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찾아보기

2019. 12. 9.

게임과 다양성



 문득 TV를 보면 드라마가 사회 문제를 빠르게 잡아내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영화와 소설 또한 한국 사회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민감하게 잡아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국의 게임은 그 반대입니다. 최근 한국 게임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역행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IGC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게임]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열린 강연은 관계자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집단을 소비자로 잡고 그들을 위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집단이 사회에서 무엇을 대표하는지 그리고 게임이 그것을 대표하게 될 때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입니다.




 미국 게임 업계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미국 사회와 시장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SA에서 2006년 미국 게임 시장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게임을 즐기는 전체 인구 중 18세 이상의 성인이 69%로 절반을 넘어섰으며, 게임을 즐기는 성비 또한 여성 38%, 남성 62%로 여성의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보고서는 “17세 이하 남성보다(23%) 18세 이상의 여성이(30%) 게임을 즐기는 인구에서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라고 변화한 시장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게임의 제작과 홍보 비용은 커졌지만 게임의 판매 단가를 높이는 것은 소비자의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업계는 게임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구매할 만한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 젊은 백인 남성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게이머게이트라는 이름으로 테러에 가까운 범죄를 일으켰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인과관계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페미니즘 강연이 예약된 대학교에 테러 예고를 했고, 여성 게임 개발자에게 강간과 살인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 기록은 FBI의 수사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게임 업계가 그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상품이 소비자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시대에 게임이 그들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게임 업계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했고 게임 시장은 계속해서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한 오늘날의 게임은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한국에서 말하는 게임의 다양성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게임의 다양성이 게임 장르에 한정되어 쓰이고 있으므로 혼란을 피하고자 먼저 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다양성(Diversity)이란 개인이 가진 고유의 특징(국가, 종교, 성, 이념 등)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어로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양한 개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변화를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은 게임에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변화는 게임이 대표하는 개인의 다양화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게임 주인공 캐릭터의 다수는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최근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많이 다양해졌습니다.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게임은 이제 특별하지 않고, 주요 인물이 여성인 AAA 게임도 어색하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종과 국가에 대한 이해도 많이 높아져서 [레인보우 식스 시즈] 같은 게임에서는 오퍼레이터별로 꽤 설득력 있는 설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심즈 4]는 성별에 따른 캐릭터 설정 제한을 크게 줄였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다양한 체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에서 제작된 게임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판매하는 게임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는 변화입니다. 최근 닌텐도의 [동물의 숲] 시리즈는 신작에서 플레이어 캐릭터의 피부색을 선택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양성은 게임 개발 환경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UBIsoft]의 [어쎄신 크리드] 시리즈는 시작 화면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게임이 대표하는 개인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다양한 개인이 게임 제작에 참여한 것입니다. 또한, 게임 업계는 꾸준히 여성 개발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위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14년 창설된 비영리 단체인 [Girls Make Games]는 8세에서 18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게임 제작과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IGA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종사자의 비율은 2005년 11, 5%에서 2015년 22%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1

언론에서도 게임 업계의 다양성과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권 문제를 꾸준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의 성차별 사내 문화와 크런치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가 최근 크게 늘었습니다. 게임을 바라보는 언론이 업계의 문제를 지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인권 운동 덕분에 사회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따라서 게임의 다양성이 업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공론화와 해결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게임의 방향성이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그 흐름이 다시 업계를 향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존에는 게임에서 배제되어 있던 집단이 게임에 목소리를 내게 되고 그 목소리에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 또한 이미지 개선을 통해 다양한 집단에서 인재를 모으는 것이 업계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다양성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의 다양성 추구는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도 이롭게 작용합니다. 게임의 다양성이 게임의 큰 흐름이 된 이후 게임이 신경 쓰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고치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게임의 접근성입니다. 게임의 접근성에 대해 개발자를 위한 게임 접근성 가이드를 제공하는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 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접근성은 다양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창작물을 접하거나 즐기지 못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벽을 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접근성은 게임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쉬운 예가 바로 게임의 자막입니다. 게임을 하다가 너무 작은 글자 크기 때문에 읽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갑자기 필기체가 나와서 당황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게임 접근성을 높이는 가이드라인이 보급된 후에는 게임에 사용되는 글자 폰트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게임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색맹을 가진 사람을 위해 색의 차이로 게임의 주요 정보를 표시하는 대신, 도형이나 다른 기호의 차이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보급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누리고 있는 변화입니다. 게임의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장애인을 위한 개선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흐름은 게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사회의 더 다양한 집단이 게임을 통해 대표되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게임을 통해 사회에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은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그 문화를 지키기 위해 기업의 문제를 개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팔고자 하는 상품인 게임의 이미지가 곧 기업의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소비자는 사회에서 가치를 존중받는 이미지를 소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해가 맞아떨어져 게임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게임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한국의 게임 업계는 어떻습니까? 게임 언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고민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늦은 지금이라도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바른 가치에 게임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1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IGDA리포트

레퍼런스 링크
The video game industry has a diversity problem – but it can be fixed
- The Guardian
The issue of diversity in Gaming
- Gamedesigning
Why diversity matters in the modern video games industry
- The Guardian
Exploring diversity in video games
By Francesca dlss

2019. 11. 28.

Disco Elysium





느닷없이 등장해서 필자의 올해의 게임이 된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에서 플레이어는 형사가 되어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누아르 추리물에 강한 영향을 받은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현실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과 비슷한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합니다. 게임의 진행은 누아르 물 하면 떠오르는 수사 과정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면 질문을 통해 사건의 단서를 얻고, 구석구석 뭐라도 있지 않을까 발품을 팔고 다니는 구성입니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형사가 되어볼 수 있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24종류의 스킬이 있습니다. 이 스킬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고 자아를 가지고 플레이어와 치고받고 싸웁니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행동할 때마다 스킬 체크가 이루어집니다. 체력에 관한 스킬을 선호했다면 몸으로 들이받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며, 머리를 쓰는 스킬을 선호했다면 말로 풀어가는 상황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러한 이색적인 스킬 시스템은 게임의 설정을 통해 위화감 없이 플레이어에게 전달됩니다.

캐릭터 만들기에는 정치와 사상도 포함됩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현실과 아주 가까운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보이는 인터페이스 구석에 처박혀 읽어주길 바라는 설정이 아닙니다. 게임의 세계와 그곳에 있는 인물에 녹아들어 있는 매끄럽고 깊이 있는 역사와 정치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과(NPC) 대화를 하면서 원하는 성향의 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향은 플레이어의 능력치에 변화를 주거나 소소한 특전을 주는 “생각(Thought)”이라는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있어서 플레이어의 역할극을 강조해 줍니다. (간단하게 Perk를 생각하면 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디스코 엘리시움]의 NPC는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이들은 단순한 퀘스트 시작 지점이 아니라 퍼즐 그 자체입니다. 현실과 유사한 정치와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NPC는 현실의 인물과 유사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NPC는 선과 악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에서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입니다. 아름답게 주조된 고리퍼즐(Huzzle)처럼 게임 속 캐릭터들은 풀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합니다.

역사, 정치, 사상을 아우르는 게임의 깊이는 텍스트를 통해 완성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경험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이루어낸 최고의 성과입니다. 감각적인 스킬에 투자했다면 게임은 감정을 느끼는 멜로물이 되고 육체에 올인했다면 몸으로 부딪치는 누아르 물이 됩니다. 선택에 따라 제공되는 텍스트가 다를 뿐임에도 그런 차이를 만들 정도로 이 게임의 텍스트는 훌륭합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도 푹 빠져들 정도입니다.

텍스트도 훌륭하지만, 그래픽과 음악도 결코 떨어지는 수준은 아닙니다. NPC의 음성 더빙은 캐릭터에 색을 더해주고 배경음악은 게임의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더빙 또한 인상적인데 그 부분은 설명 대신 직접 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외형을 꾸밀 수 있는 선택지도 제법 폭넓게 준비되어 있어서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알맞은 모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이 음악에 꽤 자신이 있었는지 음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퀘스트도 있는데 필자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면 인상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퀘스트는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논리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임무와 멋대로 뛰쳐나가는 사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게임의 독특한 흐름은 정말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고 다시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텍스트로 복선을 깔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그래픽과 음악으로 절정을 찍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연출은 다른 텍스트 위주의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만족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디스코 엘리시움]을 추리 게임으로 즐긴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범인을 잡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큰 흐름은 플레이어의 추리와 무관하게 항상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플레이어가 퀘스트의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매우 적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정의에 따라 승리하는 게임을 상상했다면 이 게임의 결말에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추리물로 보자면 정말 엉터리입니다.

물론 그런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플레이어에게 실패와 패배를 경험시키고 싶어 합니다.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 이 게임은 극단적으로 게임 오버를 택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가 실패와 패배를 안고 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러 실패해볼 가치가 있을 만큼 실패에 따른 결과가 재미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 게임은 가상 현실의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겪은 실패와 패배를 치료하려 합니다.

플레이어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실패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사상을 전파하고 심각한 역사를 비웃고 사람을 속이고 사람에게 속으면서 게임의 끝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그 모든 실패에 대해 인상 깊은 감상을 남깁니다. 그 감상은 게임이 플레이어라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 이유와도 일치합니다. 게임은 게임을 이용해 메시지를 던집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끝에 받게 될 현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플랫폼: 윈도우
가격: \41,000
편의: 데킬라 선셋
제작: ZA/UM
좌표: 스팀 스토어 페이지

2019. 10. 29.

Allow Natural Death


Allow Natural Death

Jenn Frank 지음. 2012년 11월 29일



정확히 6년 전 나는 토이저러스에서 닌텐도 위(Wii)를 구입해서 설치했다. (그 박스는 여전히 나와 소녀시절을 함께한 침실 바닥에 남아있다. 이듬해 11월 내가 떠난 곳이기도 하다.)

“상상했어요? 알(Al)?”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 생전에 이런게 될거라고?” 내가 하는 (에헴)볼링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위(Wii)의 “페이스메이커” 경고를 보았다.* 바로 양아버지에게 명령하듯 외쳤다. “나가요! 나가세요!” 감사하게도 나는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역자주: 닌텐도 위는 페이스메이커나 기타 의료기기와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안내로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있다. 

———

나는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게임 리뷰로 돈을 버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머니를 더 짜증나게 하기 위함이 컸다. 일생동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해주는 사람은 곧 꾸준한 반항심을 위한 최고의 동기가 되기 마련이다.

변화는 2월 “크리쳐스(Creatures)”에 대해 칼럼을 쓴 때에 일어났다. 그녀가 결국 이해 선언을 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내가 너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

“아뇨.” 나는 답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환희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짖굳게 만족해 하고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조용히 서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따금 프리렌서가 쓰는 모든 글은 누군가를 향한 러브레터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야 한다. 크리쳐스에 대한 칼럼은 내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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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보다 더 심하게 울어본 기억이 없다. 내게 음악을 틀라고 말한 그 순간. 그러니까... 무슨일이 있던간에 집을 정리해 두라고 의사가 말했다. 다가온 임종을 누군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음악을 틀려던 그 순간 나는 떠올렸다. 거실에 있는 CD 플레이어를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엎친데 덥친다더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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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시키지 않음(do not resuscitate)” DNR이라는 용어를 AND로 바꾸자는 논의는 진작부터 있었다. DNR이라는 말이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자연사를 받아들이기(allow natural death)”는 한결 좋게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은 가족의 소망을 늘 무시한답니다” (내가 가장 덜 좋아하던)의사가 말했다.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나는 분노에 찬 연설을 쏟아냈다. 세상 사람들이 죽고 싶은 기분을 느낄 때 죽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거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친척이 의사에게 말했다.

“글쎄,”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여긴 뷔페가 아니니까.”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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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1993년에 나를 입양했지만 나는 그보다 이른 1989년부터 그녀와 살기 시작했다.

어릴적 나는 바늘을 무서워 했기 때문에 처음 예방접종을 받을 때에는 의사가 나를 붙잡기 위해 온 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나는 줄곧 의사가 무서웠다.

그 이후 어머니와 나는 방법을 하나 고안해 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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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워진 집중치료실에 앉아 비디오 게임에 대해 고심했다.
가능한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점을 생각해 보았다.

정말 더러운 밤. 나는 내가 게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내가 피해자에게 최고의 죽음을 내려야 하는 목표를 지닌 주인공인, 어찌된 일인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는 게임.

9월 23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간호사가 어머니의 채액을 교환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나는 긴장한 상태에서 곤두박질 친 바이탈 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 채액이 기계에 연결되자 모니터에 그래프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얼마나 “살아남아” 있는지 굽게 그리고 곧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추측할 권한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죽음을 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간섭해서 찌른 상흔이 지랄맞은 상황을 부추기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어머니의 또렷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눈동자를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중얼거리듯 그녀에게 말했다. “일어나셨네요. 잠깐만요.” 나는 토트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가지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었어요.” 그녀에게 말하며 다가가 침대에 앉았다. “제가 성우를 담당한 게임 기억 하세요? 그거 나왔어요. 잠깐요. 지금 보여드릴께요.”

복합적인 장기 파손을 입은 사람이 의식을 회복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뇌까지 산소가 도착하기 때문이다. 난 정말 중요한 순간을 사소하게 쓰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꼴좀 보라지. 눈 앞에서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 하기를 원할 뿐이라니. 세상에, 신이시여. 얼마나 이기적인거야.

아이폰으로 게임을 시연해 보였다. 그녀를 둘러싼 기계의 소음 사이에서 녹음된 내 작은 목소리를 구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추가 더빙을 시작했다. “라인,” 그녀에게 설명했다. “들리세요? 트라이앵글.”

내 게임은 금방 끝났다. “음, 그래요. 끝났네요.” 나는 폰을 집어넣고 다른걸 꺼내려고 뒤적거렸다. “제 글 기억하세요? 제 글이 잡지에 실렸어요. 음, 8월에요.”

내가 그녀의 앞에 소책자를 펼쳐 보이자 그녀는 책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책을 가져가 손에 들더니 표지를 엄지속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을 침대 한견에 내려 놓은 후 내 손을 찾아 향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꼭 쥐었다.

힘을 주어 손을 쥐고. 다시 힘을 주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손을 쥐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뚜렷한 의미를 담은 젖은 눈으로. 산소호흡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눈썹만큼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울때마다 하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준 상처와 슬픔에 대해. 눈을 내려 꼭 쥐고 있는 우리의 손을 바라보았다. 몸을 굽혀 그 손에 몸을 묻고 울었다.

의자에서 몸을 때 침대로 무너지듯 무릅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산소 호흡기로 가려져 입을 맞출 공간조차 없었기에.

———

비슷한 시각에 텍사스의 다른 한쪽에서는 테리가 내가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던 게임의 마지막 부분을 시연하고 있었다. [슈퍼 헥사곤] 테리가 만든 게임이었고 테리는 누구보다 그 게임을 잘 했다.

핵사곤은 중요한 게임이다. 처음 테리를 만났을 때 나는 테리를 새워놓고 그의 게임이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게임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기다림과 움직임 그리고 기회를 향해 커서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행운과 불은 그리고 기억과 결단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정말 좋네요.” 테리는 기쁜 듯 내게 말했다.

최근 엣지(Edge)의 Jason Killingsworth은 테리에게 [슈퍼 헥사곤]이 죽음을 암시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 스포일러! - 느려지던 세계가 열리고 커서의 삶을 되돌아 본 결과 그 이상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글쎄, 나는 죽음말고 설명할 다른게 떠오르지 않는다.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보지 못할 그것을 나는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코 와이어과 튜브를 거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더 많은 튜브를 연결할 작정이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내가 오래 생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 일생을 바치는걸 상상해 보았다. 그녀와 그 방에서 그렇게 지내는 기분을 그려보려 했다.

나는 친지중 한명이 포기한채로 의사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묻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덜 좋아하던 의사였다.

“손을 잡아주세요.” 의사가 말했다. “기억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피부가요.”

———

나는 20분 안에 명령대신 부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당시에 울지 않았다. 대신 내 어리석은 판단력의 깊이를 고민했다. 나는 내가 아닌 그녀를 위해 빌었다. 결정권을 가진 단 하나의 딸을 둔 엄마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내가 쓴 부고는 바보같았다. 그녀를 명예롭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도할 뿐이었다. 지금과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녀의 일생에 대해 썻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녀가 테니스를 좋아했다는 식으로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녀를 구글에 검색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어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같다.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무도 잡지 않아요.” 그녀의 멍청함에 답했다.

그리고 나는 듣게되었다. 나는 그녀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자연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추락하는 동안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한게 아니야. 어떻게 멈추지?”

나는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대신 소리칠 뿐이었다. “이게 당신들이 말한 편안함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놓아드릴께요.” 병원은 당신에게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향해 그 말을 하라고 시킬 것이다. 그녀의 심장이 도통 정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그 말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 내 말을 듣지 못해 다행이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등을 보인채로 두 손만 등 뒤로 넘겨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정말 하고 싶던 말을 했다. 방에 남아있던 이들에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