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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9.

Return of the Obra Dinn



1802년, 상선 “오브라 딘”은 동양을 향해 런던에서 200톤의 교역품을 가지고 항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6개월 후 배는 희망봉의 랑데부 지점에 이르지 못하였고 실종이 선언되었습니다.

1807년 10월 14일의 이른 아침, 오브라 딘은 눈에 띄는 승무원 없이 손상된 돛과 함께 항구로 떠밀려 왔습니다. 당신은 동인도 회사 런던 사무소의 보험 조정인으로서 배에 탑승하여 승무원 기록서를 복구해야 합니다.


 투덜거리는 나룻배 사공을 뒤로 하고 올라선 단색의 면과 선으로 그려진 배. 점묘화처럼 흩어진 달빛 사이로 찢어진 돛이 펄럭입니다. 고개를 돌리니 갑판 한쪽에는 파리가 꼬인 시신이 있습니다. 백골이 되어버린 시신에 다가서 시계를 꺼내듭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초침과 분침이 빠르게 돌고 시계는 시신이 죽음을 맞이한 시간으로 플레이어를 데려갑니다. 모든 것이 멈춰 있고 소리만 흐르는 장소. 다툼과 비명 총성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흐르는 공간은 혼란이 가득합니다. 소리가 멎고 소란이 진정될 쯔음 책이 열리고 시신이 책에 기록됩니다. 기록은 답이 아닌 질문을 남깁니다. "죽은 이는 누구인가? 사인은 무엇인가?" 책이 덮이고 가까이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현재와 과거의 문을 오가며 플레이어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오브라 딘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된 책은 투껍습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9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은 장황하고 손에 든 것은 너무나 적어서, 이를 정리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퍼즐은 재미있습니다. 차분하게 하나씩 풀다보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단서는 다양하게 제공됩니다. 시신이 죽음 직전에 나눈 대화에 단서가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선실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소품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배에서 플레이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단서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사소한것도 놓치지 말고 치밀하게 게임을 파해쳐야 합니다. 그러한 플레이어의 수고에 걸맞게 단서는 아주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습니다. 대화는 훌륭한 더빙을 통해 캐릭터의 특징과 배경을 짐작게 하고, 중요한 사물은 단조로운 배경에서 도드라져 플레이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Return of the Obra Dinn]은 1인 개발의 한계 안에서 작품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을 잘 짚어낸 티가 나는 작품입니다. 오디오와 정지 화면을 이용한 상황극을 통해 에니메이션 작업을 줄이고, 독특한 그래픽 표현을 통해 시선을 유도하는 방식은 굵은 선과 강한 인상을 지닌 캐릭터를 사용하여 그래픽에 들어가는 작업량을 줄인 [Darkest dungeon]의 그래픽 표현 방식과 마찬가지로 작업량 대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효율적인 개발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이 무엇과 조합되어야 좋은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꼼꼼한 조사를 통해 완성된 배는 생동감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예측 불허한 사건은 논리를 바탕으로 풀어야 하는 퍼즐과 어울려 아주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조사를 통해 마련된 게임의 치밀한 설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이 어울려 현실감 있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Return of the Obra Dinn]은 치밀한 트릭이나 복잡한 사건을 파해치는 추리 게임이 아니라, 많은 단서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퍼즐 게임입니다. 어느 리뷰어는 이 게임을 크로스 퍼즐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됩니다. 시작부터 죽음의 순간으로 데려가는 시계가 나오는 만큼 게임의 이야기에는 오컬트 설정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정통 추리나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건의 전체적인 개연성이나 그것을 뒤집는 반전을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 독립된 퍼즐을 풀고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했을 때의 성취감을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맥락의 단서가 너무 많은 퍼즐에 사용되어 흥미를 떨어트리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어떻게든 응용해보려고 한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아마 이 부분은 제작자도 고민이 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개발자 [Lucas Pope]는 2016년에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처음 이 게임의 프로토 타입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완성된 게임의 도입부는 거의 똑같습니다. 프로토 타입과 최종 결과물을 바꿀 부분이 거의 없을 만큼 뚜렷한 계획에 따른 결과물이라 훌륭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게임의 전개와 소재는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나 [Return of the Obra Dinn]이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임인 동시에 효율적인 게임 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합니다. 재미있는 퍼즐 게임을 찾는 분은 물론 게임 개발자를 희망하거나 종사하고 계신 분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9.99
편의: 어려움, 13시간
제작: Lucas Pope
좌표: Steam, GDC 데모 버전

2017. 12. 27.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





 세대를 마무리하는 시대. 80년대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한 세대가,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와 개발 기술 부족 때문에 이상으로 덮어두고 있던 게임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 최근 콘솔 게임에서 느끼는 감상이자, [모놀리스 소프트웨어]의 신작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 2]에서 느낀 감상입니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과 그 후속기 플레이스테이션2를 관통하는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황금기. 그 시절에 꿈꾸던 롤플레잉 게임을 지금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이야기는 장르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동료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를 구한다. 개성있는 등장인물의 사정과 감정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가 힘입고 흡입력 있게 전달됩니다. 이야기를 이루는 각 사건의 맥락이나 당위성을 따지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로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시리즈 전통의 훌륭한 음악은 물론 캐릭터의 표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연출이나, 감정을 잘 전달하는 성우의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일부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에서 보이는 고민 없는 성차별과 성희롱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캐릭터 설정이 이야기의 수준을 심각하게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게임 세계의 설정과 전혀 관계없는 단어가 나오고, 여성 비하 표현이 서슴없이 반복되며 캐릭터의 외형과 연출은 지나치게 노골적입니다. 해당 문화에 이해를 두고 있는 특정 소수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다수에게 선보일 작품이었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자제해야 했습니다. 게임의 세계에 그러한 설정을 녹여내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기껏 잘 만들어진 캐릭터와 드라마가 흔한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의 변주로 추락한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특정 취향에 집중할게 아니라 게임의 세계와 설정으로 완결될 수 있는 이야기에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시리즈 특유의 세계와 그 세계를 모험하는 느낌은 이번 작에도 충실하게 잘 살아 있습니다. 거대한 생물 위에서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그래픽과 인상적인 장소로 가득한 필드는 이번에도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의도를 찾기 어려운 불친절한 구성과 심각할 정도로 불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경험을 그 크게 해칩니다. 게임의 지도가 보기 어려운 문제는 최근 패치로 인해 해결되었지만, 특정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 스킬을 체크하는 구성은 귀찮고 불편할 뿐입니다. 그 밖에 의도가 읽히지 않는 불편함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이는 게임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서 내버려 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일부 텍스쳐가 로딩이 되지 않는다거나, 게임이 강제 종료되는 문제를 보면 제대로 다듬지 못하고 발매한 것 같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집니다.

게임의 다듬어지지 못한 인상은 게임의 가챠에서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에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이자 동료에 해당하는 “블레이드”를 가챠로 소환합니다. 블레이드는 종족, 성별, 속성, 무기 종류가 랜덤하게 조합되어 소환되는 일반 블레이드와 고정된 조합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레어 블레이드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는 레어 블레이드로 진행하게 됩니다. 레어 블레이드는 이벤트도 별도로 준비되어 있어서 게임을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레어 블레이드 육성이 필수입니다. 문제는 이 레어 블레이드의 소환 확률이 게임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낮다는 것입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전투는 꽤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게임을 진행하며 차근차근 배우게 되는데 레어 블레이드가 잘 나오지 않다 보니 게임을 배워야 할 시기에 필요한 블레이드가 없어서 게임을 제대로 익히지 못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 “드라이버 콤보”라는 시스템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특정 무기를 지닌 블레이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이 폭이 지나치게 좁아, 기껏 만들어둔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제대로 배우기도 어렵고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공략을 통해 미리 알고 진행한다고 가정해도, 어떤 블레이드가 나올지는 무작위고 플레이어가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서 필요한 블레이드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알고는 있었는지 진행을 통해 반드시 주어지는 블레이드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게 조절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반대로 원치 않는 블레이드를 강제로 사용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 뿐입니다.

또한 블레이드의 육성에는 많은 시간이 들고 게임 후반에 즐길 수 있는 켄턴츠는 충분히 않기에 블레이드를 얻기 위해 게임 후반을 소모하고, 블레이드를 얻고 보면 정작 육성할 수단은 단순한 노가다 밖에 남지 않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플레이어의 학습 단계와 블레이드의 육성에 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게임 중반쯤에는 모든 블레이드를 소유하고, 그 블레이드를 캐릭터 간 자유롭게 사용 가능해야 게임을 부드럽게 즐길 수 있을법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레어 블레이드는 잘 나오지 않고, 캐릭터 간 이동도 제한되어 있어서 멋대로 나오는 레어 블레이드를 어떻게든 굴려서 어렵게 게임을 진행하고, 원하는 레어 블레이드의 육성은 게임의 엔딩후에 별도로 진행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레어 블레이드를 엔드 컨텐츠로 사용할 목적으로 디자인했다면 2회차로 계승이라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아예 2회차 플레이 조차 없으니 그저 게임을 못 만들었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습니다.

레어 블레이드에 관한 문제는 각 블레이드의 이벤트와 육성에도 산재해 있습니다만, 전부 서술하자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이미 엉망진창인 시스템의 설명에 더 시간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전투로 넘어가겠습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전투는 게임의 복잡한 전투 시스템을 배우고 응용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이에 익숙해지는 후반까지는 즐겁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 후반으로 가면 적들의 패턴이 매우 단순해집니다. 전투 규칙상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후반의 적은 시간이 흐르면 즉사 공격을 사용하는 패턴이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게임 후반은 적의 패턴에 따른 대응이나 전략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적을 지우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결국, 적의 체력을 절반 정도 깎고 강한 콤보로 한 번에 지워버리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전투 전략의 부재는 아마도 레어 블레이드의 등장 확률이 낮고, 제대로 조합하기 어렵다는 문제로 인해 레어 블레이드의 개성에 따른 역할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적당히 속성만 맞추면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도록 조절한 결과 아닐까 생각됩니다. 블레이드의 캐릭터 간 이동만 자유로워도 덜 할 문제였을 텐데, 게임의 설정과 가챠를 맞추기 위해 내린 결론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가챠는 더 중요한 설정과 충돌하고 있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든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의 가챠는 플레이어에게 불편을 주고 경험을 해치는 아주 잘못된 시도입니다. 게임의 용병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모바일 게임의 구성을 도입해보자는 욕심 아니었나 싶지만, 그렇다면 정말 과욕이 부른 참사입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왕도 스토리, 풍부한 캐릭터의 설정과 그들이 이루는 이야기는 그 시절의 좋은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이야기는 결국 과거의 추억일 뿐 지금 해야 할 이야기는 할 수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과거에 갇혀있고, 현재에서 빌려온 유산은 소수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게임이 고집스럽게 집어넣은 구성 또한 지금 즐기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번잡합니다.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로 만난 과거의 꿈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세대를 마무리하는 시대에 과거를 만나는 이유는 과거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작별 인사를 위한 만남 - [제노블레이드 클로니클2]


2017. 11. 30.

Animal Crossing Pocket Camp




 닌텐도의 사랑받는 게임 시리즈 [동물의 숲]의 최신작이자 최초의 모바일 발매 작품 [Animal Crossing Pocket Camp]는 전형적이고 평범한 모바일 게임입니다. 그리고 필자는 그게 너무나 싫습니다. 제작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게임은 감정을 조절하기가 참 힘듭니다. 워낙 제가 좋아하는 게임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시간을 쓰든가 돈을 쓰든가. 물론 돈을 쓰지 않아도 즐기기에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돈을 쓰면 엄청나게 편해지는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돈을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 사이에 형편이 맞지 않아서일까요?

아니요.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돈을 쓰라고 요구하지만, 플레이어가 너무 심하게 돈을 쓰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편안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임, 플레이어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게임이 동물의 숲의 철학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은 플레이어게 해가 될 수 있는 게임이고, 동물의 숲은 모바일 또한 해가 될 수 있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가 의도치 않은 과소비를 할 수 있는 구성을 만들어 놓고, 그러하길 원치 않는 스스로 만든 모순에 끝없이 부딪히는 비운의 작품입니다.

모바일로 옮겨오면서 동물의 숲을 대표하는 특징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이제 구형의 작은 지구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대신 조각조각 찢어진 작은 공간에 갇혀 살아야 하고, 그렇게 좁아진 세계에서 동물들은 이제 집도 없이 살아갑니다. 심지어 대사와 행동마저 엄청 줄어들어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튜토리얼 대사를 끝없이 반복하는 기이하고 무서운 행동마저 보입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정신병에 걸리면 이상한 행복을 반복한다고 하던가요? 플레이어에게 보상과 만족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장벽이자 NPC로 전락해버린 동물들은 이제 보기 귀여운 것 이상의 의미를 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친구에서 그저 동물원의 동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터무니없이 잘려나간 공백은 이제 의미 없는 수치와 그 수치를 채우기 위한 시간과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한 돈으로 메워졌습니다. 동물은 레벨이 생겼고, 호감도가 생겼으며 레벨과 호감도를 더 높이기 위해 플레이어는 시간을 써서 캠프의 레벨을 올려야 합니다. 시간을 써서 레벨을 올리는 동물의 숲 게임이라니! 더군다나 구성이 깔끔하지도 않아서 플레이어가 손해를 보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그 복잡한 내용을 여기에 길게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물의 숲은 플레이어가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의 게임에서, 손해를 보고 그 손해를 매우기 위해 플레이어가 시간이나 돈을 써야 하는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시리즈의 장점을 포기한 게임이 되면서도, 끝내 위험한 게임이 되고 싶지는 않았나 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플레이어는 원한다면 돈을 써도 되고, 돈을 쓰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물론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한 나머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게임은 충분히 자신의 양심을 지켰고 철학을 관철했으니 핑계는 충분합니다.

이 게임은 이만하면 충분히 양심적인 게임입니다.
(함정 씨앗을 심어둔 곳에 플레이어를 떠밀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렇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이 게임에 상처받는다면 그건 상처받는 사람의 잘못일 겁니다.
다른 모든 잘못된 선택을 내린 게임이 그렇듯이요.

천만에요.
부디 지옥에나 떨어지세요.


2017. 10. 19.

A Mortician's Tale




 죽음은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죽음은 자주 게임 플레이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지만 그사이의 과정이 중요할 뿐, 죽음 그 자체가 다루어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죽음은 보통 어둡고, 두렵고, 손해 보는 사건입니다.

 [A Mortician's Tale]은 그런 죽음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임입니다. 죽음은 담담하게 일상의 일부로 다루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장의사가 되어 장례식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이나 어드벤처 게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장르를 기대하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겁니다. 게임의 구성은 어린아이용 교육용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손을 잡고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죽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실패할 수 없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일도 없습니다. 이 게임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도전이 아닌 죽음에 대한 안전한 접근입니다.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에 안전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게임입니다. 그런데도 필자는 시신을 염하는 과정에서 속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게임 후반에야 괜찮아 지더군요.) 이 게임이 힘들어서 도저히 플레이할 수 없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래도 한번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장례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떤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관련된 사회문제는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죽음을 호기심이나 흥밋거리가 아닌, 현실의 직업을 통해 진지하게 다루는 독특한 게임이니 조금 용기를 내서 접해보시길 권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5,500원
편의: 쉬움, 1시간
제작: Laundry Bear
좌표: itch.io or Steam


2017. 9. 25.

The Magic Circle





 좋아하던 게임 제작사가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Dear Esther]와 [EVERYBODY'S GONE TO THE RAPTURE]의 제작사인 더 차이니즈 룸(The Chinese Room). 경영 자금의 문제로 문을 닫는 것도 아니라, 창작에 너무 지쳐서 휴식을 가지기 위해 회사를 정리한다는 블로그의 글을 보니 심경이 복잡하다. 더 차이니즈 룸은 배경 표현에 극도로 집착하는 회사였다. 폴리곤이 겹치지 않게, 텍스쳐가 튀지 않게 게임의 풍경을 온전히 보여주고 느끼게 만드는 흔치 않은 가치에 집중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더 지쳤을지도 모른다. 정말 게임을 만드는 것은 사람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 소모를 다루는 게임이 있다. [The Magic Circle]은 조크 게임이라 불리는 장난으로 가득한 게임으로 보인다. 조크 게임은 어깨에 힘을 빼고 게임의 단순함을 비웃는 게임이다. 게임이란 결국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한계에 공감하며 즐거움을 얻는 장르이다. 동시에 자유로운 발상으로 한계를 가지고 놀며, 언젠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The Magic Circle]도 현대의 게임을 풍자하고 비웃으며 웃음을 준다. 동시에 게임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퍼즐을 제시하고 풀어나가게 함으로써, 게임이란 역시 즐겁고 대단한 것임을 확인시킨다. 게임 제작 방식, 그중에서도 프로그래밍을 단순하게 만든 퍼즐은 재치 넘치는 서사와 따로 놓고 봐도 훌륭하다. 플레이어가 의혹을 품고 행동하는 많은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 좋은 퍼즐이다. 플레이어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못생겼지만) 귀여운 강아지 몬스터가 입에서 레이저를 뿜고 날아다니게 만들 수 있을까? 가능하다. 그것이 게임의 풀이와 연결될까? 그렇다. (그리고 필자는 그놈을 개들의 왕이라고 이름 붙였다. 날아다니고 입에서 레이저도 쏘니까.)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감각을 가진 제작자가 말하는 만큼 이 게임이 말하는 메시지에는 각별한 무게가 있다.

게임이 끝에 다다를 수록 플레이어는 이 게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게임의 창조주와 플레이어 사이의 벽이 갈수록 얄팍해지고, 그 얇은 벽 사이로 게임에 담긴 수많은 고뇌와 갈등이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는 소음처럼 모호하다가, 게임의 마지막에 가서는 절규와 외침으로 플레이어에게 쏘아 붇이듯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이 게임. 당신이 즐기는 이 게임. 이거, 지속할 수 있는 것이냐고.

AAA 게임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시대에,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는 그 주제를 돌직구로 던진다. 휩쓸리는 문화에 얽혀있는 모습들 또한 놓치지 않고 게임은 담아낸다. 어디까지나 유머의 탈을 쓰고 있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놀라서 머리가 얼얼하다. 웃프다. 게임을 만들다 자신을 태우고 사라지는 개발자. 게임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머지 자신의 손으로 게임을 망치고 마는 게임 팬. 오늘날 게임에 얽힌 현실 그러나 잘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게임 가득 담겨있다. 그럴싸한 문장 몇 마디가 아니라, 말하고 웃고 떠들고 슬퍼하는 캐릭터를 통해 완성된 이야기로 전달된다. 게임에 담긴 비판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것이 너무 어렵고 무거워도 상관없다. 이야기만 놓고 봐도 잘 만들어진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게임의 형태와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도 훌륭하다.

 단점이 없는 게임은 없다. 당연하지. 이 게임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가? 게임이 게임을 이만큼 진지하고 재미있게 다룬 게임을 난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다-! 아쉽게도 앞으로도 한동안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 게임을 해본다면 마지막에 모니터를 보며 분명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더 없어? 끝났어?’

그렇기에 우리는 게임을 만들고, 게임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21000원
편의: 갓게임(진짜임), 4시간
제작: Stephen Alexander, Kain Shin, and Jordan Thomas
좌표: 스팀

2017. 2. 25.

Night in the Woods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히 마무리되었으니 그걸로 괜찮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인공이 친구와 끝없이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농담이 중요합니다. 게임을 해보니 알겠습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관계는 대단합니다. 가벼운 농담은 꺼내기 너무 무거운, 감추고 싶은 상처와 아픔을 나누기 위한 암시입니다. 농담과 웃음은 서로의 믿음을 확인시키고 삶의 상처를 덮어 도닥여 줍니다.

그들의 시시콜콜한 이탈도 재미있고 중요합니다. 그건 썩 아름답지 못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 동감하고, 심지어 감동하게 됩니다. 책임은 우리를 언제나 무겁게 누르고 있고, 실패의 대가는 가혹합니다. 그것은 삶에 눌려 터지지 않기 위해 튀어나온 부분입니다. 우리 또한 겪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Night in the Woods]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동감하며 나를 기억해내는 게임입니다. 게임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겪어 보았음 직한 이야기를 내 주위에 있음 직한 캐릭터로 풀어냅니다. 그것은 억지로 꾸며진 느낌이나, 엉성하게 짜 맞춘 티를 내지 않습니다. 게임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매력적인 캐릭터와 재치 있는 웃음으로 느긋이 풀어갑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승전결을 갖춘 심각한 사건이 존재합니다. 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암시와 그것이 가져올 파멸에 대한 거창한 묘사가 게임 내내 이어집니다. 나름 흥미진진하고 훌륭하게 전개되는 편이지만, 워낙 시시콜콜한 부분이 뛰어나다 보니, 심각한 부분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아 우스울 지경입니다. 필자는 귀찮아서 대충 넘겼는데, 게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칠 여유가 있다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필자는 제작자가 일부러 게임에서 심각한 사건의 분량을 줄였다고 생각합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거대한 음모와 혐오가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뜻밖에 거대한 힘을 목격하게 됩니다. 서로의 유대와 옳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이따금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한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힘에 비하면, 까짓 위기는 별거 아닙니다.

[Night in the Woods]는 현실을 용감하게 표현한 게임입니다. 흔치 않은 시도이자, 흔치 않은 성과입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정말 마법 같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게임의 구성을 집어넣은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훌륭한 솜씨로 그려진 그래픽과 음악 그리고 기억에 평생 남을만한 캐릭터에 비해, 게임의 구성을 빌려온 부분은 거칠고 많이 부족합니다. 플랫포머 게임이라 칭하기에는 규칙이 엉망이고, 어드벤처 게임이라기엔 퍼즐이 빈약합니다. 차라리 과감하게 생략하고, 대화와 이벤트에 더 힘썼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19.99
편의: 9시간, 쉬움
제작: Infinite Fall
좌표: 공식 홈페이지


#3월 19일 리뷰 수정

2017. 1. 11.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






 때로 인터넷에서 나를 대신하는 캐릭터를 만듭니다. 좋아하는 작품의 인물이나 동물 또는 다른 무언가로 나를 표현합니다. 그러는 편이 평범하고 재미없는 나보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쉽고, 타인의 관심은인터넷에서 내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는 그런 존재감 넘치는 캐릭터로 가득한 게임입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이 게임에서 당신의 역할이니까요.

세계는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에 주입 당한 나노머신과 권력의 폭력에 의해 통제당합니다. 위기의 인류, 삭막한 디스토피아! 하지만 그것은 이 게임의 주제가 아닙니다.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는 작은 바(bar)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임입니다. 바는 뮤턴트와 안드로이드가 거니는 네온사인 도심의 변두리에 있습니다. 바의 이름은 “VA-11 HALL-A“ 발음이 어려워서 게임에서는 ”발할라(Valhalla)“라고 불립니다. 플레이어는 그곳의 바텐더이자 다가오는 월세의 위기와 싸우는 알바 전사입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천천히 텍스트를 읽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긋한 게임입니다. 바를 찾아오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칵테일을 만들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약간의 미니게임과 변주가 있지만, 대단하다고 적어둘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캐릭터는 개성이 강하다 못해 어색하고, 세계는 너무 혼란스러워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낯선 일을 처음 시작하면 두렵고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닌 것처럼, 이 게임도 한동안은 혼란스럽고 모호하게 시간이 흘러갈 겁니다.

모호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터넷의 타인 같던 캐릭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를 경계하는 사람도 있고, 오래전부터 친구로 지내던 사람도 있고, 플레이어를 아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플레이어가 건넨 술 한 잔에 그들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플레이어는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흥미를 끌기 위해 이것저것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던 캐릭터가, 다양한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합니다.

억지스럽던 캐릭터에게 쉽게 마음이 가고, 혼란스럽던 게임의 세계가 더욱 얽혀가는 과정에 깊게 빠져드는 이유는 게임이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 그리고 인터넷 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사용하고 있는 게임은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모험에 뛰어듭니다. 어째서 캐릭터에게 고양이 귀가 달려 있을까?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인터넷 포럼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현실에서 마이너 취급되고 비아냥거림으로 일축되는 다양한 문화를 게임은 가상의 세계 중심에 박아놓고 거대하게 확대합니다. 게임의 이야기를 통해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의 문화를 면밀하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는 기념비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인터넷 문화 등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문화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체험을 제공한 게임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비록 만들어진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이 게임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캐릭터 너머의 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나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장하게 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만 6천원
편의: waifu
제작: Sukeban Games
좌표: 스팀

2016. 12. 10.

라스트 가디언






당신은 거대한 새를 올려다봅니다.
몸은 늑대처럼 길고 날렵합니다.

동물이 우아하게 움직일 때마다 털은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반면 꼬리는 쥐꼬리마냥 길고 가늡니다.
그 어색한 조합에 웃음이 나옵니다.

검고 큰 눈의 시선이 당신의 시선과 만납니다.
서로 잠시 눈빛을 나누고 당신은 고개를 돌려유적의 언덕 너머를 바라봅니다.
겹겹이 겹쳐있는 유적 너머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등 뒤에서 짧은 울음 소리가 들리고 곁으로 토리코가 다가옵니다.
당신은 토리코의 발을 쓰다듬고 넓은 등에 올라탑니다.

아직 함께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완벽함에 가까운 게임.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은 완벽한 게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코]와 [완다의 거상]을 제작했던 우에다 후미토가 기나긴 시간 동안 제작한 게임 [라스트 가디언(원제: 식인 거대 독수리 토리코)]은 그만큼 제 마음을 움직인 게임입니다.

[라스트 가디언]은 플레이어가 괴물새 토리코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게임입니다. 첫 만남에서 이 동물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이 게임은 최고의 게임이 될 겁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이 게임은 최악의 게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의 모든 요소가 토리코를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플레이어조차 토리코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일부인지 모릅니다.

일반적인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을 통해 성립됩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토리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방안에서 침대를 빼앗고, 방금 세탁한 옷에 털을 묻히는 동물이 그러하듯 토리코는 플레이어의 의지를 따르지 않습니다. 지금 토리코가 부르는 말에 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버그일까요? 아니면 기분이 별로라서 그럴까요?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 살아있는 토리코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토리코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게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 퍼즐을 풀어낼 힌트를 던집니다. 토리코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물과 모델링이 겹치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여 눈에 보이는 정보를 명료하게 만들고, 상태와 감정을 파악할 수 다양한 울음소리를 주고, 큰 눈동자가 어디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생각을 가늠해보게 합니다. 그 밖에 다양한 퍼즐들은 결국 토리코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따금 토리코라는 게임 일부가 지나치게 플레이어를 휘두르고 주도권을 빼앗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보조하는 것이 게임의 이야기와 연출입니다. 게임의 다양한 사건과 그것을 보여주는 연출은 토리코와 플레이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관계는 플레이어와 토리코 사이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당위성을 만들어 주며, 천천히 깊어지는 관계는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해 줍니다. 덕분에 토리코라는 퍼즐에 매력을 느끼고 마음을 준다면 게임은 정말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경험이 될 것입니다.

[라스트 가디언]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고양이나 개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고양이나 개는 사람을 좋아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 정말 완벽함에 가깝게 구현된 환상의 동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이 당신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토리코를 좋아할지 싫어할지는 당신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6. 9. 30.

파이어 엠블렘 if

- 파이어 엠블렘 if와 실패한 캐릭터 -



 백야 20장에서 [파이어 엠블렘 if]의 플레이를 포기했습니다. ‘이건 도저히 못 하겠다.’ 기기에서 카트리지를 뽑아서 고이 방 한구석에 모셔두었습니다. DLC도 전부 샀는데...... 사정이 어려운 닌텐도 코리아에 기부했다고 생각하고 말아야겠습니다. 나중에 신작이 나오면 변화를 비교를 해보기 위해 [파이어 엠블렘 if]에 대해 가볍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파이어 엠블렘 if]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을 했습니다. 캐릭터의 수를 늘렸고 온라인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게임의 기본은 여전히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나가며 엔딩에 이르는 싱글 플레이 게임이지만, 온라인 게임으로 즐기기에 무리가 없을 만큼 꼼꼼하게 신경을 쓴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기지를 꾸미고, 육성한 캐릭터를 배치하여 플레이어가 꾸민 전장에서 온라인 상대와 대전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은 SRPG라는 장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플레이어는 애착을 가진 캐릭터를 육성시킬 동기를 얻게 되고, 온라인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 간의 교류라는 새로운 재미와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 [파이어 엠블렘if]에서 온라인 플레이는 상당히 공을 들였고, 그만큼의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캐릭터에서 터집니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는 캐릭터가 한번 죽으면 게임에서 이탈하는 특징 상, 여분으로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게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작 [파이어 엠블렘 각성](이후 전작으로 지칭)에서 44명이던 캐릭터가 이번 [파이어 엠블렘 if]에서는 6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캐릭터를 늘린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만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합니다. 일단 캐릭터 자체에서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파이어 엠블렘 if]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분히 최근 캐릭터 상품의 기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 만화 기타 캐릭터 상품의 원천이 되는 원작에서 다져진 캐릭터의 특징들이 이번 [파이어 엠블렘 if]에서 정말 가득 보입니다. ‘원래 이런 게임이었나?’ 싶은 당혹감이 들 정도로 게임은 다양한 캐릭터들로 플레이어의 호감을 이끌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이런 캐릭터가 나와야지만 팔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전작의 캐릭터 상품이 제법 수익이 괜찮았을까요?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파이어 엠블렘 if]의 늘어난 캐릭터는 별로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캐릭터를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소비자들이 어떤 캐릭터를 좋아해 줄까? 이것은 면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둔 상품이라기보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와중에 하나 걸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렇게 걸리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 기본은 캐릭터의 자료입니다. 캐릭터가 소비되기 위해서는 소비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캐릭터의 습관, 외모, 배경 등 캐릭터를 설명하는 다양한 자료들이 캐릭터를 구성합니다. 소비하고 싶은 것들이 모여 있는 집합체로서의 캐릭터, 그것이 현대의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팔리는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은 곧 소비자가 좋아할만한 자료들을 모아서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이어 엠블렘 if]에는 이 과정이 없습니다.

[파이어 엠플렘 if]의 캐릭터는 게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게임의 이야기가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캐릭터들도 게임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쿨 하지만 다소 덜렁대는 캐릭터가 멍청한 결정을 일삼아 그냥 멍청이가 되는가 하면, 사랑하는 동생을 너무나 아끼는 캐릭터가 사실은 얀데레(라는 기호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라서 동생을 죽이려고 합니다. 시리즈 사상 최대 규모의 대화를 자랑하는 게임이지만 그 와중에 설득력을 가진 캐릭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게임의 큰 이야기를 통해 캐릭터들이 자신의 설정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보니 얄팍한 생각으로 팔릴만한 캐릭터를 종류별로 집어넣었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듭니다. 캐릭터가 이렇다보니 이런 캐릭터들이 끌어가는 이야기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너무 개연성이 없고 바보 같아서 뭐라고 쓸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파이어 엠블렘if]는 싱글 플레이 게임이고, 게임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게임의 끝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이어 엠블렘if]의 이야기는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엉망입니다. 그나마 살릴만한 캐릭터와 온라인 기능을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임의 흐름이 망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엉망이라면 대체 왜 이야기를 봐야만 하는 걸까요? 심지어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온라인을 위해들인 수고가 사라지는데 말입니다. [파이어 엠블렘 if]가 어떤 과도기에 놓여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그저 선택을 잘못한 것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신작이 나온다면 그것을 통해 이 게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최근 기존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게임들이 캐릭터를 팔기 위해 변화를 꾀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HD 시대에 들어 대형 회사들이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또 다르게 무엇을 만들어서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이 이 오래된 시리즈에서 보였기에 팬으로서 퍽 우울합니다. 무엇이 팔리는지 감은 잡았지만, 그것이 왜 팔리는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2016. 2. 25.

ANATOMY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2.99
편의: 영어 듣기 필요, 1시간
좌표: itch.io


 [ANATOMY]는 익히 아시다시피 “해부”라는 뜻이 있는 영어 단어입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집이 무대인 게임 제목이 왜 해부일까? 집에서 무언가를 해부하는 내용일까? 또는 해부 당하는 내용일까? 흔한 호러 게임의 내용을 상상하며 접한 게임은 예상과는 꽤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ANATOMY]는 집을 해부하는 호러 게임입니다.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는 소음과 함께 게임은 시작됩니다. 1994년을 8월을 표시하는 TV 화면이 스쳐 지나간 뒤, 어둠 속에 잠겨있는 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화면을 긁는 노이즈 너머로 나무로 된 싸구려 문과 어두운 통로가 보입니다. 통로를 따라가 보니 작은 주방이 나옵니다. 주방 탁자 위에는 검붉게 빛나는 것이 있습니다. 카세트테이프와 카세트 플레이어, 앞서 스쳐 지나간 1994년이라는 시절에 어울리는 낡은 물건입니다.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자 명료하지 못한 잡음과 함께 집에 대한 설명이 시작됩니다. “집은 생물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 구조는 인간의 정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테이프가 끝나고, 화면에 메시지가 표시됩니다. “카세트테이프가 XXX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카세트를 찾는 폐가 탐색이 시작됩니다. 또는 폐가를 탐색했던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됩니다. 언젠가 들었던 도시 전설처럼 이 비디오에서 나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카세트를 찾아서 재생할 것.

[ANATOMY]는 플레이어가 빠져나가려고 노력할수록 더 깊이 플레이어를 끌어들입니다. 때때로 비디오테이프가 끝나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추방입니다.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때마다 그 속의 집은 깨지고 망가집니다. 그 과정에서 급격하게 집의 이면이 드러납니다. 아직 무언가 더 남아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공포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오는 깜짝쇼는 걱정하거나 기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령도 없고, 살인마도 없습니다. 이 게임의 공포는 집이라는 공간 그 자체입니다. 집과 플레이어 어느 한쪽이 완전히 망가지기 까지 해부는 멈추지 않습니다.

 낡은 기록장치의 특징을 이용하여 게임은 매우 설득력 있는 공포를 플레이어에게 제공합니다. 노이즈가 이글거리는 화면 너머 무엇을 상상하시건 간에, 게임은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릴 겁니다.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르는 깜짝쇼가 아니라, 등골을 짜르르 타고 흐르는 은근한 공포를 즐기신다면 [ANATOMY]의 해부 강의에 만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