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찾아보기

2019. 12. 9.

게임과 다양성



 문득 TV를 보면 드라마가 사회 문제를 빠르게 잡아내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영화와 소설 또한 한국 사회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민감하게 잡아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국의 게임은 그 반대입니다. 최근 한국 게임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역행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IGC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게임]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열린 강연은 관계자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집단을 소비자로 잡고 그들을 위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집단이 사회에서 무엇을 대표하는지 그리고 게임이 그것을 대표하게 될 때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입니다.




 미국 게임 업계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미국 사회와 시장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SA에서 2006년 미국 게임 시장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게임을 즐기는 전체 인구 중 18세 이상의 성인이 69%로 절반을 넘어섰으며, 게임을 즐기는 성비 또한 여성 38%, 남성 62%로 여성의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보고서는 “17세 이하 남성보다(23%) 18세 이상의 여성이(30%) 게임을 즐기는 인구에서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라고 변화한 시장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게임의 제작과 홍보 비용은 커졌지만 게임의 판매 단가를 높이는 것은 소비자의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업계는 게임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구매할 만한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 젊은 백인 남성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게이머게이트라는 이름으로 테러에 가까운 범죄를 일으켰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인과관계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페미니즘 강연이 예약된 대학교에 테러 예고를 했고, 여성 게임 개발자에게 강간과 살인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 기록은 FBI의 수사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게임 업계가 그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상품이 소비자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시대에 게임이 그들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게임 업계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했고 게임 시장은 계속해서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한 오늘날의 게임은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한국에서 말하는 게임의 다양성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게임의 다양성이 게임 장르에 한정되어 쓰이고 있으므로 혼란을 피하고자 먼저 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다양성(Diversity)이란 개인이 가진 고유의 특징(국가, 종교, 성, 이념 등)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어로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양한 개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변화를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은 게임에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변화는 게임이 대표하는 개인의 다양화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게임 주인공 캐릭터의 다수는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최근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많이 다양해졌습니다.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게임은 이제 특별하지 않고, 주요 인물이 여성인 AAA 게임도 어색하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종과 국가에 대한 이해도 많이 높아져서 [레인보우 식스 시즈] 같은 게임에서는 오퍼레이터별로 꽤 설득력 있는 설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심즈 4]는 성별에 따른 캐릭터 설정 제한을 크게 줄였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다양한 체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에서 제작된 게임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판매하는 게임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는 변화입니다. 최근 닌텐도의 [동물의 숲] 시리즈는 신작에서 플레이어 캐릭터의 피부색을 선택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양성은 게임 개발 환경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UBIsoft]의 [어쎄신 크리드] 시리즈는 시작 화면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게임이 대표하는 개인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다양한 개인이 게임 제작에 참여한 것입니다. 또한, 게임 업계는 꾸준히 여성 개발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창설된 비영리 단체인 [Girls Make Games]는 8세에서 18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게임 제작과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IGA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종사자의 비율은 2005년 11, 5%에서 2015년 22%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1

언론에서도 게임 업계의 다양성과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권 문제를 꾸준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의 성차별 사내 문화와 크런치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가 최근 크게 늘었습니다. 게임을 바라보는 언론이 업계의 문제를 지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인권 운동 덕분에 사회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따라서 게임의 다양성이 업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공론화와 해결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게임의 방향성이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그 흐름이 다시 업계를 향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존에는 게임에서 배제되어 있던 집단이 게임에 목소리를 내게 되고 그 목소리에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 또한 이미지 개선을 통해 다양한 집단에서 인재를 모으는 것이 업계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다양성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의 다양성 추구는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도 이롭게 작용합니다. 게임의 다양성이 게임의 큰 흐름이 된 이후 게임이 신경 쓰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고치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게임의 접근성입니다. 게임의 접근성에 대해 개발자를 위한 게임 접근성 가이드를 제공하는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 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접근성은 다양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창작물을 접하거나 즐기지 못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벽을 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접근성은 게임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쉬운 예가 바로 게임의 자막입니다. 게임을 하다가 너무 작은 글자 크기 때문에 읽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갑자기 필기체가 나와서 당황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게임 접근성을 높이는 가이드라인이 보급된 후에는 게임에 사용되는 글자 폰트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게임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색맹을 가진 사람을 위해 색의 차이로 게임의 주요 정보를 표시하는 대신, 도형이나 다른 기호의 차이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보급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누리고 있는 변화입니다. 게임의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장애인을 위한 개선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흐름은 게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사회의 더 다양한 집단이 게임을 통해 대표되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게임을 통해 사회에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은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그 문화를 지키기 위해 기업의 문제를 개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팔고자 하는 상품인 게임의 이미지가 곧 기업의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소비자는 사회에서 가치를 존중받는 이미지를 소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해가 맞아떨어져 게임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게임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한국의 게임 업계는 어떻습니까? 게임 언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고민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늦은 지금이라도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바른 가치에 게임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1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IGDA리포트

레퍼런스 링크
The video game industry has a diversity problem – but it can be fixed
- The Guardian
The issue of diversity in Gaming
- Gamedesigning
Why diversity matters in the modern video games industry
- The Guardian
Exploring diversity in video games
By Francesca dl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