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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3.

Sayonara Wild Hearts





 [Sayonara Wild Hearts]는 한 퀴어 소녀의 성장을 음악과 비디오 게임으로 표현한 짧은 작품입니다. 게임 구성은 스테이지 형식으로 리듬 게임처럼 트랙별로 나뉘어 있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는 연출에 따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듭니다. 트레일러만 보면 적당히 구색만 갖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해보면 장르의 변화에 따라 조작하는 느낌이 달라질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가볍게 즐긴다면 아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지만 파고들면 암기형 슈팅 게임에 가까워지는 게임입니다. 적탄에 근접하면 스코어링이 올라가는 시스템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이 게임은 마법 소녀 물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법한데…. 사실입니다. 비디오 게임, 발레, (백합)마법 소녀 물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를 하나로 버무려낸 연출만으로도 대단한 게임입니다. 비디오 게임 레벨 디자인으로 감정을 묘사하고, 애니메이션 장르의 공식을 이용해서 메시지의 뼈대를 만든 센스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아마 게임을 끝내고 나면 이상해 보이던 제목이 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겁니다.

참 오해하기 쉬운 게임입니다. 기이한 게임 제목과 공개된 트레일러만 보면 얄팍한 관심끌기용 게임으로 보이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사실 게임이 이해를 두고 있는 주제에 대한 깊은 존중을 표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올해 이 게임이 너무 과소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쓰라립니다.


플랫폼: PS4, 스위치, PC, 에플 아케이드
가격: \13,500
편의: 어려움(반복 실패시 스킵가능)
제작: SIMOGO
좌표: STEAM

2018. 2. 15.

Celeste




 [Celeste]의 주인공은 산을 오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고자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도 같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산의 정상을 향하며 계속 갈등합니다.

이게 맞는 길 일까? 산의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거친 픽셀로 그려진 2D 플랫포머 게임. [Celeste]에는 움직이는 발판이 있고, 찔리면 죽는 가시가 있고, 펄펄 끓는 용암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플레이어는 달리고, 뛰고, 공중에서 달립니다. 하지만 일찍이 가시와 용암이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게임은 많았고, 달리고 뛰는 게임 또한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를까요? 어째서 플레이어는 산에 올라야 할까요?

그 이유가 이 게임을 특별한 게임으로 만듭니다.

[Celeste]는 정말 어려운 게임입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은 정확한 판단과 완벽한 조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늘 플레이어의 예상을 뛰어넘어 플레이어가 실패하게 만듭니다. 주어진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익히지 못한다면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이 바로 [Celeste]의 산입니다. 어지간히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수백 번은 물론 수천 번은 실패해야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이토록 막막하게 어려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불안을 느끼게 합니다.

이게 맞는 길 일까? 내가 클리어할 수 있을까?

이 가차 없는 산은 때때로 플레이어가 들어온 입구를 막아 퇴로까지 차단해 버립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기 싫다면 눈앞의 난관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은 난관을 도전으로 바꾸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에 플레이어가 볼 수 없게 가려져 있거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는 장애물은 없습니다. 거칠게 막힌 통로는 돌아가지 말고 극복하라는 의미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극복을 요구받는 동시에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무한한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전보다 더 어려운 도전을 위한 각오를 다질 때, 게임은 음계를 높이고 빠른 음정으로 응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게임의 이야기를 통해, 게임의 도전을 극복하는 것이 곧 주인공의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와 일치함을 깨닫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전진은 게임의 전진이고, 게임의 전진은 주인공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플레이어가 난관에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것은 곧 게임에서 게임 주인공이 극복하는 이야기와 맞물려 플레이어를 움직이는 강한 힘이 되어줍니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주인공은 영원히 플레이어와 함께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Celeste]의 산은 극복을 의미하는 동시에 큰 실패의 위험을 껴안은 게임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작자가 게임에 담은 확신에서 오는 플레이어를 향한 도전입니다. 그것은 어렵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난관이며 그것과 같은 무게를 지닌 극복입니다. 바로 그 무게가 게임의 가상에 현실을 부여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진심으로 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플레이어는 충족을 느낍니다. 그것은 정해진 게임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결말에서 오는 충족이 아닙니다. 산의 입구에 서 있던 나와 산의 정상에 선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얻는 충족입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 선 플레이어는 다시 산의 입구로 돌아갑니다. 전에 없던 확신과 자신감을 품고. 더 어렵고 더 많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플랫폼: PC, PS4, 스위치, XBOX, 맥, 리눅스
가격: $19.99
편의: 매우 어려움
제작: Matt Makes Games
좌표: 홈페이지

2017. 11. 27.

What Remains of Edith Finch





 걷는 게임의 목표는 게임이 의도한 분위기와 이야기를 온전히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걷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게임이 변한다는 것은 게임의 분위기와 이야기가 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게임에 변화를 기대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가치 있는 행동을 하길 원하며 그것은 게임의 변화로서 증명됩니다. 걷는 게임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플레이어가 게임의 정보를 수집해서 이야기를 해석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게임이지만, 이는 게임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고 게임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걷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는 비평에 자주 직면합니다. 걷는 것, 게임에서의 이동만으로는 가치 있는 행동으로서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변화를 기대하는데 게임은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기발한 답을 제시한 게임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바꾸기 전에, 플레이어의 기대를 뛰어넘어 게임이 먼저 변해 버리면 어떨까요? [What Remains of Edith Finch]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만들어 둔 변화에 참여시키는 것을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 게임입니다. 게임의 구성은 일반적인 걷는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플레이어의 조작은 억제되어 있고, 게임은 이야기와 분위기의 전달에 모든 자원을 투자합니다. 다만 특이한 점은 조작의 의미가 게임에서 거듭 변한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입력하는 방법(조작)은 같지만, 입력에 따른 게임의 반응, 즉 플레이어의 행동은 게임에서 변화를 거듭합니다. 이는 게임이 행동의 주체와 행동이 일어나는 무대를 급격하게 바꿀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플레이어가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고 행동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재미를 느낍니다. 게임 전체가 조작하는 방법을 밝혀내는 퍼즐 또는 추리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적으로 플레이어가 게임에 흥미를 잃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꽤 단순한 이유입니다. 바로 준비해둔 변화의 품질이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였고, 행동에 만족할 수 있도록 뛰어난 연출을 도입했습니다. 게임 전체가 집착에 가까울 만큼 높은 수준으로 완성되어 있어서 가능한 역할 전환입니다. 그러나 결국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의 맥락이 희미해졌다는 인상은 피하기 힘듭니다. 화려하고 인상적인 무대가 끝난 뒤에 남은 것은 완성된 이야기를 체험한 뒤에 남는 깊은 여운이 아니라, 도착지를 찾지 못한 공허함이었습니다. [What Remains of Edith Finch]는 체험을 다양하게 만들어 걷는 게임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게임의 변화가 이야기 전달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이는 꼭 걷는 게임이라는 장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당장 어찌 될 문제도 아니므로 이것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장르를 넘어 게임의 한계에 도전한 게임이니만큼, 그 한계에 부딪힌 결과를 보는 것은 복잡한 심경입니다.


플랫폼: PC, XBOX, PS4
가격: 2만 1천원
편의: 쉬움
제작: Giant Sparrow
좌표: 스팀

2016. 12. 10.

라스트 가디언






당신은 거대한 새를 올려다봅니다.
몸은 늑대처럼 길고 날렵합니다.

동물이 우아하게 움직일 때마다 털은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반면 꼬리는 쥐꼬리마냥 길고 가늡니다.
그 어색한 조합에 웃음이 나옵니다.

검고 큰 눈의 시선이 당신의 시선과 만납니다.
서로 잠시 눈빛을 나누고 당신은 고개를 돌려유적의 언덕 너머를 바라봅니다.
겹겹이 겹쳐있는 유적 너머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등 뒤에서 짧은 울음 소리가 들리고 곁으로 토리코가 다가옵니다.
당신은 토리코의 발을 쓰다듬고 넓은 등에 올라탑니다.

아직 함께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완벽함에 가까운 게임.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은 완벽한 게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코]와 [완다의 거상]을 제작했던 우에다 후미토가 기나긴 시간 동안 제작한 게임 [라스트 가디언(원제: 식인 거대 독수리 토리코)]은 그만큼 제 마음을 움직인 게임입니다.

[라스트 가디언]은 플레이어가 괴물새 토리코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게임입니다. 첫 만남에서 이 동물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이 게임은 최고의 게임이 될 겁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이 게임은 최악의 게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의 모든 요소가 토리코를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플레이어조차 토리코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일부인지 모릅니다.

일반적인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을 통해 성립됩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토리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방안에서 침대를 빼앗고, 방금 세탁한 옷에 털을 묻히는 동물이 그러하듯 토리코는 플레이어의 의지를 따르지 않습니다. 지금 토리코가 부르는 말에 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버그일까요? 아니면 기분이 별로라서 그럴까요?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 살아있는 토리코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토리코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게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 퍼즐을 풀어낼 힌트를 던집니다. 토리코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물과 모델링이 겹치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여 눈에 보이는 정보를 명료하게 만들고, 상태와 감정을 파악할 수 다양한 울음소리를 주고, 큰 눈동자가 어디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생각을 가늠해보게 합니다. 그 밖에 다양한 퍼즐들은 결국 토리코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따금 토리코라는 게임 일부가 지나치게 플레이어를 휘두르고 주도권을 빼앗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보조하는 것이 게임의 이야기와 연출입니다. 게임의 다양한 사건과 그것을 보여주는 연출은 토리코와 플레이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관계는 플레이어와 토리코 사이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당위성을 만들어 주며, 천천히 깊어지는 관계는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해 줍니다. 덕분에 토리코라는 퍼즐에 매력을 느끼고 마음을 준다면 게임은 정말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경험이 될 것입니다.

[라스트 가디언]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고양이나 개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고양이나 개는 사람을 좋아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 정말 완벽함에 가깝게 구현된 환상의 동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이 당신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토리코를 좋아할지 싫어할지는 당신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