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어 엠블렘 if와 실패한 캐릭터 -
백야 20장에서 [파이어 엠블렘 if]의 플레이를 포기했습니다. ‘이건 도저히 못 하겠다.’ 기기에서 카트리지를 뽑아서 고이 방 한구석에 모셔두었습니다. DLC도 전부 샀는데...... 사정이 어려운 닌텐도 코리아에 기부했다고 생각하고 말아야겠습니다. 나중에 신작이 나오면 변화를 비교를 해보기 위해 [파이어 엠블렘 if]에 대해 가볍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파이어 엠블렘 if]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을 했습니다. 캐릭터의 수를 늘렸고 온라인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게임의 기본은 여전히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나가며 엔딩에 이르는 싱글 플레이 게임이지만, 온라인 게임으로 즐기기에 무리가 없을 만큼 꼼꼼하게 신경을 쓴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기지를 꾸미고, 육성한 캐릭터를 배치하여 플레이어가 꾸민 전장에서 온라인 상대와 대전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은 SRPG라는 장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플레이어는 애착을 가진 캐릭터를 육성시킬 동기를 얻게 되고, 온라인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 간의 교류라는 새로운 재미와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 [파이어 엠블렘if]에서 온라인 플레이는 상당히 공을 들였고, 그만큼의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캐릭터에서 터집니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는 캐릭터가 한번 죽으면 게임에서 이탈하는 특징 상, 여분으로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게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작 [파이어 엠블렘 각성](이후 전작으로 지칭)에서 44명이던 캐릭터가 이번 [파이어 엠블렘 if]에서는 6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캐릭터를 늘린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만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합니다. 일단 캐릭터 자체에서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파이어 엠블렘 if]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분히 최근 캐릭터 상품의 기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 만화 기타 캐릭터 상품의 원천이 되는 원작에서 다져진 캐릭터의 특징들이 이번 [파이어 엠블렘 if]에서 정말 가득 보입니다. ‘원래 이런 게임이었나?’ 싶은 당혹감이 들 정도로 게임은 다양한 캐릭터들로 플레이어의 호감을 이끌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이런 캐릭터가 나와야지만 팔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전작의 캐릭터 상품이 제법 수익이 괜찮았을까요?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파이어 엠블렘 if]의 늘어난 캐릭터는 별로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캐릭터를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소비자들이 어떤 캐릭터를 좋아해 줄까? 이것은 면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둔 상품이라기보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와중에 하나 걸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렇게 걸리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 기본은 캐릭터의 자료입니다. 캐릭터가 소비되기 위해서는 소비할 자료가 필요합니다. 캐릭터의 습관, 외모, 배경 등 캐릭터를 설명하는 다양한 자료들이 캐릭터를 구성합니다. 소비하고 싶은 것들이 모여 있는 집합체로서의 캐릭터, 그것이 현대의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팔리는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은 곧 소비자가 좋아할만한 자료들을 모아서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이어 엠블렘 if]에는 이 과정이 없습니다.
[파이어 엠플렘 if]의 캐릭터는 게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게임의 이야기가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캐릭터들도 게임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쿨 하지만 다소 덜렁대는 캐릭터가 멍청한 결정을 일삼아 그냥 멍청이가 되는가 하면, 사랑하는 동생을 너무나 아끼는 캐릭터가 사실은 얀데레(라는 기호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라서 동생을 죽이려고 합니다. 시리즈 사상 최대 규모의 대화를 자랑하는 게임이지만 그 와중에 설득력을 가진 캐릭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게임의 큰 이야기를 통해 캐릭터들이 자신의 설정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보니 얄팍한 생각으로 팔릴만한 캐릭터를 종류별로 집어넣었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듭니다. 캐릭터가 이렇다보니 이런 캐릭터들이 끌어가는 이야기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너무 개연성이 없고 바보 같아서 뭐라고 쓸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파이어 엠블렘if]는 싱글 플레이 게임이고, 게임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게임의 끝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이어 엠블렘if]의 이야기는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엉망입니다. 그나마 살릴만한 캐릭터와 온라인 기능을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임의 흐름이 망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엉망이라면 대체 왜 이야기를 봐야만 하는 걸까요? 심지어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온라인을 위해들인 수고가 사라지는데 말입니다. [파이어 엠블렘 if]가 어떤 과도기에 놓여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그저 선택을 잘못한 것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신작이 나온다면 그것을 통해 이 게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최근 기존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게임들이 캐릭터를 팔기 위해 변화를 꾀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HD 시대에 들어 대형 회사들이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또 다르게 무엇을 만들어서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이 이 오래된 시리즈에서 보였기에 팬으로서 퍽 우울합니다. 무엇이 팔리는지 감은 잡았지만, 그것이 왜 팔리는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