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nn Frank 지음. 2012년 11월 29일
정확히 6년 전 나는 토이저러스에서 닌텐도 위(Wii)를 구입해서 설치했다. (그 박스는 여전히 나와 소녀시절을 함께한 침실 바닥에 남아있다. 이듬해 11월 내가 떠난 곳이기도 하다.)
“상상했어요? 알(Al)?”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다. “우리 생전에 이런게 될거라고?” 내가 하는 (에헴)볼링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위(Wii)의 “페이스메이커” 경고를 보았다.* 바로 양아버지에게 명령하듯 외쳤다. “나가요! 나가세요!” 감사하게도 나는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역자주: 닌텐도 위는 페이스메이커나 기타 의료기기와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안내로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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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게임 리뷰로 돈을 버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머니를 더 짜증나게 하기 위함이 컸다. 일생동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해주는 사람은 곧 꾸준한 반항심을 위한 최고의 동기가 되기 마련이다.
변화는 2월
“크리쳐스(Creatures)”에 대해 칼럼을 쓴 때에 일어났다. 그녀가 결국 이해 선언을 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내가 너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
“아뇨.” 나는 답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환희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짖굳게 만족해 하고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조용히 서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따금 프리렌서가 쓰는 모든 글은 누군가를 향한 러브레터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야 한다. 크리쳐스에 대한 칼럼은 내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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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보다 더 심하게 울어본 기억이 없다. 내게 음악을 틀라고 말한 그 순간. 그러니까... 무슨일이 있던간에 집을 정리해 두라고 의사가 말했다. 다가온 임종을 누군가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음악을 틀려던 그 순간 나는 떠올렸다. 거실에 있는 CD 플레이어를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엎친데 덥친다더니.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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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시키지 않음(do not resuscitate)”
DNR이라는 용어를 AND로 바꾸자는 논의는 진작부터 있었다. DNR이라는 말이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자연사를 받아들이기(allow natural death)”는 한결 좋게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은 가족의 소망을 늘 무시한답니다” (내가 가장 덜 좋아하던)의사가 말했다.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나는 분노에 찬 연설을 쏟아냈다. 세상 사람들이 죽고 싶은 기분을 느낄 때 죽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거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친척이 의사에게 말했다.
“글쎄,”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여긴 뷔페가 아니니까.”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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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1993년에 나를 입양했지만 나는 그보다 이른 1989년부터 그녀와 살기 시작했다.
어릴적 나는 바늘을 무서워 했기 때문에 처음 예방접종을 받을 때에는 의사가 나를 붙잡기 위해 온 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나는 줄곧 의사가 무서웠다.
그 이후 어머니와 나는 방법을 하나 고안해 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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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워진 집중치료실에 앉아 비디오 게임에 대해 고심했다.
가능한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점을 생각해 보았다.
정말 더러운 밤. 나는 내가 게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내가 피해자에게 최고의 죽음을 내려야 하는 목표를 지닌 주인공인,
어찌된 일인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는 게임.
9월 23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간호사가 어머니의 채액을 교환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나는 긴장한 상태에서 곤두박질 친 바이탈 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 채액이 기계에 연결되자 모니터에 그래프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얼마나 “살아남아” 있는지 굽게 그리고 곧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추측할 권한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죽음을 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간섭해서 찌른 상흔이 지랄맞은 상황을 부추기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어머니의 또렷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눈동자를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중얼거리듯 그녀에게 말했다. “일어나셨네요. 잠깐만요.” 나는 토트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가지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었어요.” 그녀에게 말하며 다가가 침대에 앉았다. “제가 성우를 담당한 게임 기억 하세요? 그거 나왔어요. 잠깐요. 지금 보여드릴께요.”
복합적인 장기 파손을 입은 사람이 의식을 회복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뇌까지 산소가 도착하기 때문이다. 난 정말 중요한 순간을 사소하게 쓰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꼴좀 보라지. 눈 앞에서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 하기를 원할 뿐이라니. 세상에, 신이시여. 얼마나 이기적인거야.
아이폰으로 게임을 시연해 보였다. 그녀를 둘러싼 기계의 소음 사이에서 녹음된 내 작은 목소리를 구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추가 더빙을 시작했다. “라인,” 그녀에게 설명했다. “들리세요? 트라이앵글.”
내 게임은 금방 끝났다. “음, 그래요. 끝났네요.” 나는 폰을 집어넣고 다른걸 꺼내려고 뒤적거렸다. “제 글 기억하세요? 제 글이 잡지에 실렸어요. 음, 8월에요.”
내가 그녀의 앞에 소책자를 펼쳐 보이자 그녀는 책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책을 가져가 손에 들더니 표지를 엄지속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을 침대 한견에 내려 놓은 후 내 손을 찾아 향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꼭 쥐었다.
힘을 주어 손을 쥐고. 다시 힘을 주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손을 쥐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뚜렷한 의미를 담은 젖은 눈으로. 산소호흡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눈썹만큼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울때마다 하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준 상처와 슬픔에 대해. 눈을 내려 꼭 쥐고 있는 우리의 손을 바라보았다. 몸을 굽혀 그 손에 몸을 묻고 울었다.
의자에서 몸을 때 침대로 무너지듯 무릅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산소 호흡기로 가려져 입을 맞출 공간조차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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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각에
텍사스의 다른 한쪽에서는 테리가 내가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던 게임의 마지막 부분을 시연하고 있었다. [슈퍼 헥사곤] 테리가 만든 게임이었고 테리는 누구보다 그 게임을 잘 했다.
핵사곤은 중요한 게임이다. 처음 테리를 만났을 때 나는 테리를 새워놓고 그의 게임이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게임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기다림과 움직임 그리고 기회를 향해 커서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행운과 불은 그리고 기억과 결단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정말 좋네요.” 테리는 기쁜 듯 내게 말했다.
최근 엣지(Edge)의 Jason Killingsworth은 테리에게
[슈퍼 헥사곤]이 죽음을 암시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 스포일러! - 느려지던 세계가 열리고 커서의 삶을 되돌아 본 결과 그 이상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글쎄, 나는 죽음말고 설명할 다른게 떠오르지 않는다.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보지 못할 그것을 나는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코 와이어과 튜브를 거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더 많은 튜브를 연결할 작정이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내가 오래 생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 일생을 바치는걸 상상해 보았다. 그녀와 그 방에서 그렇게 지내는 기분을 그려보려 했다.
나는 친지중 한명이 포기한채로 의사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묻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덜 좋아하던 의사였다.
“손을 잡아주세요.” 의사가 말했다. “기억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피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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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분 안에 명령대신 부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당시에 울지 않았다. 대신 내 어리석은 판단력의 깊이를 고민했다. 나는 내가 아닌 그녀를 위해 빌었다. 결정권을 가진 단 하나의 딸을 둔 엄마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내가 쓴 부고는 바보같았다. 그녀를 명예롭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도할 뿐이었다. 지금과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녀의 일생에 대해 썻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녀가 테니스를 좋아했다는 식으로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녀를 구글에 검색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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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같다.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를 보내줘.”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무도 잡지 않아요.” 그녀의 멍청함에 답했다.
그리고 나는 듣게되었다. 나는 그녀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자연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추락하는 동안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한게 아니야. 어떻게 멈추지?”
나는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대신 소리칠 뿐이었다. “이게 당신들이 말한 편안함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놓아드릴께요.” 병원은 당신에게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향해 그 말을 하라고 시킬 것이다. 그녀의 심장이 도통 정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그 말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 내 말을 듣지 못해 다행이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등을 보인채로 두 손만 등 뒤로 넘겨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정말 하고 싶던 말을 했다. 방에 남아있던 이들에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