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찾아보기

2017. 2. 28.

Melone in the Dark




 [Melone in the Dark]는 오늘날 호러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준 명작 [어둠속에 나홀로(Alone in the dark)]를 패러디한 게임입니다. 5분 정도의 짧은 개그로 구성된 코미디 게임인데, 원작의 느낌이 물씬 묻어납니다.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했음에도, 도스 시절 특유의 자글거림과 낡은 센스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조작도 키보드로만 해야합니다!) 뭔가 기이한 아마추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있는 게임이니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무료
편의: Spooky
제작: Marius Winter
좌표: itch.io

2017. 2. 25.

Night in the Woods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히 마무리되었으니 그걸로 괜찮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인공이 친구와 끝없이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농담이 중요합니다. 게임을 해보니 알겠습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관계는 대단합니다. 가벼운 농담은 꺼내기 너무 무거운, 감추고 싶은 상처와 아픔을 나누기 위한 암시입니다. 농담과 웃음은 서로의 믿음을 확인시키고 삶의 상처를 덮어 도닥여 줍니다.

그들의 시시콜콜한 이탈도 재미있고 중요합니다. 그건 썩 아름답지 못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 동감하고, 심지어 감동하게 됩니다. 책임은 우리를 언제나 무겁게 누르고 있고, 실패의 대가는 가혹합니다. 그것은 삶에 눌려 터지지 않기 위해 튀어나온 부분입니다. 우리 또한 겪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Night in the Woods]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동감하며 나를 기억해내는 게임입니다. 게임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겪어 보았음 직한 이야기를 내 주위에 있음 직한 캐릭터로 풀어냅니다. 그것은 억지로 꾸며진 느낌이나, 엉성하게 짜 맞춘 티를 내지 않습니다. 게임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매력적인 캐릭터와 재치 있는 웃음으로 느긋이 풀어갑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승전결을 갖춘 심각한 사건이 존재합니다. 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암시와 그것이 가져올 파멸에 대한 거창한 묘사가 게임 내내 이어집니다. 나름 흥미진진하고 훌륭하게 전개되는 편이지만, 워낙 시시콜콜한 부분이 뛰어나다 보니, 심각한 부분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아 우스울 지경입니다. 필자는 귀찮아서 대충 넘겼는데, 게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칠 여유가 있다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필자는 제작자가 일부러 게임에서 심각한 사건의 분량을 줄였다고 생각합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거대한 음모와 혐오가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뜻밖에 거대한 힘을 목격하게 됩니다. 서로의 유대와 옳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이따금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한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힘에 비하면, 까짓 위기는 별거 아닙니다.

[Night in the Woods]는 현실을 용감하게 표현한 게임입니다. 흔치 않은 시도이자, 흔치 않은 성과입니다. 게임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정말 마법 같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게임의 구성을 집어넣은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훌륭한 솜씨로 그려진 그래픽과 음악 그리고 기억에 평생 남을만한 캐릭터에 비해, 게임의 구성을 빌려온 부분은 거칠고 많이 부족합니다. 플랫포머 게임이라 칭하기에는 규칙이 엉망이고, 어드벤처 게임이라기엔 퍼즐이 빈약합니다. 차라리 과감하게 생략하고, 대화와 이벤트에 더 힘썼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19.99
편의: 9시간, 쉬움
제작: Infinite Fall
좌표: 공식 홈페이지


#3월 19일 리뷰 수정

2017. 2. 23.

Sinewave Samurai




 [Sinewave Samurai]는 음계를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공방을 주고받는 진검승부를 만들어낸 게임입니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선의 굴곡을 조절하여 화면에 보이는 점과 최대한 일치시키면 되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사실 음악하고도 관계없고 칼싸움하고도 관계없는 소재이지만, 게임을 이루는 규칙과 소리, 그래픽을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낸 솜씨가 훌륭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웹
가격: 무료
편의: 5분
제작: Kai Clavier
좌표: itch.io

2017. 2. 21.

Packing Up the Rest of Your Stuff on the Last Day at Your Old Apartment




 [Packing Up the Rest of Your Stuff on the Last Day at Your Old Apartment] 긴 제목에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아파트를 떠나는 마지막 날, 남아있는 물건을 챙기다.” 제목 그대로의 게임입니다.

때는 8월의 무더운 여름, 장소는 시카고의 한 아파트. 방 안의 물건 중 가져갈 물건은 상자에 담고, 버릴 물건은 쓰레기봉투에 버리면 됩니다. 수많은 사연이 담긴 물건이 가득한 방은 소리 없이 우리에게 누군가의 일상을 들려줍니다. 이렇게 생활 일부를 게임으로 표현한 작품은 인간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정리를 끝내고 방을 나선 이후의 연출이 특히 멋지니까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해보시기 바랍니다. 짐 정리를 테트리스처럼 구성했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는데, 귀찮다면 그냥 전부 쓰레기봉투에 버리셔도 될 겁니다.(웃음)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무료(원하는 가격)
편의: 정리정돈
제작: turnfollow
좌표: itch.io


2017. 2. 18.

Reel




 [Reel]에서 플레이어는 한 할머니가 일하는 건물을 함께 탐험하게 됩니다. 탐험이라고 해도 대단히 거창하거나, 허무맹랑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약간의 놀라움과 호기심이 숨어있을 뿐입니다. 지켜보는 유령처럼 조그마한 장난을 치며, 작은 여행을 함께 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화면 끝에서 끝까지 눌러봐야 풀리는 필셀헌팅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게임은 캐릭터의 움직임이 무척 자연스럽고 연출 신선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퍼즐 풀이의 조작 방식이 다소 짜증 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최근 플레이어가 주인공 대신 동반자나 안내인 정도의 역할을 맡는 게임이 가끔 나오는데, 새로운 느낌이 참 마음에 듭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가격: 무료(원하는 가격)
편의: 픽셀헌팅 주의, 30분
제작: Nick Preston
좌표: itch.io


2017. 2. 17.

Good Smells




우리는 게임을 통해 무언가를 간접적으로 느낍니다. 현실에서 직접 경험할 수 없더라도, 게임에서 유사한 경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국수 포(pho) 향기를 풍기는 게임, [Good Smells]에서 현실과 게임의 차이를 확인해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단순한 게임입니다. 마우스를 클릭해서 이미지를 넘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여기서 게임플레이는 게임 밖, 플레이어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게임을 보고 언젠가 먹어보았던 음식의 향과 맛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는 이 게임을 해보고 생각할 겁니다. ‘이게 게임이야?’ 필자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우스 클릭으로 진행하는 규칙과 상호작용이 있고, 그 속에 학습할 내용이 있습니다. 특이한 표현을 통해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동기부여도 있습니다. 그리고 학습의 응용은 게임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물론 게임에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스스로 무엇을 게임이라고 부르는지, 어디까지 게임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플랫폼: 웹
가격: 무료
편의: 꼬르륵
제작: Cassidy AquilinoBerg
좌표: flickgame.org


2017. 2. 13.

“게이머”는 당신의 청중일 필요가 없다. “게이머”는 끝났다.



 최근 한국에 필요한 글이라 생각되어 2014년 가마수트라(Gamasutra)에 Leigh Alexander가 투고한 글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게이머라는 단어의 의미와 시대에 따른 변화를 알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글이 올라온 2014년 당시, 한창 게이머게이트가 논란이었습니다. Leigh Alexander는 당시 최전선에서 싸운 언론인입니다. 지금은 FBI의 게이머게이트 보고서를 통해, 당사자에 대한 주요 논란이 거짓이었고, 실상은 혐오범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입니다. 지금부터 읽으실 그녀의 글은 이 블로그에서 게임을 다루는 시각을 대변하는 글이라고 봐도 무관한 글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게이머”는 당신의 청중일 필요가 없다. “게이머”는 끝났다.

'Gamers' don't have to be your audience. 'Gamers' are over.

August 28, 2014 | By Leigh Alexander



 이따끔 나는 나를 게임 문화(Game culture) 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알다시피 ‘게임 문화’는 다소 부끄러운 것이다. 그것은 문화라기 보다 소비다. 반복되는 농담과 인터넷 밈으로 채워져 있는 게임 문화가 인터넷에서 날뛰고 있다.

그것은 버섯 모자를 쓴 젊은 남성이 버섯 인형을 들고, 가방을 매고, 특전 포스터를 옆구리에 낀채 줄을 서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그들은 판매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이고 열정적으로 줄을 선다. 무언가를 살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서. 그들은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쩌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긴 줄을 비추면, 그들은 왜 거기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온라인에서 '게임 문화'는 ‘게임 저널리즘의 윤리’와 사회 정의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자 선언한. 대인 관계에 서툴고, 전문 직업을 가진 삶에 대한 경험 없는 소수만의 것이다. 바른 인간으로써, 근엄한 표정으로, 비디오 게임을 위하여-!

요즘 나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알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이보다 나아져야 한다. 게이머게이트에 대한 옹호, 페미니즘 운동가에 대한 폭력, 그러한 이들을 지지하는 업계인, 이러한 것이 우리의 얼굴이고 게임이라는 비즈니스를 대표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깊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만 한다. *역주[1]

우리의 업계에 대해 세상이 알고 있는 전부는 다음과 같다. 십억 달러를 들인 전쟁 시뮬레이터, 터치스크린 캔디 중독자에 대한 머리기사. 이게 전부이다. 우리는 정말 심각하게 이보다 나아야만 한다.

‘분열’을 원치 않는다고? 미숙한 문화의 사막에서 엿 같은 행동을 일삼는 것이 괜찮은 사람과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나눈 것이 누구인가? 지금 여기 어디에 ‘논의’가 존재하는가?

좋다,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라고 해두자. 인디 게임과 업계의 선구자들을 포함한 다수는 지난 몇 주간 업계의 대화 방향에 지치고, 격노하고, 낙담했다. 실제 트롤의 편에서 글을 찍어내는 신뢰받는 언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차별주의자들에게 지면을 주지 말아야 한다. 별것도 아닌 과실을 위해 업계 전체가 비난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따금 트위터에서 게임 커뮤니티의 열성 이용자들이 혐오 집단에 엮이고는 한다. 그러면 커뮤니티는 이렇게 대응한다. "게시판에서 혐오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삭제된 내용은 커뮤니티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삭제된 바로 그 내용이 그 커뮤니티를 대변한다. 당신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그렇게 인식한다.

우리가 우리 공간의 문화를 만들거나 조율하는 것을 거부할 때, 그 공백에서 생겨난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게 바로 게임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기이하면서도 현명한 게임 외부의 선구자들은 줄곧 게임을 발견해왔다. 술집을 더 재미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아케이드 게임을 도입했고, 훌륭한 문화 교류의 장으로 머드(MUD)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업계의 큰손들은 ‘얼리어답터’를 위한 하이테크로써 게임을 팔고자 했다. 얼리어답터 = 물건에 낭비할 소득을 가진 젊은 백인 남성(dude) 말이다.

갑자기 외로운 지하실 아이들 세대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그들이 가장 큰 고객이었다고. 마케터가 그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마케터들은 빛나는 블라우스와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그들이 만드는 모든 것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들과 동일한 이해를 둔 약속된 최우수 고객에게 게임을 팔기 위해서.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 때쯤에는 단 하나의 지표만 남고 말았다. 돈을 가져라. 여자를 가져라. 총을 가져라, 더 큰 총을 가져라. 그렇게 게임은 사회의 외톨이가 되었다. 정말 축하한다. 당신은 저항으로 부터 승리하기 위해,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게임뿐이다. 대중은 무엇을 사야 할지 알려주는 것이 목적인 언론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들은 점수를 매기고 타이틀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업계와 창작자를 괴롭히기 딱 좋은 ‘팀 스포츠’에 불을 지폈다.

그 시기의 비디오 게임이 오늘날, 도덕적 공황의 희생양이 된것은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고 자본주의 미국 사회의 십 대 백인 소년들에 의해 게임에서는 극악한 일들이 저질러졌다. 그러나 게임은 그것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게임과 게이머 모두 불안에 휩싸여 있었을 뿐이다. 그 안에서는 작고 검게 스멀거리는 그것을 외부에서는 또렷이 볼 수 있었다.

2014년 오늘날 업계는 변했다. 우리는 여전히 화가 난 남성이 비디오 게임의 주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소비층의 소프트웨어 평균 매출은 해마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미 예측 가능한 소수의 브랜드만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역주[2]

과거에 시장을 이끈 이들은 오늘날 확실히 성장했다. 게임의 토양은 비옥해졌다. 다채로운 작은 게임들이 하늘거리고, 창의성이 커뮤니티의 싹을 틔운다. 단순한 소비가 아닌, 자기표현과 성숙한 지원이 쏟아진다. 그곳에는 새로운 청중과 새로운 창작자들이 살아있다. 벌레가 탈피하듯 문화와 상업 양방향으로 낡은 “게이밍(gaming)”이라는 단어를 이제 탈피할 때가 되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복잡함을 더해가는 매체는 탄산음료에 취해있는 이들의 정체성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이제 그들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그들은 그들이 더는 최우수 고객이 아니라는 사실. 그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전문적인 업계 사이트에서 조차 근시안적인 댓글들이 발견되고는 한다. 우리는 그런 콘텐츠 제작자들의 당혹스럽고 완고한 침묵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청중을 원치 않는 문자 그대로 올드 스쿨한 개발자들에게 변화는 힘든 일일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나 만화책이 아닌 다른 참고 자료를 찾아야 하다니? 어린아이와 나이든 남자. 모두에게 똑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이머의 자존심”에 밀리고 구매 안내서의 일방적인 통계에 특별 관심 장르로 분류되던 이들, 새로운 세대의 제작자와 그 팬들은 더 건강한 언어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자주적인 개발자의 인생을 쓰는 일이 되었다. 더는 협력에 목말라하는 기업에 협조하지 않는다. 게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제 “평론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게임을 사야 할지 알려주는 일 또한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지원할지 또는 누구를 지원할지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허수아비같은 ‘게임 저널리즘 윤리’는 이미 낡은 가치이다. ‘리포터’라고 불리며 광고 계약을 성사시키고 리뷰 점수를 기록하던, 우리가 우리의 청중만큼이나 약한 존재이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 게임 저널리즘 작가의 일은 창작이다.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매체에서 문화를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화론과 포용에 대한 공격의 깃발로 ‘윤리’를 목에 매고 울부짖는 트롤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제작자와 작가 모두, 게임이 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은 것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 도달하고 있다. 점차 가까워질 것이다 - 게임이 희비극, 뮤지컬, 삽화, 꿈의 세계, 가족 이야기, 민속학, 추상 미술이기를 원한다. 게임은 이제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여기에서 배제되기를 원치 않는다.

특정 집단만을 칭하는 그래서 점차 사용을 꺼리는 "게이머"라는 딱지.
그 게이머는 끝났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다.

둔한 바보, 생각 없는 과소비자, 아이처럼 구는 인터넷 논객. 그들은 내 청중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청중일 필요도 없다.
한쪽 "편"을 들거나 "논의"를 가질 필요조차 없다.

거기에 과거가 있고 여기에 현재가 있다.
바로 여기, 앞으로 미래에 당신이 즐길 역할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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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1]

원문에서는 게이머게이트를 옹호하는 미디어, 비디오 게임을 통해 패미니즘 캠페인을연 Anita Sarkeesian이 당한 폭력을 링크로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All of us should be better than this. You should be deeply questioning your life choices if this and this and this are the prominent public face your business presents to the rest of the world.] 원문에서는 관련 글을 링크하고 “이것”이라고 표현하나, 이미 삭제된 글이 다수라 의역하였습니다.

*역주[2]

‘어라? 정말 그런가?’라고 생각하실 분이 많으실 것 같아 덧붙여 말합니다.
2016년 미국의 ESA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게임을 즐기는 성비는 남 59% 여 41%입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게임을 구매하는 연령은 성별구분 없이 38세입니다. 남녀 성비가 거의 균등하며, 평균 연령이 과거보다 높아졌기 때문에 해당 세대의 사회 인식이 게임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역주+@

맙소사. 마지막 부분이 누락되어 있기에 추가합니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2017-06-10 다시 한번 매끄럽게 수정했습니다.

2017. 2. 8.

V.H.S : Video.Horror.Story




[V.H.S : Video.Horror.Story]에서 플레이어는 카메라 주파수를 조작하여 사물을 봐야 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볼 수 있습니다. 생물 또는 무생물.

보고 움직이기 위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는 한계는 손에 끈끈한 공포를 맺게 합니다.
살아남고 싶다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움직일지 전략을 짜야 합니다. 별로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악에 빠져 패드를 멋대로 움직이는 순간은 찾아올 겁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일그러지는 화면과 기분나쁜 소음이 플레이어를 자극합니다. 짧은 플레이 타임 안에 다양한 요소를 촘촘하게 잘 엮어놓은 훌륭한 호러 게임입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무료
편의: 공포, 10분
제작: 글로벌 게임 잼 출품작
좌표: itch.io

2017. 2. 6.

Takume




실패에 대해 말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생각하기 싫고, 가능하다면 잊어버리고 싶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실패를 마주 보고 극복하라는 조언은 보통 사정을 모르는 공허한 헛소리입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직접 찔러서 터트리는 대신,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 짧은 설화 같은 게임 [Takume]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게임입니다. 매력적인 픽셀아트와 음악을 즐기시며, 조심스레 짧은 여정을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의 갑작스러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엔딩이 기억에 남는 게임입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리눅스, 안드로이드
가격: 원하는 가격
편의: 10분, 쉬움
제작: Stephan Hövelbrinks
좌표: itch.io


2017. 2. 4.

Everything is going to be ok




Page24 아이콘을 클릭하자 대충 그려진 토끼와 고양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848명이 시청 중) 토끼는 용암에 끓고 있는 신세를 한탄하고, 고양이는 격려의 응원을 외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희망이 남아있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리고 고양이는 용암에 가라앉아 죽습니다.


이제는 쓰이지 않는 낡아빠진 90년대 인터넷 이미지와 박물관에 들어가면 딱 좋을 법한 영상 클립으로 게임을 만드는 제작자 Nathalie Lawhead의 신작 [Everything is going to be ok]는 많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세상은 이제 끝났습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고 내 신세는 비참합니다. 그 와중에 나보다 영향력 있는 것들은 끝없이 (나에게)공허한 희망을 외칩니다. 아직 괜찮다고, 멀쩡하다고 말입니다. 나는 죽겠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현실에 냉소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끝났어, 나는 좋아질 수 없어, 이렇게 된 거 세상이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국경을 막론하고 어느 인터넷 사이트를 가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ok]는 특유의 감각으로 냉소하는 인터넷을 그려냅니다. 귀여운 캐릭터로 잔뜩 일그러진 모습으로, 기억의 한쪽이 비꼬아놓은 웃음으로 전달됩니다. 외롭고 출구도 답도 없는 것들을 그려내지만, 생각보다 숨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보고 웃고 있으면 묘하게 정말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아서 오히려 힘이 납니다. 스케일 크게 인터넷 전체로 드립을 치는 게임이라고 할 만합니다.

유머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이 게임에도 그런 힘이 있습니다.
돌아보기 싫은 현실을 돌아보고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플랫폼: 윈도우, 맥
가격: $1
편의: This is internet
제작: Nathalie Lawhead (홈페이지 들어가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좌표: itch.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