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에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2]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인터넷에서 생긴 여론에 힘입어 게임에 대해 잘 다루지 않는 주요 언론까지 해당 게임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이렇게 일이 커졌을까요?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2] 문제의 시작은 랜덤 박스입니다. (해외에서는 lootbox라고 부릅니다) 현금을 주고 사는 상자에서 캐릭터와 능력을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이 꽤 강력해서 게임에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더불어 현금을 쓰지 않고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재화를 통해 캐릭터를 해제하려면 한 캐릭터에 대략 40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F2P 게임이 아닌 AAA 게임의 가격(한화로 대략 6만 원)을 내고 산 게임이 추가로 돈을 내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겁니다.
따라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반발과 불매 운동이 일어났고, 게임을 유통한 [EA]에서는 급하게 패치를 통해 캐릭터 해제에 필요한 재화를 낮추었습니다. 그러나 게임에서 얻는 재화 또한 같은 비율로 낮추는 얄팍한 수를 쓰는 바람에 여론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각국의 소비자들은 접촉이 가능한 국회의원과 단체에 청원을 넣었고, 그것이 계속해서 기사화되었습니다.
정부와 단체에 들어간 청원은 게임의 판매 방식이 도박이기 때문에 도박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와 단체는 게임의 판매 방식을 도박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벨기에의 *도박 협회(Gaming Commission)에서 게임에 사용된 판매 방식은 일부 도박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게임이 미성년자에게 판매 가능한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다시 이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벨기에의 도박 협회가 어떤 해석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문제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랜덤 박스는 도박일까요?
답은 도박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랜덤 박스를 우리는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법으로써 도박으로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법이 정의하는 도박과 일상 회화에서 말하는 도박의 의미가 다소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에서 정의하는 도박은 사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확률로 결정되는 사건에 재물을 걸고 이득이나 손해를 보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얼핏 랜덤 박스도 이에 해당할 것 같지만 게임의 랜덤 박스는 결과물을 현실의 재화로 판매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이득을 노린 것이라 보기 어려우므로 도박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영국의 게임 심의 기관인 PEGI와 영국 도박 협회(Gambling Commission)에서는 이러한 해석에 따라 랜덤 박스를 도박으로 정의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더 면밀하게 분석하여 실제 사회에서 랜덤 박스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따져보면 다른 국가에서도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랜덤 박스를 일부 도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랜덤 박스는 도박이다 하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에 벨기에 도박 협회의 결론은 오히려 면밀하지 못한 분석에 따른 결론이라 생각됩니다.
게임을 도박이라고 부르는 것과 게임이 법적으로 도박이 되는 것은 완전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 랜덤 박스에 도박과 같은 수준의 위험이 존재할까요? 도박과 같은 분류에 포함되어 규제를 받아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판매되는 트레이딩 카드게임이나, 현실의 이벤트 판매 상품에 대해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하면 지나친 규제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사회 문제가 되는 도박과 비교할 만큼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는 청원과 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게임이 도박이 되기 전에 도박으로 규정해 버리자는 것과 다름없는데, 앞뒤가 바뀌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게임의 판매 방식을 도박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 도박과 같은 위험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만족스럽지 못한 소비에 대한 반감과 그 반감이 쌓여 만든 불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감정을 법문으로 옮겨 지우기 힘든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게임의 판매 방식 일부를 도박으로 규정해서 게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판매 방식을 별도로 관리하여 소비자가 만족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랜덤 박스에 대한 별도의 판매 기준을 만들거나, 강력하게는 유사한 판매 방식을 금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도박으로 규제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게임이 도박으로 분류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큽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바다이야기] 때문에 게임이 도박으로 분류되는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임을 도박으로 부르기는 쉽지만 정말 도박이 되었을 때, 돌이키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더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아무쪼록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EA의 이번 촌극도 모바일의 과금 방식을 무리하게 도입해서 겪는 초심자(?)의 실수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모바일 게임도 초기와 비교하면 과금 형태가 많이 발전했으니, 어쩌면 앞으로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자연히 해결될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기관의 실제 명칭은 다르지만, 편의상 도박 협회로 통일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