성장했다. 안나 엔트로피(Anna Anthropy)의 디스포이아(dys4ia), 메리트 코파스(Merritt Kopas)의 림(Lim), 포르펜틴(Porpentine)의 하울링 독스(Howling Dogs), 매티 브리스(Mattie Brice)의 마이니치(Mainichi)같은 주목할만한 퀴어, 트랜스 여성의 게임이 이 시기에 출시되었다. 이 게임들은 트랜스 여성이 독립적으로 제작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서로 다른 디자인과 접근을 택했음에도 비슷한 숨결을 공유하고 있다. 역주4)

또한, 2012년은 “트와인 혁명(Twine Revolution)”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픽션 제작 엔진인 트와인 엔진 덕분에 다양한 인터렉티브 픽션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트와인 혁명”이라는 표어는 2012년 12월에 포르펜틴이 작성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게임을 제작한다는 것 그리고 트와인 혁명(Creation Under Capitalism and the Twine Revolution)”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글은 전 코타쿠 직원인 파트리샤 에르난데스(Patricia Hernandez)가 개설한 블로그인 나이트메어 모드(Nightmare Mode)에 개재되었었다. (페트리샤는 코타쿠의 다른 친숙한 이름과 함께 2012년 당시 정직원으로 일했다) 혁명에서 탄생한 가장 유명한 게임은 아마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일 것이다. 조 퀸(Zoe Quinn) 총 제작, 패트릭 린지(Patrick Lindsey) 추가 작문, 아이작 챈클러(saac Schankler)가 음악을 작곡한 게임이다. 게임은 2013년 2월 14일에 공개되어 다양한 비평을 받았으며 훗날 게이머게이트(Gamergate)의 촉매가 되었다. 역주5)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은 이제껏 불균형하던 비디오 게임의 성비가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2012년 말에는 #1reasonwhy와 #1reasontobe라는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에 등장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1reasonwhy 해시태그를 통해 비디오 게임 업계에 여성 종사자가 적은 이유를 주고받았다. 이어서 여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1reasonwhy 태그를 통해 게임 디자이너의 길을 가로막는 우울한 현실의 사례를 공유했다. 외모에 대한 지적과 게임 컨퍼런스에서 겪은 성희롱이 언급되었다. 2013년에 발매된 툼 레이더(Tomb Raider) 리부트에 수석 작가로 참여한 리안나 프래쳇(Rhianna Pratchett) 또한 #1ReasonTobe 해시태그에 참여했다. 그녀는 동료 게임 디자이너에게 자주 “플레이어가 여성이라면?” 어떠할지 상기시켜 주어야 했다고 말하며, 태그를 이용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주고받자고 독려했다. #1reasonwhy, #1reasontobe 해시태그는 오늘날에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ame Developers Conference)는 #1ReasonTobe라는 이름의 연간 행사를 만들어서 게임 업계의 다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패널을 선정하고 있고, 최근에는 여성은 물론 더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패널을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프래쳇이 작가로 참여한 툼 레이더 리부트는 발매되기 전까지 전반적인 논쟁과 조사를 통과해야 했다. 2010년 10월 툼 레이더의 아트 디렉터인 브레인 호턴(Brain Horton)은 게임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에게 약간의 “젖살(baby fat)”이 있을 것이며 “라라 크로프트를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언락되는 비키니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리부트 버전의 라라 크로프트는 분명 극단적인 모래시계 체형에서 벗어났지만 “젖살”이 찐 체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들과 어울려 놀 법한, 틀에 박힌 쿨한 너드 소녀처럼 보였다. 뭐, 간신히 말이다. “그녀는 그녀 주변의 남자만큼 키가 크지는 않고, 아마 머리 정도 작을 겁니다” 당시 호턴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그녀가 모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느낌을 강조해 줄 겁니다.”

2012년 툼 레이더의 제작 총감독인 론 로젠버그(Ron Rosenberg)는 코타쿠를 통해, 게임 후반 라라가 강간 시도에 맞서 싸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성폭력이나 그와 유사한 항목은 저희 게임이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아닙니다”라며 그의 발언을 번복했다. 로젠버그의 망설임은 당시 트리플A 게임이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마케팅하기 위해 겪고 있던 불안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젠버그는 플레이어가 라라를 “보호”하고 싶어 할 거라고 설명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분명 그녀는 영웅이고 당신은 그녀의 조력자입니다. 그녀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당신은 남자 캐릭터에게 가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 이입하게 될 겁니다.”

게임의 혼란스러운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툼 레이더 리부트는 크게 성공했다. 툼 레이더 리부트는 2010년 메트로이드 M이 시도했으나 실패한, 강인함과 연약함 사이를 오가는 현실적인 주인공을 그려냈다. 더불어 2013년은 기존과 다른 트리플A 영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게임이 평론으로부터 넓게 고평가를 받았고 충분한 매출액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2010년대 후반, 다음과 같은 여성 캐릭터가 트리플A 게임의 전면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의 알로이(Aloy), 기어즈5(Gears 5)의 케이트(Kait), 라스트 오브 어스: 레프트 비하인드(The Last of Us: Left Behind)와 라스트 오브 오스 파트 2(The Last of Us Part 2)의 엘리(Ellie). 하지만 2013년에 발매된 대부분의 트리플A 게임은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삼지 않았다. 그 대신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나 라스트 오브 어스(Last of US)같은 게임이 “아버지 게임(Daddening of games)”의 유행을 선도했다. 코타쿠의 스티븐 토틸로(Stephen Totilo)는 2010년 2월에 “아버지 게임”의 시초를 조사한 바 있다. 그리고 매티 브리스(Mattie Brice)는 더 나아가 2013년에 이 현상을 “게임의 아버지 화(the dadification of games)”라고 칭했다. 이 유행은 갓 오브 워(God of War) 시리즈가 아버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시리즈를 리부트했던 2018년까지 이어졌다. 그러한 게임은 자신보다 어리고 연약한 인간을 돌보는 주인공의 부모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게임의 수석 디자이너들은 말 그대로 그들이 만든 게임 속 캐릭터의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켄 레빈(Ken Levine)은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엘리자베스(Elizabeth)를 자신의 “딸”처럼 여긴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그것은 그녀에 대한 포르노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갓 오브 워의 코리 바로그(Cory Barlog) 또한 그의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게임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게임의 가부장적 주제에 대해 많은 디지털 잉크가 흘렀는데, 그 일부는 크리티컬 디스턴스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관련 글 모음에 고여 있다.

2010년 발매된 메트로이드: 아더M처럼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 역시 여러 호평과 비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인상 깊게 두드러진 두 여성 캐릭터를 깊게 파고들었다. 비둘기 같은 눈과 백인 여성의 연약함을 가진 디즈니 공주 같은 캐릭터인 엘리자베스 콤스톡(Elizabeth Comstock)과 더 파운더스(The Founders)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무장 혁명단체 복스 포퓰리(Vox Populi)의 여성 지도자 데이지 피츠로이(Daisy Fitzroy)가 그 둘이다. 2010년대 초반에 일어난 트리플A 게임의 여성 묘사에 대한 많은 논쟁은, 사무스 아란이나 라라 크로프트 같은 백인 여성에 머물러 있었다.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는 게임에서 엇갈리는 인종과 젠더에 대해 비판적인 대화를 이끌었다. 게임이 백인 여성은 순진하고 동정 가는 조력자로 묘사한 한편, 흑인 여성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악당으로 프레임 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임에 비판적인 이들은 엘리자베스 보다 데이지의 곤경에 더 공감했다.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의 편향된 서사에 대한 반박은 주류 게임 언론 밖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리/액션(re/Action)은 유색 트랜스 여성인 매티 브리스(Mattie Brice)가 이끌던 독립된 비디오 게임 블로그로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었다. 2013년 7월 그 사이트에 내 친구인 소하 엘-사바위(Soha El-Sabaawi)의 글이 개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바이오 쇼크: 인피니트가 어떻게 데이지 피츠로이를 잘못 다루었는가에 대해 글을 썼다. “부커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복스 포퓰리와 싸우는 동안 나는 텅 빈 내 아파트에서 끝없이 소리쳐야 했다. ‘왜? 왜 내가 이걸 해야 해?’ 내가 복스 포퓰리 맴버를 죽일 때마다, 나는 한발씩 그들의 억압받은 역사 또한 지워 나갔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내 적이 아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기술적인 사양에서 벗어난 관점으로 게임을 비평하는 이들은 여전히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고작 3년 동안, 메트로이드: 아더M을 리뷰했던 2010년의 평균과 비교해 보면 게임 속 젠더 문제에 대한 비평은 퍽 복잡해졌다. 심지어는 주류 언론까지 주기적으로 인종의 엇갈림, 퀴어니스, 그 외 다른 소수자를 포함한 게임의 젠더 정치를 다루기 시작했다. 다양해진 비평가와 게임 제작자의 목소리에 감사할 일이다.

2013년 3월 페미니스트 프리퀀시(Feminist Frequency)는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Tropes vs Woman In Video game) 시리즈의 첫 번째 영상을 공개했다. 짐작과 예상대로 그 비디오는 격분을 일으켰다. 또한, 2월에 발매된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는 다양한 매체에서 비평과 찬사를 받았으나, 트와인 혁명에서 비롯된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다른 장르의 게임과 동등하게 다루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게이머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비슷한 비난은 곤 홈(Gone Home)에도 쏟아졌다. 2013년 발매된 인디 게임 곤 홈은 텅 빈 집을 탐험하며 사라진 거주인을 조사하는 게임이다. 디프레션 퀘스트는 정신질환, 곤 홈은 퀴어의 커밍아웃을 다루고 있는데, 두 게임 모두 현실을 무대로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게임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인간미가 느껴지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많은 비평가에게 이와 같은 게임의 출시와 성공은 게임이 미래에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며 누가 그것을 가장 잘 말할 수 있을지와 같은 흥미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2013년에 이르자 주류 게임 언론에서도 다양성 있는 글과 주요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디프레션 퀘스트나 곤 홈 같은 게임이 대자본을 투자한 메이저 게임과 같은 위치에 실렸다. 한편 크라우드 펀딩과 페트론의 등장 덕분에 인디 게임 개발, 또는 인디 게임을 비평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것도 가능해졌다.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말이다. 또한, 이제까지 한쪽에 밀려있던 비디오 게임 업계의 폐쇄성에 대한 담론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편견에 가득 찬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중 일부는 음모론을 의심하기도 했는데, 이전의 게임과 다른 실험적인 인디 게임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다수에게 “강요(forced)”한 언론인 집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게임은 게임으로 볼 수 없으며 찬사와 관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게이머게이트(Gamergate)로 알려진 혐오 운동을 점화시키고 불타게 만든 것은 단 한 줄의 생각이었다. 디프레션 퀘스트의 개발자인 조 퀸(Zoe Quinn)이 긍정적인 리뷰를 위해 코타쿠의 저널리스트와 동침했다는 거짓되고 모욕적인 주장이 그것이다. 이 한 줄의 생각은 2014년 8월 16일 퀸의 전 남자친구의 블로그에 등록된 글이 출처였다. 편견에 찬 게이머들은 그것을 퀸을 몰아세울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게임 산업에서 소외되어 있던 다른 이들의 성공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주6)

다른 많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고발당했다. 내가 게임 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동침하며 돌아다녔다고 말이다. 당시 내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프리렌서(내 이전 정규직이었던 보스턴 피닉스(Boston Phoenix)는 2013년 문을 닫았다) 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 이야기다. 그러나 당시 일 년간 살해와 강간 협박을 받고 사실을 떠올려 보면 나는 도무지 웃을 수 없다. 또 다른 이들, 그러니까 매티 브리스(Mattie Brice), 젠 프랭크(Jenn Frank) 그리고 그 외 몇몇은 인터넷을 떠나 몇 년간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을 정도로 많은 위협과 협박을 받았다.

데드스핀(Deadspin)에 카일 뱅거(Kyle Wanger)가 게재한 수필 “미래의 문화 전쟁, 게이머게이트가 여기 있다(The future of the culture wars is here, and it’s Gamergate)”는 게이머게이트의 전략과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초기에는 레딧(Reddit), 포찬(4chan) 그리고 이후에는 에잇찬(8chan), 키위 팜즈(Kiwi Farms) 포럼을 중심으로 모여 공격 대상을 특정했다. 그들은 거대한 지원군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다수의 익명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사용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괴롭힘과 협박을 일삼았다. 또한, 대상의 해고를 종용하기 위해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거나, 대상이 언론인이라면 해당 언론의 광고주에게 광고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캠페인의 반대편에 있다면 게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을 쓰는 것과 같은 자신이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더 쉬운 선택처럼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이런 전략은 일찍이 페니 아케이드의 딕울프 만화에 대한 비평을 거두게 하거나, 트로프 vs 비디오 게임 속 여성 영상에 대한 반응을 바꾸는 성공을 거둔 바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전략은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떠나게 만들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캐시 시에라나 제니퍼 헬퍼 그리고 그 외 많은 이들이 여전히 공공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그 사실을 증언했을 것이다.

올해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는 수필을 모아 “모든 것은 게이머게이트(Everything is Gamergate)”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그러나 “5년 전 일어난 일련의 불쾌한 사건이 온라인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꾸다”라는 글의 부제와는 달리 게이머게이트는 온라인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꾸지 놓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인터넷과 그 연장선에 놓인 비디오 게임이었다. 비디오 게임은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더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논쟁에 휘말린 것으로 밝혀진 이들 중에는 내 지인도 많았다. 우리는 컨퍼런스에 마련된 게임 속 여성(Women In Gaming) 패널에서 서로를 만났다, 산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소수의 여성과 나를 하나로 묶어 착각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는 나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말을 추적하는 편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들에게 반대할 때 그랬다. 게이머 음모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우리는 모두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모두 친구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분리하고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야 했다. 거기에는 거대한 조직도 거대한 음모도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소외되어 있던 이들의 존재감이 늘어나 있었다. 마침내 서로 찾고 만나서, 그들이 항상 존재하기를 바랐던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블로그 포스트와 트와인 게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대화에 불과했다. 그렇게 각각은 개인의 소통에 불과했던 소소한 것들이 마침내 하나로 뭉쳐 힘을 같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편견에 가득 찬 이들을 놀라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그리고 편견에 가득 찬 이들 또한 우리에게 맞서기 위해 한데 모였다.

2010년 초, 나는 23살이었다. 나는 보스턴 피닉스에서 2008년부터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너드 문화를 다루었다. 지역의 게임 이벤트를 취재하면서 보스턴 근교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과도 만났다. 조 퀸이나 브리아나 우(Brianna Wu)같은 무명의 유망주들 말이다. 경쟁적인 비디오 게임도 취재했는데, 슈팅과 격투 게임을 특히 좋아했다.

2010년 3월에 나는 “기어즈 오브 워 3는 여성 캐릭터를 추가할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코믹스와 소설로 확장된 기어즈 오브 워의 설정에 따르면 그 세계의 여성은 대부분 출산 캠프로 강제 이주시킨다. 전투가 허락된 유일한 여성은 불임은 여성뿐인데, 그들 또한 어린 시절과 십 대는 그 캠프에서 지내야 한다. 기어즈 오브 워 코믹스에는 알렉산드라 브랜드(Alexandra Brand)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녀는 10대 소녀 시절 납치범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간당했고, 18세에 공식적으로 불임 선고를 받고 전선으로 내몰린다.

2010년 당시 기어즈 세계의 젠더 정치에 대한 내 비평은 그리 깊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질문은 아주 단순했다. “만약 여성이 아이를 갖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나는 기어즈 오브 워가 만화 같은 근육질 남성 영웅을 위한 파워 판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터무니없는 파워 판타지에 여성이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서툴고 얄팍한 내 글은 폭발했고, 심지어 코타쿠에 링크까지 걸렸다. 그 결과 나는 나를 상처입히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그들은 나 같은 여성이 전장(가상이거나 아니거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그 메시지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무시했지만,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내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 감정 또한 쌓여갔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당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나는 내 글에 대한 모든 이메일, 코멘트, 포럼 게시글을 읽었었다. 나는 다수의 후속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고 셈하기엔 너무나 많은 코멘트에 답글을 달았었다. 나는 게이머들이 내가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외부인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만약 내가 그들 중 하나라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킨다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평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글을 처음 링크한 코타쿠를 탓했다. 도대체 공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누군가 사무실로 찾아와 나를 죽인다니? 그저 인터넷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여성 캐릭터로 플레이하고 싶다고 썼을 뿐이었다. 심지어 거듭 강간당한 결과 불임이 된 여성 아닌가? 왜 나는 그토록 두려워해야 했을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2019년으로 돌아와 보자. 기어즈 5는 올해 초에 발매되었다. 그 게임은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는 사육장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기어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는 여전히 각박하지만, 여성 캐릭터가 끊임없이 성적 위험에 노출되는 세계는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다른 위험에 직면해 있다, 게임 속 세계의 다른 이들과 똑같이 말이다. 나는 기어즈 5를 내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코타쿠에서 리뷰했다.

지나간 10년은 승리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괴로운 경험이었는가를 제외하면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게임에서 젠더를 논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게임의 주인공이 여성인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행에 가깝다. 근육질의 백인 남성을 가녀린 백인 여성 캐릭터로 교체하는 것은 비슷한 타이틀이 넘쳐나는 게임 시장에서 돋보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백인 게이 여성으로 깜짝 논란 반응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는 충분한 변화로 볼 수 없어서 감흥이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에 일어났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놀랐을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여전히 더 대담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매체는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변화조차 대가 없이 찾아오지 않았고, 치른 대가 만큼 변화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2010년이 시작되던 당시 나는 이후 10년간 비디오 게임과 젠더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 될지 몰랐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될지 몰랐다. 나는 게이머게이트가 국제적인 뉴스가 되고, 지역 게임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이 정치 평론가들의 화두가 되리란 것을 몰랐다. 난 게임이 얼마나 많이 변할지 알지 못했으며, 그것이 내가 겪고 지켜봐야 했던 고통에 비해 얼마나 의미 없고 하찮은 것일지도 몰랐다.

2010년대 초 비디오 게임 비평의 세계는 작게만 느껴졌다. 현상 유지에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쉽게 따를 수 있었으며, 쉽게 기억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쉽게 표적이 되었다. 그저 비디오 게임에 불과한 것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나와 동료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다. 실제로 우리는 직업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건강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나는 지금도 당시 논쟁에 가치는 있었는지, 핵심을 찌르는 논쟁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완전히 놓친 혁신적인 게임과 논의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2010년대 초,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많은 이들이 게임 언론과 게임 업계를 떠났다.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온라인 활동을 크게 줄여야 했다. 지난 십 년간 내가 동료들로부터 배운 가장 유용한 팁은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인명 검색 사이트에서 지우는 것이다. 나를 향한 잔인한 코멘트가 일정 이상 눈에 들어오면 인터넷 탭을 빨리 닫는 방법도 익혔다.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를 뮤트하고 차단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는 이제 2010년 당시의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에, 그때는 스스로 뭘 좀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다. 여전히 나는 한밤중에 뜬 눈으로 내가 택한 길을 되묻는다. 떠나야 했던 사람들, 혐오하는 세력에 내쫓긴 이들, 지원이 없어 쫓겨난 이들 또는 그 모두를 겪은 이들을 기억하게 된다. 특히 나보다 더 강렬하고 멋진 일을 해냈던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립적이고 다양한 언론이 변화를 이끄는데 준 도움. 그리고 그것을 잃는 두려움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과거로 퇴보하고 싶어 하는 편견에 가득 찬 이들 또한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다.



2019. 12. 9.

게임과 다양성



 문득 TV를 보면 드라마가 사회 문제를 빠르게 잡아내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영화와 소설 또한 한국 사회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민감하게 잡아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국의 게임은 그 반대입니다. 최근 한국 게임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역행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IGC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게임]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열린 강연은 관계자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집단을 소비자로 잡고 그들을 위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집단이 사회에서 무엇을 대표하는지 그리고 게임이 그것을 대표하게 될 때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입니다.




 미국 게임 업계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미국 사회와 시장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SA에서 2006년 미국 게임 시장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게임을 즐기는 전체 인구 중 18세 이상의 성인이 69%로 절반을 넘어섰으며, 게임을 즐기는 성비 또한 여성 38%, 남성 62%로 여성의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보고서는 “17세 이하 남성보다(23%) 18세 이상의 여성이(30%) 게임을 즐기는 인구에서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라고 변화한 시장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게임의 제작과 홍보 비용은 커졌지만 게임의 판매 단가를 높이는 것은 소비자의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업계는 게임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구매할 만한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 젊은 백인 남성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게이머게이트라는 이름으로 테러에 가까운 범죄를 일으켰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인과관계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페미니즘 강연이 예약된 대학교에 테러 예고를 했고, 여성 게임 개발자에게 강간과 살인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 기록은 FBI의 수사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게임 업계가 그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상품이 소비자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시대에 게임이 그들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게임 업계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했고 게임 시장은 계속해서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한 오늘날의 게임은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한국에서 말하는 게임의 다양성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게임의 다양성이 게임 장르에 한정되어 쓰이고 있으므로 혼란을 피하고자 먼저 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다양성(Diversity)이란 개인이 가진 고유의 특징(국가, 종교, 성, 이념 등)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어로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양한 개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변화를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은 게임에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변화는 게임이 대표하는 개인의 다양화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게임 주인공 캐릭터의 다수는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최근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많이 다양해졌습니다.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게임은 이제 특별하지 않고, 주요 인물이 여성인 AAA 게임도 어색하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종과 국가에 대한 이해도 많이 높아져서 [레인보우 식스 시즈] 같은 게임에서는 오퍼레이터별로 꽤 설득력 있는 설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심즈 4]는 성별에 따른 캐릭터 설정 제한을 크게 줄였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다양한 체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에서 제작된 게임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판매하는 게임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는 변화입니다. 최근 닌텐도의 [동물의 숲] 시리즈는 신작에서 플레이어 캐릭터의 피부색을 선택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양성은 게임 개발 환경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UBIsoft]의 [어쎄신 크리드] 시리즈는 시작 화면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게임이 대표하는 개인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다양한 개인이 게임 제작에 참여한 것입니다. 또한, 게임 업계는 꾸준히 여성 개발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창설된 비영리 단체인 [Girls Make Games]는 8세에서 18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게임 제작과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IGA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종사자의 비율은 2005년 11, 5%에서 2015년 22%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1

언론에서도 게임 업계의 다양성과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권 문제를 꾸준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의 성차별 사내 문화와 크런치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가 최근 크게 늘었습니다. 게임을 바라보는 언론이 업계의 문제를 지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인권 운동 덕분에 사회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따라서 게임의 다양성이 업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공론화와 해결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게임의 방향성이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그 흐름이 다시 업계를 향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존에는 게임에서 배제되어 있던 집단이 게임에 목소리를 내게 되고 그 목소리에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 또한 이미지 개선을 통해 다양한 집단에서 인재를 모으는 것이 업계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다양성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의 다양성 추구는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도 이롭게 작용합니다. 게임의 다양성이 게임의 큰 흐름이 된 이후 게임이 신경 쓰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고치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게임의 접근성입니다. 게임의 접근성에 대해 개발자를 위한 게임 접근성 가이드를 제공하는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 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접근성은 다양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창작물을 접하거나 즐기지 못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벽을 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접근성은 게임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쉬운 예가 바로 게임의 자막입니다. 게임을 하다가 너무 작은 글자 크기 때문에 읽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갑자기 필기체가 나와서 당황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게임 접근성을 높이는 가이드라인이 보급된 후에는 게임에 사용되는 글자 폰트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게임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색맹을 가진 사람을 위해 색의 차이로 게임의 주요 정보를 표시하는 대신, 도형이나 다른 기호의 차이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보급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누리고 있는 변화입니다. 게임의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장애인을 위한 개선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흐름은 게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사회의 더 다양한 집단이 게임을 통해 대표되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게임을 통해 사회에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은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그 문화를 지키기 위해 기업의 문제를 개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팔고자 하는 상품인 게임의 이미지가 곧 기업의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소비자는 사회에서 가치를 존중받는 이미지를 소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해가 맞아떨어져 게임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게임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한국의 게임 업계는 어떻습니까? 게임 언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고민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늦은 지금이라도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바른 가치에 게임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1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IGDA리포트

레퍼런스 링크
The video game industry has a diversity problem – but it can be fixed
- The Guardian
The issue of diversity in Gaming
- Gamedesigning
Why diversity matters in the modern video games industry
- The Guardian
Exploring diversity in video games
By Francesca dlss

2019. 10. 29.

Allow Natural Death


Allow Natural Death

Jenn Frank 지음. 2012년 11월 29일



정확히 6년 전 나는 토이저러스에서 닌텐도 위(Wii)를 구입해서 설치했다. (그 박스는 여전히 나와 소녀시절을 함께한 침실 바닥에 남아있다. 이듬해 11월 내가 떠난 곳이기도 하다.)

“상상했어요? 알(Al)?”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 생전에 이런게 될거라고?” 내가 하는 (에헴)볼링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위(Wii)의 “페이스메이커” 경고를 보았다.* 바로 양아버지에게 명령하듯 외쳤다. “나가요! 나가세요!” 감사하게도 나는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역자주: 닌텐도 위는 페이스메이커나 기타 의료기기와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안내로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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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게임 리뷰로 돈을 버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머니를 더 짜증나게 하기 위함이 컸다. 일생동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해주는 사람은 곧 꾸준한 반항심을 위한 최고의 동기가 되기 마련이다.

변화는 2월 “크리쳐스(Creatures)”에 대해 칼럼을 쓴 때에 일어났다. 그녀가 결국 이해 선언을 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내가 너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

“아뇨.” 나는 답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환희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짖굳게 만족해 하고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조용히 서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따금 프리렌서가 쓰는 모든 글은 누군가를 향한 러브레터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야 한다. 크리쳐스에 대한 칼럼은 내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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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보다 더 심하게 울어본 기억이 없다. 내게 음악을 틀라고 말한 그 순간. 그러니까... 무슨일이 있던간에 집을 정리해 두라고 의사가 말했다. 다가온 임종을 누군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음악을 틀려던 그 순간 나는 떠올렸다. 거실에 있는 CD 플레이어를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엎친데 덥친다더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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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시키지 않음(do not resuscitate)” DNR이라는 용어를 AND로 바꾸자는 논의는 진작부터 있었다. DNR이라는 말이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자연사를 받아들이기(allow natural death)”는 한결 좋게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은 가족의 소망을 늘 무시한답니다” (내가 가장 덜 좋아하던)의사가 말했다.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나는 분노에 찬 연설을 쏟아냈다. 세상 사람들이 죽고 싶은 기분을 느낄 때 죽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거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친척이 의사에게 말했다.

“글쎄,”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여긴 뷔페가 아니니까.”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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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1993년에 나를 입양했지만 나는 그보다 이른 1989년부터 그녀와 살기 시작했다.

어릴적 나는 바늘을 무서워 했기 때문에 처음 예방접종을 받을 때에는 의사가 나를 붙잡기 위해 온 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나는 줄곧 의사가 무서웠다.

그 이후 어머니와 나는 방법을 하나 고안해 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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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워진 집중치료실에 앉아 비디오 게임에 대해 고심했다.
가능한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점을 생각해 보았다.

정말 더러운 밤. 나는 내가 게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내가 피해자에게 최고의 죽음을 내려야 하는 목표를 지닌 주인공인, 어찌된 일인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는 게임.

9월 23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간호사가 어머니의 채액을 교환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나는 긴장한 상태에서 곤두박질 친 바이탈 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 채액이 기계에 연결되자 모니터에 그래프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얼마나 “살아남아” 있는지 굽게 그리고 곧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추측할 권한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죽음을 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간섭해서 찌른 상흔이 지랄맞은 상황을 부추기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어머니의 또렷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눈동자를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중얼거리듯 그녀에게 말했다. “일어나셨네요. 잠깐만요.” 나는 토트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가지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었어요.” 그녀에게 말하며 다가가 침대에 앉았다. “제가 성우를 담당한 게임 기억 하세요? 그거 나왔어요. 잠깐요. 지금 보여드릴께요.”

복합적인 장기 파손을 입은 사람이 의식을 회복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뇌까지 산소가 도착하기 때문이다. 난 정말 중요한 순간을 사소하게 쓰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꼴좀 보라지. 눈 앞에서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 하기를 원할 뿐이라니. 세상에, 신이시여. 얼마나 이기적인거야.

아이폰으로 게임을 시연해 보였다. 그녀를 둘러싼 기계의 소음 사이에서 녹음된 내 작은 목소리를 구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추가 더빙을 시작했다. “라인,” 그녀에게 설명했다. “들리세요? 트라이앵글.”

내 게임은 금방 끝났다. “음, 그래요. 끝났네요.” 나는 폰을 집어넣고 다른걸 꺼내려고 뒤적거렸다. “제 글 기억하세요? 제 글이 잡지에 실렸어요. 음, 8월에요.”

내가 그녀의 앞에 소책자를 펼쳐 보이자 그녀는 책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책을 가져가 손에 들더니 표지를 엄지속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을 침대 한견에 내려 놓은 후 내 손을 찾아 향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꼭 쥐었다.

힘을 주어 손을 쥐고. 다시 힘을 주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손을 쥐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뚜렷한 의미를 담은 젖은 눈으로. 산소호흡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눈썹만큼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울때마다 하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준 상처와 슬픔에 대해. 눈을 내려 꼭 쥐고 있는 우리의 손을 바라보았다. 몸을 굽혀 그 손에 몸을 묻고 울었다.

의자에서 몸을 때 침대로 무너지듯 무릅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산소 호흡기로 가려져 입을 맞출 공간조차 없었기에.

———

비슷한 시각에 텍사스의 다른 한쪽에서는 테리가 내가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던 게임의 마지막 부분을 시연하고 있었다. [슈퍼 헥사곤] 테리가 만든 게임이었고 테리는 누구보다 그 게임을 잘 했다.

핵사곤은 중요한 게임이다. 처음 테리를 만났을 때 나는 테리를 새워놓고 그의 게임이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게임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기다림과 움직임 그리고 기회를 향해 커서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행운과 불은 그리고 기억과 결단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정말 좋네요.” 테리는 기쁜 듯 내게 말했다.

최근 엣지(Edge)의 Jason Killingsworth은 테리에게 [슈퍼 헥사곤]이 죽음을 암시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 스포일러! - 느려지던 세계가 열리고 커서의 삶을 되돌아 본 결과 그 이상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글쎄, 나는 죽음말고 설명할 다른게 떠오르지 않는다.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보지 못할 그것을 나는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코 와이어과 튜브를 거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더 많은 튜브를 연결할 작정이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내가 오래 생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 일생을 바치는걸 상상해 보았다. 그녀와 그 방에서 그렇게 지내는 기분을 그려보려 했다.

나는 친지중 한명이 포기한채로 의사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묻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덜 좋아하던 의사였다.

“손을 잡아주세요.” 의사가 말했다. “기억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피부가요.”

———

나는 20분 안에 명령대신 부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당시에 울지 않았다. 대신 내 어리석은 판단력의 깊이를 고민했다. 나는 내가 아닌 그녀를 위해 빌었다. 결정권을 가진 단 하나의 딸을 둔 엄마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내가 쓴 부고는 바보같았다. 그녀를 명예롭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도할 뿐이었다. 지금과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녀의 일생에 대해 썻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녀가 테니스를 좋아했다는 식으로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녀를 구글에 검색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어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같다.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무도 잡지 않아요.” 그녀의 멍청함에 답했다.

그리고 나는 듣게되었다. 나는 그녀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자연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추락하는 동안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한게 아니야. 어떻게 멈추지?”

나는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대신 소리칠 뿐이었다. “이게 당신들이 말한 편안함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놓아드릴께요.” 병원은 당신에게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향해 그 말을 하라고 시킬 것이다. 그녀의 심장이 도통 정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그 말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 내 말을 듣지 못해 다행이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등을 보인채로 두 손만 등 뒤로 넘겨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정말 하고 싶던 말을 했다. 방에 남아있던 이들에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