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리 겸 한해 무슨 일이 있었는가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한 해의 끝에 예의처럼 해야 하는 일이 있지요.
저의 올해의 게임부터 선정하고 가겠습니다.
올해의 게임
페르소나5
리뷰를 올해 안에 쓸 수 있을까요? (느긋하게 2회차 돌고 써볼까 생각 중이랍니다) 2017년 많은 게임을 즐겼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이라면 역시 [페르소나5]입니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핵심인 청소년이 주인공인 모험극을 토대로 기존과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 비틀어낸 내용이 신선했습니다. 이야기의 뒷심이 부족한 것은 다소 아쉽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염증을 페르소나라는 게임의 소재와 결합한 스토리 텔링이 만회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현실이나 사회를 이야기하는 건 비디오 게임에서 거의 터부에 가까우니 이런 시도를 보는 것만 해도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중요한 소재이면서도 게임의 주변부에 맴돌던 “페르소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설득력 있게 이야기로 다듬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게임의 시스템도 전작들보다 안정적이고 게임과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리즈의 개성을 뚜렷하게 살린 정말 잘 만든 작품입니다.
올해의 인디 게임
Night in the Woods
대충 망해버린 세상의 대충 망해버린 청춘 이야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30대라면 공감할만한 캐릭터와 이야기가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게임이라는 의미에서 [페르소나5]와 함께 올해의 게임에 선정했습니다. 게임이라는 매체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게임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조와 구성을 발전시키는 것도 있지만, 게임이 한 시대를 담고 그 시대를 게임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으로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이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게임의 영역을 넓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해 둘 만한 게임계의 사건&흐름
인디 게임은 Procedural generation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 한해였습니다. 흔히 로그 라이크라고 부르는 게임에서 쓰이는 임의 형성되는 구조가 다양한 장르에 이식된 한해였습니다.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이미 작년이 된 2017년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시기였고, 2018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AAA 쪽에서도 이를 다루는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스팀]에서는 유사(?) 성인용 게임이 통과되면서 해당 장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지 흥미롭습니다. 이미 [Doki Doki Literature Club!]처럼 현실과 게임의 벽 허물기, 호러, 미소녀 게임이라는 기이한 조합으로 흥행한 게임도 나왔고 말이죠. 해당 작품은 포르노 게임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장르의 게임이 스팀에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스팀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유통 방식과 과정만 공정하다면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게임의 다양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권에서 일본의 미소녀 게임을 제작하거나, 일본의 에로게를 영여권에 번역하여 판매하는 유통사가 스팀에 직접 게임을 넣는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영어권에서 일본 만화 시장이 확장되는데 새로운 유통을 통한 노출과 판매 증대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해당 장르가 영어권에서 새로운 황금기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이 한국은 물론 영어권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영어권이라 쓰고 미국이라고 읽으면 되지만 어쨌거나 그렇습니다. 괴수 기업 텐센트가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것이 신기한 일이지요. 중국의 복잡한 나라 사정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은데, 어쨌거나 잠자던 사자가 일어났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모바일 시장에는 중국 개발 게임이 많지만, 다른 이름을 쓰는 것과 자체 개발 타이틀이 흥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요.
[스팀]이 중국에 풀리면서 중국에서도 다양한 게임이 팔리고 있는데, 이것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흥미롭습니다. [플레이어 언노운 베틀그라운드]같은 게임이 대표 타이틀이지요. 해당 타이틀의 흥행으로 한국에서도 조금 더 다양한 시장으로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마 어려울 것 같으니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한국 게임 시장은 게임이기보다 놀음판에 가까워서 다른 게임과 같은 영역에 두어야 할지 고민될 지경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흐름은 한동안 이어질 것 같습니다. (비트코인 때문에 고래잡이 모바일 게임 시장이 쪼그라들 가능성은 어떨까요?)
AAA쪽은 2017년 한해 많은 게임이 나왔고 2018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엑스박스 엑스 원]이 등장한 만큼 올해부터 슬슬 세대교체 아닌 세대교체를 시작할 텐데, AAA 게임 개발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룻박스(loot box)라는 무리수도 결국 게임의 개발(흥보 포함) 가격이 높아져서 일어나는 일이지 싶은데, 해당 문제는 앞으로 AAA 게임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정말로 게임 가격을 높여야만 한다면 가격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호구 잡아 등쳐먹을 생각만 하니 걱정입니다. 이에 대해 영국과 미국의 정치권에서는 가만있지 않겠다는 분위기이고요. 이따금 기사로 드러나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게임 개발자 처우 문제 또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해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국가를 막론하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정당한 권한을 같지 못해 일어나는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신규 질병 분류에 “Gaming disorder” 다시 말해 게임 중독이 포함되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베타 버전이 공개된 2017년 10월인가부터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연말 다시 한차례 기사가 돌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연구 없이 성급하게 질병으로 분류하는 느낌이라, 업계와 언론이 등재를 막아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해의 시작은 룻박스와 함께
2017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게임계의 화두는 역시 룻박스. 한국에서는 랜덤 박스라 부르는 과금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업계가 자율 규제에 나서던지, 한발 물러서든지 해야 할 텐데요. 소비자의 불신과 피로가 어디로 튈지도 걱정되고. 괜히 정부 규제에 얻어터지기 전에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겁니다. 게임 전체로 보면 영역이 넓으니만큼, 해당 과금에 반하는 대체재가 등장하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룻박스가 게임 개발과 판매에 필요한 비용 상승에 따른 필연이라면, 대체제도 결국 가장 약한 이가 손해를 보는 해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소비자가 아니면 개발자이겠지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룻박스 논란이 2018년에는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지 쉽게 예상이 되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작품이 나오듯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생기는 걸 기대해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올 한해 멋진 게임이 많이 나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