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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6.

리갈 던전(Legal dungeon)




 경찰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양심에 의하면 피의자는 무죄로 판단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번 달 실적이 최악입니다. 범죄자를 만들어서라도 건수를 올려야 할 위기 상황. 유죄로 판단한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팀 전체에 득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법리로 정당성까지 보장되어 있습니다. [리갈 던전(Legal dungeon)]에서 플레이어는 경찰 형사 2팀의 팀장이 되어 사건을 수사하고 정리하여 검찰로 넘기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자, 그럼 이 사건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의견서, 기소, 불기소, 진술조서, 피의자신문조서... [리갈 던전]에는 보기만 해도 겁날 정도로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다행스럽게도 플레이어는 경찰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정부 하청으로 제작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소프트웨어는 여러 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위 끝에는 단어를 검색해 볼 수 있는 검색 도구가 있고 그 아래로 사건 서류가 분류되어 있습니다. 분류된 사건 서류 아래로는 사건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법 판례와 기타 용어의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용 방법은 참으로 간단해서 제공된 서류를 천천히 읽어보고 소프트웨어가 미리 작성해둔 양식에 알맞은 단어나 문장을 찾아 넣으면 간단하게 서류 작성이 끝납니다.

서류 작성이 끝나면 피의자와 대결에 돌입합니다. 대결이 시작되면 간략한 전투 화면이 아담하게 표시되고 플레이어와 피의자가 말로 치고받으며 죄의 유무를 따지게 됩니다. 이 죄의 유무를 따지는 과정은 앞의 서류 작성보다 더 퍼즐에 가까운 논리 싸움인 동시에 이야기의 흐름을 나누는 분기점 역할을 합니다. 퍼즐 난이도가 고르지 못한 단점이 있지만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적절한 답을 찾는 과정은 “아하!”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경찰 소프트웨어에는 도우미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익살스럽게 생긴 캐릭터가 게임 중간중간 플레이어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기능입니다. 동작과 표정도 나름 풍부해서 삭막한 소프트웨어에 캐릭터와 개성을 불어넣는 마스코트 역할도 해냅니다. 어쩐지 예전에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제작한 오피스 도우미 클리피가 생각나는 캐릭터입니다. 도우미의 조언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피의자와 대결을 거치고 나면 플레이어는 어렵지 않게 초반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썩어빠진 경찰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솔직히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화내며 게임을 그만둬도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면서 뉴스를 보신 분이라면 특이 최근 논란이 되는 어떤 사건의 뉴스를 보신 분이라면 게임이 내놓는 결론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 겁니다. [리갈 던전]에서 다루는 사건은 실제 있었던 판례를 통해 재구성한 사건입니다. 사건에 돌입하기 전 나오는 판례는 사건의 모델이 된 실제 판례입니다. [리갈 던전]은 현실과 아주 가깝게 재현된 역할을 경험하고 그 역할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고민해 보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마지막이 모호해서 경험을 하나로 매끄럽게 엮어내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지만 각 사건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만으로 충분히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리갈 던전]은 게임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게임인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게임입니다. 반복 플레이가 강요되는 것에 비해 넘기기 기능이 약한 것과 경찰 소프트웨어를 제외한 게임 구성에 대한 안내가 부족한 것은 지적하고 싶지만 [리갈 던전]이 나쁜 게임이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법리가 사건에 적용될 때 윤리와 도덕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윤리와 도덕으로 이루어진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는 사회가 중요한 이유를 이만큼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한 게임을 저는 이제껏 해보지 못했습니다. 게임의 영역을 넓히는 노력은 언제나 그 시도를 평가받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결과가 훌륭하다면 더욱 말입니다.


플랫폼: 스팀
가격: \7500
편의: 어려움, 10시간
제작: 소미(Somi)
좌표: 스팀 스토어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