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의 성차별과 괴롭힘은 유명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 경험자가 말한다
원문: Sexism and harassment in the games industry isn't just about big names: the entire culture must change
저자: Emma Kent
첫 고발이 휩쓸고 지나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게임업계는 두 번째 미투 물결을 겪고 있다. 충격적인 규모의 물결이다. 이스포츠, 스트리밍 플랫폼, 게임 개발, 게임 언론 등 보이는 곳마다 오랜 고통과 침묵을 안고 있던 성차별과 괴롭힘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권력을 남용한 사람 중 일부가 이제야 행동에 따른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
고발 일부는 충격적이지만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과 논 바이너리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차별과 괴롭힘은 업계에 만연해 있고,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함은 물론 친구와 직업을 잃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유명인을 가해자를 고발한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권력을 지닌 가해자를 업계에서 쫓아내는 일은 업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반드시 지속하여야 한다. 한편 대중매체의 경향성도 유의해야 한다. 큰 이름을 가진 포식자는 노릴 줄 알지만 정작 그 포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는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의 성폭력과 괴롭힘은 고질적인 문제이며 드문 일이 아니다. 게임과 엮인 모든 젊은 여성은 각각 경험한 바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나 또한 업계에 들어온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신체적인 성희롱을 경험했다. 처음 E3에 참가한 그해 말, 누군가가 나에게 고용될 기회를 줄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자고 말을 꺼냈다. 이어 나는 불쾌하고 부적절한 메시지를 받았다. 업계 신입이자 젊은 여성이었던 나는(난생처음 당한 일이었고 심지어 인턴이었다) 도움을 받을 지인도 지원도 부족했다. 업계에서 걱정거리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경력에 해를 끼칠까 두려워했다. 당시 나는 약했고, 가해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줄곧 고통받아왔다. 내가 겪은 감정적인 고통은 어떻게 서술해도 과장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의심과 공포 그리고 사회의 시선 때문에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건 후 몇 달이 지나도록 친부모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핑계를 댔다. “과민반응(overreacting)”이라며 자신을 탓했다. 내 이기심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가 또 누구를 괴롭힐지 몰라 걱정했고, 내 침묵에 굉장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미투 운동이 공공 담론에 등장할 때마다, 나는 앞으로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몸살이 날 정도로 고민했다.
마침내 나는 말하기로 했다. 나를 성적으로 괴롭힌 남자는 행동에 대가를 치렀다. 용감한 생존자들에 힘입어 나는 내 목소리를 생존자들의 경험에 보탤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의 짐을 다소 덜 수 있었다. 이러한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게임업계에는 가해를 조장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업계의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여기 근본적이고 거대한 문제가 있다. 성차별과 직장 내 학대. 이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임업계의 성차별과 직장 내 학대는 게임업계의 구조와 얽혀 있다. 게임업계는 취직 문턱이 높고 경력자의 추천이 매우 중요하며 고용이 불안정한 저소득 업종이 많다. (인디 개발자나 프리랜서 또는 최근에 해직당한 이에게 물어보라) 종종 게임을 향한 열정이 악용되기도 한다. 가해자는 이러한 업계의 불안전성에서 권력을 얻으며 직간접적으로 피해자의 직업과 생계를 위협한다.
이렇게 굳어진 경제적인 문제는 어디서 부 터 풀어야 할까? 공개적인 토론과 노조 활동 그리고 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업계는 해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동안 우리는 업계의 권력 구조를 살펴보고, 가장 약한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지원을 위해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살펴보도록 하자.
나를 포함한 생존자의 경험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학대나 성희롱을 겪는 것은 주로 업계에 막 들어온 신입이다. 이들은 인맥을 만들지 못해 조직에서 고립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으므로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며, 경쟁이 심한 업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들의 생계를 좌우할 수 있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내 경험을 통해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가해자가 업계의 과음 문화를 이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게임업계는 괴롭힘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과음이다. 게임업계에는 관계 형성을 핑계로 한도를 넘는 음주를 권장하는 문화가 있다. 거의 대다수의 교류 행사가 술을 중심으로 짜여있으며, 그곳에서 최악의 행위가 일어난다. 취기의 즐거움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장 무력한 순간을 노릴 수 있게 만들며, 가해자가 “만취 상태” 였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게 만든다. (애초에 핑계가 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무엇보다 심각한 사실은 인맥 형성과 승진을 빌미로 업계가 신입의 행사 참여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해로운 사례가 모여 해로운 결과를 만드는 셈이다.
한시라도 빨리 행사에서 음주를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음주를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절제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환영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경험했던 가상공간 행사도 충분히 선택 가능한 대안이다. 가상공간을 이용한 행사는 더 안전하고 열려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업계의 음주 문화의 개혁을 위해 이벤트 기획자뿐만이 아니라, 문제에 일조한 업계 전체가 고민해야만 한다. 과음을 기준으로 “전설”적인 행사를 평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공적인 행사에서 과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남녀대비 낮은 여성 종사자 수와 여성의 낮은 급여 또한 개선해야 할 것이다. IGDA의 2019년 개발자 만족도 조사에 따른 업계의 성비는 남성이 71%, 여성이 24% 그리고 논 바이너리가 3%(별도 질문에 따라 트레스젠더로 식별된 4%)이다. 그리고 지난해 영국의 성별 임금 격차 보고서를 보면 19개의 대형 게임 관련 기업의 평균 임금 격차가 18.8%에 달했다. 게임 언론도 성별 격차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유로 게이머가 지적 당한 것과 같이 게임 언론에서 상위 관리직에 진출하는 여성은 극히 소수이다.
이는 직업 기회의 평등은 물론 더 다양한 직업 환경을 통해 가해에 취약한 이들을 지원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실제로 내가 재직 중인 유로 게이머에서 나는 지난 2년간 여성 직원이 늘어남에 따라 문제가 더 자주 공론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업계에서 일어났던 미투 운동에 힘입어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도울 수 있었다. 이처럼 더 많은 여성의 업계 참여는 고립으로 인한 위험의 감소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경험의 공유 기회를 제공한다. 라이엇과 같은 일부 기업의 해로운 작업 환경은 여성의 부족, 특히 여성 리더쉽의 부제가 큰 원인이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급여 격차를 보여주는 데이터는 여성의 동일노동 저임금 현상은 물론, 고위직 여성의 결여가 기업 문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작년 보고에서 다룬 바 있듯, 상위직으로 진출하기 위한 여성의 인재 수가 부족한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업계가 여성을 교육하는 것을 게을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업계는 여성이 상위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은 신체적, 정신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는 직원을 지원할 방안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고발을 위한 보고 자료를 접하기 쉽게 만드는 간단한 일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뚜렷하고 투명한 인사 정책을 구성하여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직원이 행동에 유의하고 학대를 자각할 수 있게 하는 기업의 직원 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업이 성희롱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직원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랜 기간 문제가 되어 온 것이 또 하나 있다.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가 안고 있는 유해성 문제이다. 기업과 플랫폼이 커뮤니티 또는 플레이어의 해로운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지 않는다면, 가해자가 거듭 책임에서 벗어나는 해로운 환경이 조성된다. 예로 2018년 [팀 포트리스2]의 커뮤니티를 보자. 온라인에서 학대를 경험한 이들은 밸브가 커뮤니티를 관리하지 못해서 학대가 커뮤니티에서 통용되었다고 증언한다. (이는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괴롭힘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018년과 2019년 조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보자. 조사에 따르면 여성 게이머 3명 중 1명이 남성 게이머로부터 학대를 경험했으며, 14%가 강간 위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괴롭힘과 학대가 일상이 되고, 여성과 소수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가 넓게 퍼진 결과 게임업계와 온라인 양쪽에서 학대가 빈발하고 있다. 기업에 자사의 게임 커뮤니티에 이토록 무관심하다면, 기업 내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심해 봐야 한다.
게임 커뮤니티의 유해성은 단일 기업의 관리를 벗어난 다양한 플랫폼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해결이 굉장히 어렵다. 다행히 많은 배급사와 개발자가 유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Fair Play Alliance같은 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작은 변화가 있다. 우리는 기업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행동을 고발해야만 한다. 언젠가 업계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대중의 분노를 우려한 결과 스튜디오에서 일어난 부적절한 발언을 논쟁 없이 넘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어색하더라도 선을 넘은 행동에 대해서는 선을 넘었다고 경고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쁜 행동을 막을 수 있다. 잘못된 행동을 일삼는 이들을 막는 방법은 “사소한”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는 것이다.
학대와 괴롭힘을 둘러싼 편견을 줄여나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편견을 줄여나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생존자의 경험을 경청하고 우리의 일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동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괴롭힘당했을 때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교육해야 한다. 나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을 겪어야 했고,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생존자가 나서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왜 인사과나 경찰에 가해자를 정식으로 신고하기 어려울까? 간혹 생존자들이 법적인 절차를 통해 가해자를 고발하는 대신, 온라인에서 고발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인사과가 존재하지 않는 독립 개발자이거나, 가해자가 좁은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면? 이때 가해자를 온라인에 고발하는 것은 마지못해 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가해자를 온라인에 고발하는 일은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고, 업계에서 이룬 업적이 아닌 “그때 고발했던 사람”으로 기억될 위험을 안고 있다. 심지어 소송에 시달릴 위험은 물론 온라인을 통한 또 다른 괴롭힘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생존자를 신용하기 위해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다수의 연구가 거짓 고발은 극히 소수임을 증명함에 주목하자. 2012년 영국 법무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1149건의 강간 사건 중 거짓 고발은 3% 미만이었다. 최근 사회의 인식 변화 덕분에 생존자의 고발은 어느 때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작년 통계에 따르면 공격자가 법정에 서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확률은 10년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가디언의 보도를 참고) 미투 운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법재판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처벌받아야 할 이를 처벌하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와 필요한 법이 부재한 현실을 지적하는 운동이다. 미투 운동은 문제의 규모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당국과 기업 그리고 업계 전체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다.
글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영역이 있다. 필자의 경험에 근거해서 작성된 글이기 때문에 인종차별과 동성애, 트랜스 혐오가 뒤섞인 복잡한 성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은 미처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남성 역시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남성 우월주의적인 문화 때문에 “약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현실을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들어 알고 있다. 이스포츠와 스트리밍 커뮤니티 또한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창작자와 팬 간의 권력 문제와 책임 소재의 불투명함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유명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유명한 가해자를 처벌한 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업계와 조직 모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기적인 변화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끝으로 업계에서 성폭행이나 괴롭힘을 당했지만 나서지 못하고 남겨진 이들에게 조언을 남기고 싶다. 비공개적인 네트워크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첫걸음이었다.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말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현실을 재인식하고 마음의 짐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내 이야기를 듣고 “아니, 그건 잘못된 일이야.”라고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다. 당신의 경험이 타인의 경험에 비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당신의 경험을 그렇게 덮어버리지 말자.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쓴 뒤에 닥쳐올 일이 두렵다. 누군가에게 나설 용기를 주고, 업계 문화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할지라도 두렵다. 그게 바로 성폭행이다.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두 선택 모두 끔찍하지만, 둘 중 한 가지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필자는 말했다. 감내할만한 선택이었다. 상처를 잊을 수 없지만 그 무엇도 잊게 해주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