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 종교는 마음의 쉼터. 익숙한 표어입니다. [RedCandleGames]의 신작 호러 게임 [환원(還願)(Devotion)]은 그 표어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게임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아니오”를 알고 있습니다. 단지 손톱에 박힌 가시 같아 차마 꺼내지 못할 뿐입니다.
[환원]의 주요 무대는 편안하고 안락한 집입니다. 1980년대 대만에 있을법한 낡은 빌라. 거실과 주방이 있고 거실에서 시작되는 좁은 복도를 따라 화장실과 방이 둘 있는 구조입니다. 현관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면 소파와 TV가 보입니다. 소파 뒤쪽 벽에는 큰 가족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주방은 거실에서 문 없는 문을 통과해 들어갑니다. 주방에는 작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고 환기를 위해 불투명한 유리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실에 나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방이 나 있습니다. 복도 입구에 작은 방이 있고 굽어 있는 통로 중간에 화장실 그리고 통로 끝에 큰 방이 있습니다. 화장실은 작지만 평범합니다.(욕조도 있습니다!) 큰방과 작은방에는 가족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가구와 소품이 가득합니다. [환원]의 집은 미려한 그래픽으로 현장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대만의 낯섦과 익숙한 집의 풍경이 겹치는 독특한 경험을 줍니다.
[환원]의 집은 2014년 데모만 공개된 후 사라진 전설의 호러 게임 [P.T.]의 장치로 완성됩니다. 게임이 시작되고 플레이어가 집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목재 가림막이 눈 앞을 가립니다. 가림막을 지나 거실에 들어서면 주위는 온통 시뻘건 조명에 물들어 있고 TV에서는 하얀 노이즈가 지글거리며 끓습니다. 쇼파위의 가족사진은 불탄 것처럼 일그러져 있고 주방에서는 썩은 악취가 풍깁니다. 좁은 복도는 지저분한 얼룩과 낙서로 가득하고 방은 모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복도를 되돌아 거실로 돌아오면 그곳은 이미 거실이 아닌 낯선 장소입니다. [P.T.]는 좁은 통로로 연결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협소한 공간의 공포와 낯선 미지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연결한 게임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환원]은 미려하게 표현한 집을 통해 익숙한 소품의 낮선 변화까지 체감할 수 있게 발전시켰습니다. 플레이어는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집을 뒤지며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집을 오갈 때마다 집은 광기에 찌들어 갑니다.
[환원]의 사건은 광기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입니다. 사건 사이는 퍼즐로 막혀있고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집을 관찰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호러 게임에 익숙한 깜작 상자 연출을 포함한 굉장히 다채로운 연출을 보여줍니다. 호러 장르뿐만이 아니라 걷는 게임에서 빌려온 연출도 볼 수 있습니다. 호러 게임에 중요한 음향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시각이 아닌 소리가 플레이어게 길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퍼즐의 난이도가 너무 쉽게 느껴지거나 퍼즐의 이해도에 따라 동선이 늘어나 게임이 늘어질 수 있는것이 단점이지만 그것을 통해 준 신선함과 비교해보면 이해할 만한 수준입니다.
특히 플레이어를 캐릭터에 이입시키기 위해 호러 게임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도구를 이용해 엉뚱한 시도를 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이 도구는 게임 내내 귀를 채우는 불편한 소음과 비명, 섬뜩하고 끔찍한 비주얼과 완전 상반됩니다. 이 도구를 사용한 지점부터 게임은 의도적으로 플레이어로부터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을 끌어내려고 시도합니다. 강력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쾌감을 위해 호러 게임을 택한다면 이 지점에서 크게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신 게임이 의도한 공포가 아닌 여러 복잡한 감정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어주는 한편 게임에 짙게 깔린 공포와 줄곧 엎치락뒤치락하며 게임만의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중반까지가 가족의 이야기라면 게임은 후반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환원]은 종교에 대해 단편적인 감상을 말하는 대신, 종교에 대해 비난할 것은 비난하는 한편 종교의 교리는 이야기에 활용합니다. 이 게임에서 종교는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앞서 언급한 게임이 이끌고자 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게임의 메세지를 정리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민감한 주제이니만큼 조심스럽게 다룬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게임이 다루는 다른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생각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모호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명확한 결말이 주는 시원함을 원한다면 다른 게임을 선택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또한 게임의 후반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게임이 특정 등장인물을 다루는 관점에 불만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필자도 그런 감상을 느꼈으나 게임이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만한 설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난 상처는 아물어야 합니다. [환원]을 만든 이들도 가시를 꺼내는 시도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게임은 그에 대해 퍽 인상적인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엔딩이지만 [RedCandleGames]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엔딩임에는 확실합니다. 가시를 시원하게 뽑지 못했더라도 말입니다. 애초에 사회문제는 개인이나 작은 집단이 해답을 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로 [RedCandleGames]를 탓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다루기 어려운 주제로 이만큼 완성도 높은 호러 게임을 만들고 호러 게임에 다양한 감정을 끌어들여 독특한 결실을 맺은 시도를 칭찬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보았을 사회문제. [환원]은 그 사회문제를 독특한 호러 게임으로 빗어낸 수작입니다. 이 게임이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왔고 또 한동안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이 내심 분합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17,500
편의: 2시간, 쉬움
제작: RedCandleGames
좌표: St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